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H팡세

믿음의 영웅

천국 도서관장 2011. 3. 2. 01:30

지난 10년간 일반 출판사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올해 4월부터 기독교 출판사로 이직하게 된다. 문서 선교에 대한 비전을 주신 주님께서 본격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라고 길을 열어주셨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기독교 출판사에서는 편집뿐만 아니라 기획자로서 활동할 것 같다. 출판 기획자는 출판되는 책의 총 책임을 져야 하므로 어깨가 무겁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틈틈이 어떤 책을 기획해볼까 고민을 하다가 영국의 청교도 전문 출판사인 Banner of Truth사의 홈피에 들어가게 되었다(나는 우리 나라에 Banner of Truth와 같은 출판사를 세우기를 소망하고 있다).

마침, Banner of Truth사의 메인 페이지에 아이들을 위한 책이 링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 책들은 Ivp에서 출판된 <성령>으로 유명한 싱클레어 B. 퍼거슨 교수님이 쓴 ‘믿음의 영웅’시리즈였다. 이그나티우스, 폴리갑, 이레니우스와 같은 초대 교부들과 변증가의 일대기를 삽화를 곁들여 40페이지 내외로 쓴 책이었다.

요즘에는 어른들도 잘 모르는 초대교회의 인물들의 믿음이 어떠했는지를 어린이들에게 소개하고 있다는 시도 자체가 놀라웠다. 이런 책이라면, 우리 나라에도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출판사에서 링크해준 기획 의도를 읽으니 더더욱 소개하고 싶어졌다. 이런 책이 우리 나라 주일학교에 소개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퍼거슨 교수님의 ‘믿음의 영웅’시리즈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한편 나는 이 시리즈를 보고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윗필드, 존 웨슬리, 찰스 피니 등과 같은 신앙의 위인들도 아이들 버전으로 소개하는 책을 기획해도 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Banner of Truth사에 소개된 '믿음의 영웅'시리즈 기획의도>

싱클레어 B. 퍼거슨의 어린이를 위한 믿음의 새로운 영웅들 시리즈

오늘날 많은 ‘우상’들이 있다. 당신에게는 어떤 영웅이 있는가? 당신의 영웅은 우상들과 차이가 있는가? 우상은 유명하거나 부자이거나 잘 생기거나 또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거나 우리가 선망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어 우리가 ‘숭배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영웅은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을 위해 기꺼이 생명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이 책들은 하드카버 책으로 싱클레어 퍼거슨이 썼고, 앨리슨 브라운이 아름답게 삽화를 그렸다. 진정한 영웅들에 대한 놀라운 시리즈가 될 것이다.

 

*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사자들과 맞선 사람

* 서머나의 폴리갑: 마지막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

* 리용의 이레니우스: 책을 쓴 사람

 

*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자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기로 준비된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자들과 맞서게 되었다.

* 서머나의 폴리갑-폴리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자였다. 그는 80년 동안 그의 주님을 사랑했고 섬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믿음을 지킨 믿음의 영웅이었다.

* 리용의 이레니우스-그는 그리스도의 신자였다. 그는 집을 떠나 주님을 섬겼다. 그리고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을 돕기 위해 책을 섰다.

우리의 아이들은 대부분 영웅을 갖기를 좋아하지만, 대신에 ‘아이돌’을 갖으라고 부추김 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아마도, 때로는 그 차이는 단순히 단어의 선택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의미는 그 이상이다. 미디어 매체 또는 친구들의 압력으로 ‘아이돌’을 갖게 되는 우리 아이들은 그들의 성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이미지 때문에 그들을 숭배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영웅’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영웅은 어려움과 반대를 극복하고, 시험을 당할 때도 확고한 도덕적 성품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 책의 시리즈는 “크리스천의 믿음의 영웅”에 관한 이야기로서, 그들은 히브리서 13장 7절 말씀을 생각나게 해준다.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

여러 부류의 영웅들이 있다. 이 시리즈에서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므로 영웅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으로 영웅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해 그들의 가르침으로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가는 장소로 인해 영웅이 되는 것을 보여준다.

 

믿음의 영웅 시리즈는 하나님의 가족의 구성원이었던 사람들의 사진이 담긴 일종의 교회 가족 앨범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우리 중에는 아이들에게 과거부터 세상이 끝날 때까지 영적인 가족에 포함되는 특권을 보여주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더 많은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가르치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있다. 이 시리즈는 수세기 걸친 교회의 긴 이야기를 포함하여 아이들에게 각 시기의 영웅을 소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한 영웅들 중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들 모두는 구세주이시며 주님인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순종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는 주님은 마음과 뜻과 영과 힘을 다해 사랑하기를 소망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진정한 영웅이다. 대부분은 영웅들은 모두 성직자들었다. ‘성직자minister’란 말은 ‘종’을 의미한다. 그들은 교회의 지도자가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님이신 예수님과 그의 백성들을 섬기기 위해 영웅이 되었다.

 

“여러분의 가정과 특별히 자녀들에게 많은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을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도 영웅이 되기를 바랍니다!“

싱클레어 B. 퍼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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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영웅 시리즈’에 나온 인물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아래의 자료는 예전에 내가 초대교회를 정리하면서 모아두었던 자료들이다.

 

* 이그나티우스(Ignatius-A.D.110)

트라야누스 황제 때에 수리아 안디옥 지방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는 시리아에서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된 후 로마제국 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원형경기장에서 사나운 맹수의 밥이 되어 순교했다[전승에 의하면 이그나티우스는 A.D.30-35년 경에 태어났는데(마18:2)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으신 아이가 바로 이그나티우스라고 전해진다]. 이그나티우스의 죄명은 기독교인이라는 것과 그리스도를 전했다는 것이었다.

이그나티우스가 체포된 것은 세 가지로 전해진다. 첫째는 이교도들이 안디옥의 기독교가 이그나티우스의 인도 하에서 발전하는 것을 시샘하여 고발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당시에 안디옥 교회에 몆 개의 이단적 분파들이 있었는데 이그나티우스 감독이 그들의 비진리적 교리들을 용납하지 않고 맹렬하게 비난했기 때문에 그들이 분노하여 고발했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로마정부가 군사적 승리를 기념하는 축제에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이그나티우스를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게 하여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기독교에게 경종을 울리게 하기 위하여 체포했다는 것이다. 그 중에 어느 것이 과연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세 가지가 모두 일리 있는 주장들이다. 왜냐하면 이그나티우스는 누구에 의해서 고발되었는지가 불문에 붙여진 채 로마로 압송되어 로마제국 법정에서 형식적인 재판을 간단하게 거친 후에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으로 던져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름답고 훌륭한 종의 순교를 무의미하게 용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그나티우스의 순교를 통하여 당시는 물론이요 후세의 기독교 역사에 매우 아름다운 금자탑을 세우셨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로 압송되는 와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맹렬하게 전했고 또한 7개의 훌륭한 서신들을 발송하는 놀라운 저력을 보였다. 이그나티우스가 로마로 압송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인근 각지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가 지나면서 머무르게 될 처소들에서 그를 기다렸다. 이그나티우스를 반드시 로마 법정에 세워야하고 또한 반드시 원형경기장에 세워야하는 중책을 맡은 로마 군부는 혹시 중도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것에 대비하여 호송 군사들로 하여금 그를 철저하게 감시하였고 심지어는 사나운 표범까지 동원하여 엄중하게 그를 호송했다. 당시의 상황을 이그나티우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시리아로부터 로마로 가는 도중 나는 열 마리의 표범들과 군인들에게 묶여 있었으면서 육로나 해로에서 밤낮으로 사나운 짐승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군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데도 그들은 대단히 난폭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불법행위의 와중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 때문에 의롭다함을 얻지는 않습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저 짐승들로 인해 유익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또 나는 나를 해칠 짐승들이 빨리 발견되기를 기원합니다. 나는 그 짐승들이 나를 해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속하게 먹어치우도록 유혹하고 대들 것 입니다. 만일 그런데도 그 짐승들이 나를 해치려 하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나를 해치게 만들 것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나는 순교가 얼마나 큰 유익을 주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제야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첫걸음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얻을 수만 있다면 눈에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그 어느 것도 나의 야망을 자극하지 못합니다. 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얻게만 된다면 화형이나 십자가나 사나운 짐승의 공격이나 또는 내 뼈를 찢고 사지를 부러뜨리며 온 몸에 멍이 들도록 매를 맞는 등 그 어떤 마귀의 괴롭힘도 참고 견디겠습니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엄성옥역, 제2권 제36장. pp.179-180.

그러나 몰려드는 기독교인들의 애절한 간청과 그들의 아름다운 신앙적 모습에 감명 받은 호송책임자는 엄중한 호위를 늦추지 않는 대신에 이그나티우스가 그들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때문에 이그나티우스는 그들과 만나서 신앙적 대화를 할 수 있었고 심지어는 자신의 편지를 대신하여 쓸 수 있는 비서를 대동할 수 있었다. 이때에 이그나티우스를 찾아 온 사람들은 마그네시아(Magnesia)의 감독과 두 분의 장로와 집사이었고 트랄레스(Trall)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비우스(Polybius)와 에베소교회의 오네시무스(Onessimus-오네시모-빌레몬서에 나오는 오네시모일 가능성이 있다) 감독이 인도하는 일단의 사절단 등등이었다.

이그나티우스는 그들과 격려와 감사의 신앙적 대화를 나누었고 서머나(Semyrna)에서 그들의 교회들에게 서신을 써서 보냈으며 트로아(Troa)에서 서머나 교회와 필라델피아(Philadelpia) 교회와 그곳의 감독인 폴리갑(Polycarp)에게 보내는 세 통의 편지를 썼다. 이때에 이그나티우스가 쓴 7통의 서신은 당시 기독교의 역사적 상황을 변증하는 중요한 문서로 평가받는데 그중에서도 서머나에서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가 가장 중요하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자신을 구출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그는 이미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었고 반면에 자신의 구출문제로 인하여 로마의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전체 기독교가 박해받게 될 것을 염려했다. 이그나티우스는 자신의 순교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고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죽음 앞에서 나약해 질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로마교인들에게 자신을 구출하여 욕되게 할 것이 아니라 시련과 고통을 이기고 승리하여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게 기도해달라고 간청했다. 이그나티우스가 순교를 결심한 것은 개인적인 신앙 때문이었지만 당시의 박해 속에 사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위로와 소망과 인내를 주고자 하는 지도자적 책임과 사명감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이 담대하게 순교를 받음으로서 모든 기독교인들의 배교를 차단하고 아울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강하고 담대한 신앙적 삶을 살게 해주어야 한다는 지도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자신을 구출하려는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서신을 보내었다.

*나는 그대들의 친절이 나를 오히려 해치리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당신들은 그 계획을 성공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디 나의 부탁을 들어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얻게 하라.....그리하여 내가 단지 기독교신자라고 불리울 뿐만 아니라 기독교신자로서 행동할 수 있게 해 달라.....나는 더 이상 육신의 양식을 탐하지도 않는다....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신 하나님의 떡을 맛보기를 원한다.....또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할 그의 보혈을 마시기를 원한다.....나는 고난을 당할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할 것이며 언젠가 자유스럽게 그와 함께 다시 부활할 것이다.....나는 그리스도의 순수한 떡으로 바쳐질 수 있도록 짐승들의 이빨에 찢겨야 할 하나님의 밀알이다.....만일 그대들이 나를 위해 침묵을 지킨다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나의 육신에 연연한 사랑에 의해 흔들린다면 나는 단지 인간의 목소리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Justol.Gonzalez, pp.73-74.

이그나티우스는 로마로 압송된 후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심문을 받았는데 이레니우스의 서신은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황제-너는 마귀다.

*이그나티우스-나는 내 마음에 그리스도를 모셨다.

*황제-폰티우스 필라티우스에게 죽은 예수가 그렇게 소중한가?

*이그나티우스-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에게는 가장 소중한분이시다.

이그나티우스는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짐승에게 던져졌는데 이때에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영화롭게도 순교의 반열에 세워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 맹수의 이빨 사이에 끼인 하나님의 곡식가루로 빻아져서 거룩한 빵이 되기를 원하옵나이다.'

 

폴리갑(Polycarp. A.D.55)

폴리갑은 소아시아의 상업도시였던 서머나 교회의 감독으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그는 비교적 박해가 심하지 않았던 안토니우스피우스(Antonius Pius.138-161,재위) 치하의 'A.D.155년경'에 서머나에서 화형 당했다. 폴리갑의 순교는 일반성도들의 순교와 연장되어진 것이었다. 당시에 일단의 기독교 신자들이 로마의 신들을 예배하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는데 그들은 모두 끝까지 로마의 신에게 경배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 피난처를 구한다'고 하면서 즐거운 신앙으로 관헌들의 고문을 이겨냈다.

그들 중에 젊은 청년 성도였던 게르마니쿠스(Germanicus)의 순교이야기가 폴리갑의 순교와 연결되어진다. 게르마니쿠스가 처형장에 섰을 때 재판관이 그의 젊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고문당하고 죽지 말고 마음을 바꾸라고 권면 하였다. 이때에 그는 대답하기를 '로마제국의 잔악한 통치 하에서 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평안하게 사는 것이 더욱 아름답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짐승들을 향하여 외쳤다. '어서 오너라 어서 와서 나를 먹으라.' 그의 용기 있는 모습을 본 구경꾼들은 분노하였고 재판관을 향하여 외쳤다. '무신론자들을 죽여라' '폴리갑을 체포하라' 기독교를 증오하는 자들은 일제히 폴리갑의 처형을 요구하고 나섰다.

저들이 폴리갑 처형을 요구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폴리갑의 영향을 받아 담대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게르마니쿠스를 비롯한 순교자들의 소식을 전해들은 폴리갑은 자신도 순교할 것을 각오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인하여 시 외곽의 농장으로 피신했다. 그는 몇 명의 신자들과 함께 그 곳에서 기도하며 숨어 지냈는데 체포되기 사흘 전날 밤 엎드려 기도하던 중에 잠들었다가 자기가 베고 자는 베개에 불이 붙어 타버리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난 그는 자신이 불에 타서 순교할 것임을 말하고 처형장으로 가려했으나 성도들의 만류로 피신처를 옮겼다. 그러나 자신을 체포하려는 병사들이 자신이 있는 곳을 찾아내자 더 이상 피하지 않고 그들을 맞이하였다.

병사들은 자신들 앞에 나타난 폴리갑을 보고 크게 놀랐다. 폴리갑은 매우 늙은 노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고 장엄한 인품이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은 이토록 훌륭한 인품을 가진 사람을 체포해야 한다는 것에 심히 가슴 아팠으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폴리갑은 그들에게 음식과 음료수를 대접하면서 한 시간 동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요청하였다. 이미 폴리갑의 인품에 크게 매료되었던 병사들은 정중하게 승낙하였다. 폴리갑은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총독은 그의 나이 많음을 생각하여 마음을 바꾸고 고통과 죽음을 면하라고 권면하였다. 이때에 폴리갑이 거절하자 총독이 그에게 '무신론자들은 물러가라'고 소리 지르도록 하였다. 그때에 폴리갑은 군중들을 향하여 '무신론자들은 물러가라'고 소리 질렀다. 그러나 같은 말이었지만 내용은 달랐다. 총독이 명령한 '무신론자자는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신을 섬기지 않는다는 뜻에서의 무신론자였고 폴리갑이 외친 '무신론자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는 뜻에서의 '무신론자'였다.

군중들은 폴리갑의 외침에 대한 의미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리둥절하거나 웃거나 분노하였다. 폴리갑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총독이 은밀하게 폴리갑을 설득하였다. 황제를 섬기겠다고 맹세하고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살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때에 총독이 요구한 것은 진정한 맹세나 배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거짓말로 맹세하고 거짓말로 배교한 후 석방되어 돌아가서 계속하여 기독교인으로 살라는 것이었다. 이때에 폴리갑이 총독에게 대답한 말은 기독교 순교역사에 길이 남을 거룩하고 아름다운 신앙고백이었다. 그는 이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내가 86년 동안 그를 섬겼으나 그는 내게 은혜만 베푸셨을 뿐 한번도 나를 저버리신 일이 없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저주할 수 있겠는가?'

이에 총독이 진노하여 산 채로 태워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폴리갑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당신은 잠시 붙었다가 곧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장차 임할 심판과 악인을 위해 예비 된 영원한 형벌의 불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시행하라.'

당시에 군중들, 특히 유대교인들은 재판관에게 폴리갑을 사자 밥이 되게 하라고 외쳤다. 그러나 원형경기장에서의 행사가 이미 종료되었으므로 총독은 허락하지 않았다. 군중들은 폴리갑을 화형에 처하라고 요구하였고 결국 그는 자신이 꿈에서 보았던 대로 화형 당했다. 군중들은 폴리갑을 화형 시키기 위해 기둥에 그를 묶은 후 큰 못으로 고정시키려 하였다. 그러자 폴리갑이 말했다.

'나를 이대로 두시오 나에게 화형을 견뎌낼 힘을 주실 분께서는 당신들이 못을 박지 않아도 장작더미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견딜 능력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하늘을 우러러 크게 기도하였다.

'사랑하는 복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당신에 관한 지식을 주신 아버지시여 당신 앞에 살고 있는 모든 천사들과 천군들과 피조물, 그리고 모든 의인들의 하나님이시여 당신께서 오늘 이 시간 나로 하여금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잔에 참예할 수 있게 해주시고 내 몸과 영혼이 성령의 썩지 않는 축복 속에서 영생의 부활을 얻기에 합당하다고 여기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 나는 신실하고 참되신 하나님이신 당신께서 예비하시고 계시하시고 이루신 풍성하고 가납 될 만한 제물로서 당신이 보시는 앞에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모든 일을 인하여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 영원한 대제사장을 통하여 당신을 찬양하고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리나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이제부터 영원히 영광이 있을 것 입니다. 아멘'

폴리갑이 기도를 마치자 집행관들이 불을 붙였다. 이때에 사람들은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불길이 크게 솟아올랐을 때 불꽃은 마치 바람을 맞은 돗처럼 둥근 형태를 이루어 폴리갑의 육체를 담처럼 에워쌌다. 불길 가운데 있는 폴리갑은 전혀 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용광로에서 정련되는 금이나 은 같았다. 뿐만 아니라 불길은 사방에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었다. 폴리갑이 불에 타죽지 않자 유대인들을 비롯한 박해자들이 집행관에게 칼로 찔러 죽이라고 외쳤다. 집행관이 칼로 폴리갑을 찌르자 피가 솟구치며 불이 꺼져 버렸다. 폴리갑이 순교한 후 기독교인들은 폴리갑을 장사하기 위하여 시신을 요구했으나 유대인들이 벌 떼 같이 들고일어나 반대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한 유대인들은 폴리갑이 순교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가 다시 살아날 것을 두려워했다. 때문에 그들은 혜롯의 아버지이며 달세(Dalce)의 형인 니세타스(Nicetas)를 총독에게 은밀히 보내어 만약에 폴리갑의 시신을 내어주면 그의 추종자들이 폴리갑이 다시 살아났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경배하게 될 것이라고 충동질했다. 유대인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인하여 폴리갑은 다시 화형에 처해졌다.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엄성옥 역, 제14장. 사도적교부 폴리갑. p.217.

 

이레니우스

가톨릭 교의학의 아버지 또는 “교회의 최초의 위대한 조직신학자”라 불리우는 이레니우스는 교회의 전통, 구속사, 신구약의 권위 등 여러 분야에서 업적을 찾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2세기 영지주의자들과 논쟁에서 중요성 때문에 기독교회사에서의 의미심장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레니우스는 일생동안 영지주의를 논박하고 하나님의 구원 역사계획을 역사신학 내에서 진지하게 설정하였으며, 신약을 구약과 같은 권위로 보면서 성경을 총체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었다. 이레니우스는 기독교를 진정한 철학으로 보려는 변증가들의 견해에 반대하였으며, 헬라적 사색의 도움을 동원하지 않았고, 계시의 내용이 단순히 새로우면서도 보다 나은 철학에 불과하다는 자들과도 견해를 달리했다. 그에게는 성경적 전통만이 신앙의 유일한 근원이었다.

목회적 소질을 타고난 이레니우스는 고울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이단으로부터 양들을 변호하는데 상당한 관심을 쏟았다. 다른 한편으로 이레니우스는 변방에 있는 켈트족의 복음화와 리용의 교회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후기 자료에 의하면 이레니우스는 리용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하던 202년에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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