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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되고 싶었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천국 도서관장 2009. 8. 20. 16:36

작년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기를 편집해 오고 있다.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원고를 붙잡고 씨름하는 일은 참으로 지난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원래 다빈치는 1만 3천여장의 노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 원고가 관리 부족으로 이제 7000여 장만 남았다고 한다.


그 남은 원고를 추려서 영국인 장 폴 리히터가 800페이지로 주제별로 정리하고 해설을 달아놓은 <The notebook of Leonardo da Vinci>(DOVER)가 1930년에 대에 출판되었다. 나는 그 책을 텍스트로 삼아 작업했다.


하지만, 그 책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대부분, 기계나 장비에 대해서 매뉴얼처럼 설명해 놓았기에 감이 오지 않았다.


다행히 코엑스에서 다 빈치 전시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장님의 허락을 받고 전시회를 보러 갔다. 전시회는 나름대로 짜임새가 있었다. 전시회 컨셉은 다 빈치 원고에 나온 기계 설계도를 실물로 만들어서 보여 주는 데에 있었다. 사실 다빈치는 설계한 기계들을 실제로 만드는 일은 별로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그의 설계도는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령, 그의 설계도에는 비행기, 잠수함, 자동차, 로보트, 헬리콥터, 잠수부의 장비들, 크레인, 철갑선, 공성장비, 장갑차 등이 있었다. 참고로 다 빈치는 15~16세기에 활동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30여 구가 넘는 시체를 해부했다. 그의 해부학 실력은 혈관, 근, 건, 피부를 분리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또한 시체를 분리하면서, 인간의 호흡기, 소화기, 면역체계, 뇌의 역할 등의 메커니즘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그는 결정적으로 원근법을 발전시켰다. '원근법'은 단순한 회화상의 시점 연구의 결과로 보면 오산이다. 원근법은 중세의 신 중심의 사고관을 무너뜨리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중세의 회화를 보면, 원근법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회화는 거의 신이나 천사를 소재를 삼아 그렸으며 인간이나 세속적인 것을 그릴 때는 조그맣게 그렸다. 그리고 천사나 신은 무조건 크게, 신비하게, 그리고 뒤쪽으로 광배를 배치하여 표현했다. 이는 회화를 신의 계시의 수단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빈치는 기존의 원근법 발견을 발전시켜 적극적으로 회화에 응용했다. 그의 '최후의 만찬'에 초기 원근법 기법이 잘 나와 있다. 그러나 다빈치는 이 작품을 통해서 기존의 원근법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단순히 소실점을 중심으로 멀리 있는 것은 조그맣게,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그리는 원근법의 한계를 다 빈치는 깨닫게 되었다.


다빈치는 눈의 구조에 주목했다. 눈은 볼록한 형태였다. 즉, 인간은 볼록렌즈로 세상을 보게 되어있다. 그래서 단순히 먼 것은 작게, 가까운 것은 크게 그리는 원근법 역시 인간의 시각 즉, 세계관을 반영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볼록한 관점을 여기에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원근법을 개발했다. 선 원근법은 상하로 뻗어 있는 기둥 같은 것을 볼 때, 볼록한 눈의 구조로 인해 그 위 아래의 두께가 달라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또한 대기원근법을 고안해 내어, 대기의 흐름을 반영하여 원근의 효과를 반영하였다. 이런 원근법 기법이 '동방 박사의 경배'에 잘 반영되었다.


책으로만 읽었던 다 빈치의 세계를 실제로 본 경험은 내게 매우 유익했다. 미처 책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상당 부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실을 나오면서, 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 사람은 신이 되고 싶었군"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렇다. 그는 신이 되고 싶었다. 그는 기독교를 배격했다. 로마 교황의 전횡을 피부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신에 대한 경외를 찾아보기란 힘들다.' 최후의 만찬'이나, '동글속의 성모 마리아', '동방 박사의 경배'와 같은 성서를 주제로 한 회화에서 조차 인간적인 모습만 나타나지, 예수님에 대한 신성은 전무하다.


또한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진원지였다. 14세기 이탈리아의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는 신보다는 인간중심의 사상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런 역사의 배경에서 활동한 천재 다 빈치는 당시의 모든 인간 중심의 사고관을 흡수했다. 그래서 당시의 최첨단 기술을 도제 과정을 통해 다 체득했다. 그리고 그것을 허리 춤에 차고 있던 노트에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 노트의 기록이 쌓일수록 점점 그의 지식과 직감도 쌓여 갔다. 그 직감과 지식은 서로 이끌리어 새로운 사고를 이끌어 냈다. 그리면 다 빈치는 또 기록하고 실험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렇게 해서 인간 중심의 휴먼토피아가 자리 잡아가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의 시각이 무척 중요했다. 원근법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 그런 이유에서 였다. 원근법은 정확한 관찰을 유도한다. 정확한 관찰은 과학의 첫째 요구사항이다. 신에게서 독립하려면, 정확한 세계인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정확한 관찰 후에는 실험이 뒤따른다. 실험 후에는 검증을 하고, 검증 후에는 법칙이 만들어 진다. 그리고 오류가 나면 수정한다. 이런 면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확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주의가 2000여 년이 흐른 후에 다 빈치에게 전승되었고, 그것이 로저 베이컨에게 전수 되었고, 다시 갈릴레이에게 바통을 이어 주었던 것이다. 갈릴레이의 성과는 중세철학의 종말을 가져왔다.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갈릴레이의 실험에 크게 영향을 받고, 이성중심의 세계를 열었던 것이다. 근대는 이성을 신앙으로 하고 있었던 사회였다.


이렇게 이성중심의 세계를 이끌어 낸 최초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다 빈치였던 것이다. 그는 신의 창조를 돌아보았다. 하늘을 나는 새를 보고, 자신도 그런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많은 새를 관찰하여. 비행기를 설계했다. 그리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헬리곱터를 설계했고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자동차와 자전거를 설계했다. 이 세상에 천국을 만들기 위해 인체 비례학적으로 조화를 지향하며 환경적, 인체공학적, 위생적으로 거의 완벽한 건물과 도시를 설계했다. 바닷속을 자유자재로 다니는 물고기를 보고 잠수함과 잠수장비를 설계했다. 인간에 대해서 알기 위해 수많은 시체를 분해하여 그 메커니즘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즉 그는 세상을 기계적으로 보았다. 기계는 인간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그가 보기에 세상은 모두 기계의 부품이 조립되어 만들어져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의 기계 설계도는 실제로 만들어 진 것은 거의 없다. 그의 회화도 완성된 것이 열 손가락 안에 든다. 나머지는 다 미완성작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설계도대로 장비를 만들면 제대로 기능하는 것이 없다.


물론 1400년 후반에 그런 설계를 했다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리고 후에 그가 설계한 것들을 인류는 다 만들어냈다.


하지만 세상은 기계적인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인간이 단순히 기계덩어리에 불과하진 않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어제 아내가 초기 장염 증상을 보였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커피와 라면을 많이 먹었다고 했다. 커피와 라면은 몸을 차갑게 하는 성질이 있다. 그리고 아내는 유전적으로 장이 차가왔다.


인간의 몸은 신기하게 설계되었다. 인간의 체온은 36.5도이다. 이것은 사계절 변함이 없다. 체온이 변할 때는 몸에 병이 든 것이다. 그런데, 사계절 온도는 댜르지 않는가? 그렇다. 온도와 대기가 다 다르다. 그런데도 인간의 체온은 36.5도를 유지한다. 이것은 호메오스타시스, 즉 인간의 항상성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같은 성질을 유지하여 인체를 안전하게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기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우면 온도가 올라가고, 추우면 온도가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그렇지 않다. 체온은 더워도 36.5도, 추워도 36.5도이다.


그런데, 여름에 우리는 더위를 많이 탄다. 그래서 찬 음식을 많이 찾는다. 그 결과 장염환자들이 여름에 많이 발생한다. 그 원인은 찬 음식에 있다. 여름에 우리 몸은 어떻게 해서 36.5도를 유지하는 것일까? 여름에 신체의 겉표면의 온도는 올라간다. 그러나 신체의 내장기 부분, 즉 안쪽은 겉표면의 온도에 비례하여 차가워진다. 그래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다.


반대로 겨울에는 겉표면이 차가와 지면 신체의 안쪽은 뜨거워진다. 물론, 어느 정도 안정된 환경에서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의식주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 가능하다는 말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이 항상성이 깨질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의 몸은 신기하게도. 여름에 겉표면을 뜨거워도 속은 차갑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이열치열의 원리로 여름에 뜨거운 음식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여름에 삼계탕을 먹는 이유도 그런 원리에서 먹게 된 것이다. 사실 냉면이나 모밀 국수는 겨울에 먹는 것이 인체의 항상성 측면에서는 맞다.


아내의 초기 장염 증세는 그래서 생긴 것이다. 여름에 적응하기 위해 아내의 내장기는 차가워져 있었고, 또한 유전적으로 장이 좋지 않았던 아내는 차가운 음식을 먹고, 장염증세를 나타낸 것이다.

이로 보건대 다빈치의 기계적인 관점은 처음부터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만든 현대의 기계 장비도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제 인간은 인공지능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인공지능의 논문들을 보면 부정적인 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후설의 현상학적인 측면에서의 한계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즉 환경과 인간을 독립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단순히 독립한 개체가 아닌 것이다. 어떤 흐름의 맥락에 따라 같이 흘러가고 있는 유기체인 것이다. 이 흐름의 맥락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임의성을 띄고 있기에, 그것을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서양의학의 한계이기도 하다. 어쩌면 다 빈치의 인체 해부를 통한 서양 의학의 전통이 현대 서양의학에 고스란히 계승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 빈치가 그랬듯이 서양의학은 인체도 하나의 기계로 보기 때문에, 유기적인 인간의 흐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부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으나, 전체적인 신체에 병을 야기시키는 흐름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재발도 많고, 의료 사고도 자주 나타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그가 개발한 원근법은, 동양의 회화론의 다원론적 시점과 비교해 보았을 정확성과 입체성 면에서 떨어진다.


따라서 다 빈치의 기계론적 세계관, 그것을 계승한 현대의 물질적 세계관은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흐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이 되고 싶었던 그의 소망은 그래서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꺽이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치열한 열정은 본받을 만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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