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책방에서 여러 권의 책을 구입했다.
그 중에서 감리교측 교수님들이 평양대부흥운동에 대한 종합 연구서인 <각성, 갱신, 부흥>(감리교신학대학교 출판부, 2007)이 눈에 띄었다. 이 연구서는 장로교측의 주도한 평양대부흥운동에 대한 연구서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감리교측의 시각을 보여준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된다. 감리교측은 평양대부흥운동을 하디 선교사에 의해 촉발된 1903년 원산부흥운동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미 박용규 교수님이 <평양대부흥운동>을 통해서 원산부흥운동에 대해 자세하게 기술했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그 이상으로 논지를 전개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더욱이 부흥운동을 토착화신학과 연결시키는 점은, 부흥의 보편성 측면에서 아쉬운 면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부흥운동에 대해 다방면에서 연구한 점은 평가할 만하다. 그리고 평양대부흥이 그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가능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 것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에 나온 11편의 논문 중에 이후정 교수님의 ‘웨슬리적 관점에서 본 한국교회의 초기부흥운동’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교수님은 웨슬리의 완전교리에 대한 번역서와 연구서를 집필한 바 있다.
이 논문에서 이 교수님은 1903-1909년의 대부흥 운동(원산부흥운동-평양대부흥운동-100만인 구령운동)을 독일의 경건주의-미국의 대각성운동(1차 조나단 에드워즈, 2차 찰스 피니)-스코틀랜드의 부흥운동(리처드 오웬)-웨일스 대부흥운동(이반 로버츠)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성령의 강력한 임재하심과 내주하심이 우리나라 부흥운동의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존 웨슬리의의 복음주의 운동(조지 윗필드 포함)에서 나타난 회심과 성령의 내주하심과 완전성화를 향해 나아가는 영성의 틀징이 우리나라 부흥운동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고 평가하였다.
이에 관해 나는 이 교수님의 주장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그럼, 그 내용의 일부를 인용해 본다.
<인용글>
근대 교회사에 나타난 부흥운동들
...중략...
두 번째로 우리는 18, 19세기에 미국에서 일어난 두 차례에 걸친 대각성운동을 볼 수 있다. 미국의 제1차 대각성운동은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방의 노스햄프턴에서 19세기 중엽에 도덕적 방종과 타락, 정치, 사회적인 혼란기에 일어난 부흥운동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인 조나단 에드워즈는 청교도 전통이 철저한 칼빈주의 신학자, 목회자로서 최기 이민자들이 가졌던 신앙이 해이해진데 대한 반동으로 회심과 중생을 역설하였다. 즉 청교도 전통에 따른 “가시적 성도”(visible saints)의 모임으로 구성된 교회에서 회심한 신앙을 직접 공격적으로 증거하던 첫 세대를 뒤이어 다음 세대들이 그와 같은 회심 체험이 없는 교인이 되었을 때, 중도 언약으로 타협하게 된 것을 거부한 것이다. 따라서 에드워즈는 선택받은 신자들만이 믿음 안에서 중생하고 회심할 수 있다고 보았고, 그러한 자들을 구별하는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분별하는 징표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부흥운동을 분별하는 기준이 되며, 영적, 경험적 증거가 있게 된다. 에드워즈의 대각성운동은 정감적인 종교(religious affection), 마음의 종교를 통해 심령의 대부흥을 가져오려 하였다. 죄에서 회심하여 거듭난 삶을 사는 성도들이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입각하여 복음의 진리에 따르는 것이 그 주제였다. 그 결과로 윤리적인 덕 있는 삶을 살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과 자애로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제2차 대각성운동은 찰스 피니에 의해 주도되었다. 현대 부흥운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피니는 커넥티컷에서 태어나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821년 영혼이 흔들리는 회심의 경험을 통해 장로교회의 능력 있고 인기 있는 설교자가 되었다. 그는 뉴욕 주 북부의 로테스터에서 주도적인 부흥 설교가로 활동하면서 유명한 저서 <부흥운동 강의>(Lectures on Revival)를 통해 자신의 부흥운동의 방법들을 펼치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부흥운동은 계획되고 기획될 수 있는 것으로서 영적 생활도 자연 세계와 같이 그 자체의 법칙들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나아가서 피니는 개인의 영적 갱신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적 방법들을 심리학과 관계시켜 발전하려 했는데, 은혜를 사모하는 자리(anxious seat)를 부흥집회에서 사용하였다. 피니는 결국 회심의 경험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였으며, 혼합적 접근방식을 사용하려 하였다. 그는 교파주의에서 해방된 부흥운동가로서, 신학적으로도 한 견해에만 머물지 않고 칼빈주의, 감리교회, 나아가서는 19세기 합리주의 사상들을 절충하였다. 따라서 그의 부흥운동의 메시지에는 칼빈적인 사회 속에서의 성화의 요소와 함께 웨슬리적인 완전성화론도 나타나게 된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해 전문적인 부흥사 제도라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했는데, 새로운 방법을 통해 훈련된 평신도 중심의 부흥운동이 일어났으며, 영적 갱신의 기술들이 발전되기도 하였다.
...중략...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교의 역사교수 데이비드 커는 영국의 웨슬리, 윗필드에 의한 복음적 부흥운동 외에 웨일즈 지역의 부흥운동을 주목하면서, 한국교회 부흥운동과 비교하였다. 웨슬리와 윗필드의 감리교적, 칼빈주의적 전통의 양자를 모두 수용하면서 19세기 후반에 리처드 오웬같은 인물을 중심으로 일어난 이 운동을 매일매일 가정예배와 성경구절의 암송, 어른들의 공경, 어린이들에 대한 엄격한 교육과 양육 등을 통한 거룩한 생활방식의 헌신에서 비롯되었다. 나아가서 그들은 ‘거룩한 불’을 간구하는 마을기도 모임을 통해 하나님을 위해 웨일즈 전역을 불붙이는 붓흥에 투신하였다.
그후 1904년 부흥운동은 에반 로버츠에 의해 일어났다. 그는 광부로서 회심을 경험한 후 요엘서의 예언의 말씀(2:28-9)에서 영감을 받고 부흥운동에 인도되었다. 1904년 뜨겁고 놀라운 성령체험을 하였던 그는,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굴복시켰다고 증거하였다. 그로인해 평안과 함께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면서 변화된 그는 강한 열정으로 가득 찬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열정적인 기도에 힘쓰면서 금식과 눈물과 애통으로 주님께 돌아와 성령의 새롭게 하는 능력을 경험하도록 촉구하는 것이었다. 그는 성령의 역사가 효율적으로 되기 위해 죄의 고백,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것을 삶에서 모두 버림, 자신을 온전히 성령께 내어드림, 그리스도에 대한 공개적 고백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에 의해 일어난 부흥운동은 성경연구에 집중했고, 설교보다는 영적 체험, 지성보다는 감성을 중요시하면서 찬송 부르는 것을 가장 중요한 행위로 보았다.
이러한 로버츠의 강조점들은 웨슬리의 부흥운동과 병행되는 점들로 볼 수 있겠다. 웨슬리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논하겠지만, 로버츠가 성령론에 특히 강조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영과 혼을 쪼개고 가른다고 말할 때 그것은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을 말한다고 이해했다. 즉 “사람의 영 안으로 하나님의 영이 급격한 방법이든 아니면 점진적인 방법이든 어떤 방법으로든지 주입되어 영을 혼의 껍질에서 해방시킴으로서 영이 혼과 육보다 우위에 놓이게 되는 현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처럼 해방된 영은 ”굴복되거나“ 갱생(revived;중생, 부흥)하여 성령의 통로가 되는데, 그것을 통해 신적 능력의 넘쳐남이 중생한 영 속에 부어진다.. 결과적으로 거듭난 신자는 능력을 받아 하나님을 최고로 거룩하게 섬기게 된다.
...중략...
신앙의 영적 갱신과 각성은 웨일즈와 한국에 있어 모두 성경통독과 열정적인 기도, 죄의 고백과 온 마음을 변화시키며 삶을 전환시킨 회심의 경험, 성령의 현현 등을 특징으로 한다.
...중략...
웨슬리의 부흥운동의 영성과 신학
웨슬리의 회심 이후 그가 본격적으로 부흥운동으로 초청된 계기는 칼빈주의적 메소티스트였던, 옥스퍼드 신성 클럽 때로부터의 동료요 친구인 조지 윗필드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웨슬리는 이미 우리가 살펴본 바 미구그이 대각성운동을 일으킨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운동에 대한 서술과 그의 영성에 대해 일고 알게 되었다. 이러한 도움들 속에서, 하지만 웨슬리 자신의 독특한 부흥운동의 영성과 신학, 조직과 훈련(규율)이 발전되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중략...
웨슬리는 부흥운동을 통해 구원의 복음을 살아있는 실재, 생동적인 현실의 영적 체험으로 확증하였다. 단지 형식적으로, 맹목적으로 기독교인이었던 당시 영국 평민들에게 부흥운동은 그와 같은 복음을 통해 참(실질적인) 그리스도인, 진정한 신자가 되는 경험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어떤 교리에 대한 인정이나 윤리적인 강령이 아니라, 죄의 회개와 회심을 통한 거듭남(새로운 탄생)으로 가능한 것이었는데, 거기서 가장 중요한 강조점은 성령의 현재 역사하시는 은혜였다. 외적 종교가 아니라 내적 종교, 마음의 종교가 웨슬리의 부흥운동이 목표한 바였다. 웨슬리는 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의 탄생의 체험에 주목하였다. 종교개혁의 복음이 칭의에 강조된 데 비해, 웨슬리의 복음은 회심과 중생으로 체험되는 생명(동)적 경험을 더 강조하였고, 거기에서 시작되어 은혜 안에 완전을 향해 성장하는 성화의 길을 영성의 주제로 삼았다.
일차적으로 웨슬리의 성령론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거듭남은 체험에 대한 경험주의적인 신학을 낳았다. 경험주의의 차원에서 그것은 종교적 혹은 영적 인식론을 포함한다. 즉 웨슬리가 “경험”이란 말로써 의미한 바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임재에 대한 의식이었다. 성령의 임재가 곧 그것인데, 이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탄생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적으로 감지,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에게 임하여 죽음으로부터 일으켜진 신자는 이제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계시가 그에게 신적 생명, 실재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성령의 내면적 증거로서 감지, 인식된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 ‘새로운 탄생(신생)’속에서 성령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의해 다시 태어난다는 것 즉 거듭남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설교하였다. 거기서 그는 마치 어린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신체적인 감각기관들을 통해 비로소 바깥 세계와 교통하며 감지할 수 있게 되듯이, 영적인 거듭남의 위대한 변화를 통해 새로 태어난 사람은 영적인 감각을 통해 하나님과 영적인 세계, 일들을 감지하고 인식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특히 경험적인 것이다. 영혼은 하나님을 감지(경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웨슬리에 의하면 이 영적 감각 또는 새로운 감각은 다름 아니라 신령한, 초월적인 불가시적 세계를 감지, 인식하는 믿음이며, 새롭게 창조되거나 성령의 은혜로 열리게 된다. 이제 하나님을 향해 살아난 영혼은 하나님이 불어넣어주시는 생기, 즉 성령의 숨, 생명의 숨, 하나님의 은혜로운 감화에 의해 하나님과 호흡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마음속에 내려오고, 기도와 찬양은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하나님의 역사(활동)하시는 은혜에 대하여 인간은 반응(다시 역사)하는 협력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끊임없이 지속되어야한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통인 영적 호흡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이 인간 영혼 안에 지속되며, 신자는 이제 계속 생명의 성장을 은혜 안에서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는 것이다. 웨슬리는 이 영적 감각과 영적 호흡이 사랑과 찬미, 기도와 말씀 묵상 등등 은혜의 수단과 통로를 사용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성숙시키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진보에 있어서 본질적인 길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웨슬리의 부흥운동의 영성과 신학의 핵심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일으키시는 위대한 변화인데,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새로운 탄생인 것이다. 우리는 나아가서 그러한 중생의 목표로 웨슬리가 지적한 바,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갱신, 회복하는 성화를 향하게 된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살아 역사하는 것이 부흥운동의 핵심이다. 그와 같이 우리가 영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활동인 성령의 역사하심, 그 능력과 임재 속에서 구원의 길을 살아가는 것이 부흥의 주된 목적이다. 성령론의 영성과 신학이 웨슬리에게서와 같이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본질을 이루고 있음을 우리는 후에 확인하게 될 것이다.
웨슬리 부흥운동의 영성은 독특하게 성화와 완전을 특징으로 하였다. 거듭남의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 탄생한 영혼은 계속 성령 안에서 성장하여 완전한(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성숙에까지.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웨슬리는 완전을 설명하면서, “완전한 사랑”이란 표현을 선호하였다. 그 핵심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며,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어 하나님과 이웃을 온전히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이중적 계명을 성취하는 것이다. 성화와 완전의 영성을 우리는 여기서 상세히 취급할 수 없지만, 웨슬리의 부흥운동이 단지 복음적 회심의 영성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더 충만한 영성, 성숙하고 진정한 균형 잡힌 영성인 “성화의 영성”을 교회 역사의 기나긴 전통과 일치하게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웨슬리가 목적했던 경험적, 실천적인 기독교가 마음과 삶 속에서 생명력을 지닌 거룩한 복음의 능력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웨슬리 부흥운동의 중요한 특징은 당시 평민들의 영적 갈망을 충족시켜 주면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세상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새롭게 의식하게 해준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와 같은 영적 이상을 실현함에 있어서 웨슬리는 소그룹운동을 통해 그 평민들의 영성을 성화에 이르는 의의 길로 훈련, 성장, 성숙시키려 하였다. 여기서 훈련은 웨슬리안들이 따라가야 할 영적 길에 필요한 것들을 규정하기 위해 웨슬리가 사용한 개념으로서, 우리는 적절하게 규제된 신앙의 구현을 유지함으로서 은혜 안에서 성장하는 성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은혜의 수단 즉 훈련을 위한 규례, 규범적 방법들을 통해 감리교도들이 형성한 작은 규모의 친밀한 모임들 속에서 영성생활을 조성, 훈련하였다. 훈련된 삶을 성취하는데 단지 부흥회로만은 충분하지 못했다. 신자들의 영적 공동체, 친교 속에서-단지 개인적 경험에서만이 아니라-성화의 훈련, 영적 육성을 거쳐야만 영적 순례를 하는 신자들에게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형성될 수 있다는 영성의 위대한 지혜가 웨슬리의 천재 속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웨슬리는 영적 양육의 모델, 영적 지도의 예민한 센스를 가지고 감리교 부흥운동을 키워나갔다. 거기에서 우리는 상호 신뢰하는 책임을 지는 공동체 조직의 집단들인 연합신도회, 속회, 반(band), 선발신도회, 참회자반 등을 발견하게 된다. 그 모임에서 신자들은 성화의 길을 가기 위해 서로 영적인 질문과 그에 따르는 답변, 증거를 강화시켜 나간다. 이와 같은 철저한 영성생활의 점검, 조사는 훈련의 기본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은 영적 삶의 원리와 실천을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면서 항상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 속에서 살아가도록 촉구, 경계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신자들은 점점 더 거룩한 삶에 충만해지며, 거룩한 죽음을 예비하면서, 사랑 안에서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성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이상과 같은 웨슬리의 부흥운동의 특징들은 이제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을 고찰하는데 중요한 준거점들을 제공하고 있다. 웨슬리가 18세기 영국을 부흥의 불길로 변화시켰듯이, 확실히 20세기 초 한국을 부흥의 불길로 변화시킨 이들 속에는 감리교의 영적 후예들이 있었다.
영적 대각성 100주년 기념 학술연구회, <각성, 갱신, 부흥>, 이후정, ‘웨슬리적 관점에서 본 한국교회의 초기 부흥운동’, 감리교대학교출판부, pp. 84-96.
--------
* 문단을 내 임의로 나누고, 진한 글씨도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서 임의로 표시했다.
'CYH팡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믿음의 영웅 (1) | 2011.03.02 |
---|---|
인도引導 (0) | 2011.02.17 |
지금은 성벽 재건의 시대 (0) | 2011.02.13 |
날마다 한 걸음씩 (0) | 2011.01.24 |
잠시 세상에 내가 살다가 (0) | 2011.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