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웬 목사님의 <택자의 믿음에 관한 복음적 근거와 증거들<Gospel Grounds and Evidences of the Faith of God's Elect>을 읽다가 중요한 내용이 있어 인용한다.
각성된 영혼(조명받은 영혼, enlightened soul)은 ① 하나님의 영광과 ② 자신의 구원을 동시에 소망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죄인의 영원한 심판을 요구한다. 따라서 각성되었지만 아직 죄인인 영혼은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의 구원을 동시에 소망할 수 없게 된다. 이 신앙적 딜레마는 그를 심하게 옥죌 수도 있다. 이 경우 마귀의 참소를 당한다면 치명타를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영광과 죄인의 구원을 동시에 원하신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공의에 의해 두 소망을 동시에 만족시키실 수 없다. 그렇다면, 죄인이 구원받으려면, 하나님의 영광을 포기하고, 자신의 영혼이 구원되기만을 바라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은 죄인이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멸망당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오웬 목사님은 로마서 3장 24-26절을 인용하여 해결책을 제시한다. 즉,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로 이 딜레마를 풀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어떻게 푸셨을까?
오웬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용글>
둘째로, 구원 얻는 믿음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방식을, 각성된 영혼enlightened soul의 전반적인 소원과 모든 소망에 적합한 것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식이다)를 보물과 귀한 진주로 비유하시고,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크게 기뻐하고 아주 만족할 것이라고 확언하셨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소원에 부합하기에 그들의 마음에 안식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진리에 대한 지식으로 각성되고, 영적인 각성으로 인해 자신의 영혼의 상태를 자각할 수 있는 그 영혼은 두 가지의 탁월한 소망과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그 하나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자신이 영원히 구원을 얻는 것이다. 각성된 영혼에게 그 두 소망은 어떤 것이 먼저이라고 할 수 없으며, 각성된 영혼 안에서는 그 두 소망이 분리될 수 없다. 각성된 영혼에게 그 두 소망은 결코 중단될 수 없으며,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온 세상의 어떤 사람도 각성된 영혼에게서 그것들을 빼앗을 수 없다. 방탕한 죄인에게는 전자(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는 것)는 중요하지 않다. 또한 율법적인 회심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인데, 만약 그들이 받은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영적인 빛이 아니다.
그들이 구원받는 다면, 하나님께서 스스로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의 구원은 단지 영원한 저주로부터의 자유함일 뿐이다. 그들은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거나 그렇지 않으시거나에 대해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의 구원관에는 진실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원은 전혀 없다.
그러나 영적인 빛과 은혜의 첫 번째 광선은 각성된 사람의 마음과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소망을 갖게 한다. 이 소원이 없다면, 그 영혼은 자신의 구원에 대해 어떻게 소망해야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구원의 방식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고 말하려 한다. 그 영혼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그 영혼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없다면, 우리는 그 영혼이 구원받았다고 보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미는 본질적으로 구원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소원은 모든 각성된 사람의 영혼과 마음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이것과 일치하지 않는 영원한 것들에 대한 어떠한 제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
영원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고한 소망이 있다. 피조물은 영원을 지향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은 당연하다. 각성된 죄인에게서 그러한 성향은 분리될 수 없다. 구원에 있어서 이러한 특성이 명확하게 들어날수록, 더욱더 그에게 이 소원은 고양되고 확고해진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즉, 어떻게 그 두 유효한 소망이 그 사람의 마음에서 조화되고 만족될 수 있는가?
우리 죄인에게는, 그 두 소망은 조화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은 죄인에게 영원한 죽음과 멸망을 요구한다. 율법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율법은 양심의 언어이자, 우리를 두렵게 하는 소리이다. 그러므로 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원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 자신이 멸망당하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그 두 소망 중 어느 것을 죄인이 고수해야 하는가? 그것들 중 어느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까? 그는 그 자신의 구원의 소망과 희망을 모두 버려야 하는가, 그리고 영원히 멸망당하는 것에 만족해야 하는가?
그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것과는 반대의 것을 주셨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포기하시도록 하여, 어떻게 해서든 그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소망해야 하는가? 그 스스로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관심을 끊어야 하는가? 이것은 각성된 영혼이 자신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죄인 자신에게서는 도저히 답을 찾아낼 수 없는 두 소망의 조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다음의 구원의 방식은 그 두 소망을 완전히 일치시키고 조화시킬 뿐만 아니라, 서로의 소망을 더욱더 증진시켜준다. 즉, 하나님의 구원방식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소원은 자신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증진시킨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구원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자 하는 소망을 더욱더 불타오르게 한다. 그 두 소원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완벽하게 조화되고 상호 도움을 받는다(롬 3:24-26). 이 방식은 죄인을 구원하시면서 자신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무한하신 지혜로 고안해내신 것이다.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4-26).
하나님의 영광과 죄인들의 괴수의 구원에 있어서, 이 방식으로 두 소망이 일치되는 것 외에는 어떤 해답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구원방식의 영화로움을 찬미하는 것 외에 그의 본성에 합당한 것은 없다. 하나님의 영광과 죄인의 구원에 일치에 관한 율법의 모든 반대에 대한 답변은 이렇게 주어졌다.
그 방식은 그의 위엄과 율법의 규약과, 그에 따른 저주에서 그의 진리를 변론한다. 그 방식은 죄인을 파멸하려는 그의 의로움, 거룩함, 그리고 엄격함을 변론한다. 그 방식만이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천사를 다루셨던 예를 변론하고, 그러한 진술에 대한 진실성을 증명하기 위해 양심의 증인을 소환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원의 방식은 율법의 모든 탄원에 대해 완전히 만족할만한 답변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방식을 선언하시고, 이러한 것들에 대해 만족할 만한 것을 제공하셨고, 그로 인하여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셨다. 이제 우리는 즉시 그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진실한 믿음은 그로 인해 발생한 모든 어려움을 해결할 것이다. 각성된 영혼은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나의 상태와 상황이 어떻든지, 나의 공포와 당혹스러움이 무엇이든지, 내가 어떤 반대를 당하든지, 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나의 구원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하지 않는 복음의 잔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것이다. 나의 인생을 평안가운데로 이끈 이 방식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의해 제기되지 않을 수 없었던 엄청난 어려움은 완전히 제거되었다.'
각성된 영혼이 이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의 방식을 굳건하게 찬동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죄인의 구원에 대한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몇몇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멸망당해도 만족해야 한다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지 말고 자신의 구원을 소원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즉 두 소원 중 어느 하나를 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필요가 없게 된다. 따라서 이 믿음은 모든 폭풍우와 재앙 속에서도 그 영혼이 흔들리지 않도록 닻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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