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선주 목사님의 주옥과 같은 설교가 있어 인용한다. 이 설교는 구원받은 강도에 대한 설교 중 가장 탁월한 설교중 한 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구원받은 강도는 회개, 신앙, 간증, 소망, 간구를 통해 구원받았다. 이것이 없이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녀도 구원받지 못한다. 역으로, 이제 교인이 되었다고 해도, 구원의 5요소만 있으면 그 시로 구원받을 수 있다.
순간적 구원
-구원에 필요한 5종 요소-
누가복음 23: 36-43
20년 전에 영국 런던항에서 대서양으로 다니는 타이타닉이라는 배가 있었다. 3천명의 승객을 태우고 항해하던 중에 돌연히 빙산을 만나, 충돌되어 3천명의 승객은 전멸을 당하였다. 그 3천명의 생사문제는 순간의 문제였었다. 만약 함장이 망원경을 들고 볼 때에, 1분간만 먼저 키를 돌려놓았다면 3천명의 생령은 면사免死 되었을 것이다. 1분1초의 관계로 생사가 좌우된 것이다. 또 수년 전에 동아일보에 현상문제가 났는데, 그 문제는 한강 철교에서 투신자살하는 자의 수가 날마다 더하고 달마다 많아지므로 그 구급 방침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 때에 1등으로 당선된 말은 이것이다. ‘조금만 참고 내 말을 듣고 가시오’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볼 때, 죽는 자가 구원 얻는 것은, 잠시 잠깐에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넉넉한 말이다. 십자가의 강도도 순간에 구원 받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강도가 쉽게 구원 받았다고 한다. 그래 어떤 형제는 이것을 구실삼는 이가 있다. 즉 형제 중 한 사람이 낙심하였기에 권면한즉 나는 세상 마음대로 살아가다가, 죽을 때 강도와 같이 믿어서 구원을 얻겠다고 하였다. 나는 말하기를 그 때에 네가 믿을 수 있을 것으로 아느냐고 했다. 강도의 구원이 그리 용이한 것이 아니다. 그는 10년, 20년 믿은자보다 훨씬 더 잘 믿는 것이다. 구원에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는데, 이제 하나씩 생각하여 보자.
Ⅰ. 죄를 회개하라
왼편에 있는 강도를 책망하며, 말하기를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라고 한 말을 보면, 그는 자기의 죄를 분명히 인식한 것이다. 그는 죄를 회개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문자漢文字를 창작한 선생이 죄罪자를 지은 것을 보면, 넉 사四자 밑에 아닐 비非자이다. 곧 네 가지 그른 것이라는 말이다.
하와는 네 가지 그른 길을 걸은 것이다. 첫째는 귀로 마귀의 말을 듣고 신용한 것이요, 둘째는 눈으로 선악과를 쳐다 본 것이요, 셋째로는 발로 선악과 나무밑까지 간 것이요, 넷째는 손으로 선악과실을 따먹고, 남편에게 먹게 한 것이다. 그런데 강도는 이 네 가지 죄를 회개한 것이다. 강도의 처지로 보면, 극단에 이르러 자포자기하기 쉬운 처지이다. 아무 소망의 여지가 없는 막다른 골목이다. 이 지경이 되면 되는 대로 하기 쉬운 것이다. 그래서 좌편 강도도 예수를 책망한 것이다. 그러나 저는 겸손하므로, 자기의 과오를 회개하여 뉘우친 것이다. 다윗은 죄를 회개할 때에 뼈가 썩었다고 하였고, 눈물은 요를 적셨다고 하였다. 죄를 깨달아 회개하는 것이 구원 얻는 방법이다.
Ⅱ. 신앙이다
강도의 신앙은 만고에 없는 신앙인줄 안다. 자기 경우가 믿을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세상 사람은 자기보다 나은 자를 의자하고 믿는 것을 상정이라 한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자기보다 더 천하다고 할 수 있다. 자기는 가시관을 안 썼으나, 예수는 가시관까지 썼고, 그 혹독하고도 심한 조롱을 받는 형편은, 자기보다도 더 미천한 것이다. 도무지 믿을 만한 점이 없었다. 그러나 저는 믿었다. 예수에게서 한 번도 전도하는 말을 들어 본 일도 없었다.
그러나 믿은 것이다. 죄인으로 저주 받아 죽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은 것이다. 내가 감옥에서 나온 후, 어느 환영회 석상에서 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군수출신인데, 나를 향하에 말하기를 ‘길 목사가 눈이 밝아지면 온 조선 사람이 주를 믿으리라’고 하였다. 나는 대답해 주기를 ‘신앙은 이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사로가 부활하므로 일어난 일은, 부흥보다 박해가 심하였다. 그래서 나사로까지 죽이려 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가? 아! 신앙, 신앙은 이적의 산물이 아니고 성령의 선물이다. 이 강도는 자기 형편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믿기는 어려운 것이다. 어느 장로가 중병 중에서 예수를 모른다고 하면서 별세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매우 섭섭한 일이다. 십자가의 고통이 올 때, 어찌 믿는 일이 용이하랴! 누구든지 평안하고, 무사할 때는 믿기가 쉬운 것이다. 주께서 이적을 베풀고, 영광 중에서 호산나 하는 주님을 믿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생명의 경각에 처하여 있는 때에, 믿기는 극히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그도 예수를 굳게 신뢰한 것이다. 이적을 보고 따르던 5천명은, 이 때에 구원 얻는 자 1인도 없지만, 강도만은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 구원을 얻었으니, 어찌 복되지 않으랴!
Ⅲ. 간증이다.
로마서 10장 10절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였다. 강도는 죄를 깨닫고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를 증거하였다. 자기 처지가 최악의 형편인데, 어느 해가에 예수를 증거할 것인가! 또는 예수의 처지로 말한다면, 12사도까지 잃고 고립에 처했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서 저주의 죽음을 죽는 형편이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모든 권세 잡은 자들이 있어, 예수를 죄인으로 취급하고, 죽이는 마당이다. 이렇듯 천하의 대세는 전부 예수를 배척하는 국면인데, 이런 때 이 강도는 예수를 증거하여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의롭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죄인시, 악인시 하는데, 강도는 이 말을 했으니, 이는 그 주위의 사람들을 모욕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말은 과연 용단성 있는 말인 줄 안다. 이와 같이 교회도 수난 중에서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 참된 증거인 줄 안다.
Ⅳ. 소망이다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한 것을 보면, 그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잘 되려 한다. 그의 소망은 땅에 있는 것이다. 어떤 노인에게 전도한즉, ‘나야 뭐! 자녀들이나 믿었으면 됐지!’한다. 그것도 세상에만 소망붙이고 사는 자의 말이다. 저 강도의 소망은, 세상에 불은 소망이 아니라 내세에 속한 소망이다. 그러므로 소망 중에서 기뻐하라 하였다. 보이는 것이 소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소망이라 하였다. 이 강도는 소망을 가지고 최후를 마친 것이다. 수십년 믿던 신자나 교역자나, 환난 중에서 신앙을 떠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소망이 없는 증거가 아닌가?
Ⅴ. 간구이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함은, 그의 중심에서 끓어 나오는 기도이다. 그 기도는 주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여호수아가 가나한 정복시에 태양을 물러가게 한 것은, 간구의 위대한 힘이었다. 도이취의 황체 카이제르(대전 당시 카이제르의 부친)시대에, 베를린 시이에는 가난한 일평민 신자가 있었다. 젊은 부부 간에는 10세, 8세, 6세, 4세된 4남매의 자녀가 있었다. 가재는 빈한하지만, 신앙은 독실하였다. 하루는 저녁 먹을 것이 없어, 온 가족이 절식하게 되었다. 그 다음 날 아침에도 역시 절식 지경이었다. 그 때에 어린 자식들은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므로, 아버지는 아이들을 위로겸 말하기를 ‘너도 할 수 없고, 나도 할 수 없는 것이니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한 후,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였다. 그러나 양식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 가정에는 말 잘하는 기이한 새 한 마리가 있는데, 기도하는 동안 열린 문틈으로 빠져 나가,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빵이 없어 울던 아이들은 사랑하던 새까지 잃어버리고 더 실망하게 되었다. 이 때에 아버지는 아이들을 위로하며, 또 기도하자고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빵도 구하고, 잃어버린 새를 찾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무엇이 문밖에서 두드렸다. 그 소리를 듣고 나가 문을 열어 보니, 날아간 새가 돌아온 것으로, 그 입에는 금강석 반지를 물고 왔다. 그래서 온 가족은 기쁨이 충만해졌다. 그런데 그 반지를 본즉 카이제르 황제의 반지가 아니냐!
놀라는 마음으로 그 반지를 들고, 교회의 목사님을 찾아가 그 사유를 말하니, 목사는 그것을 가지고 궁중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그 것을 전했다. 황제는 대답하기를, 내가 글을 쓰노라고 반지를 빼어 이불 위에 놓았는데, 어떤 새가 난데없이 들어가 그것을 물고 갔었다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받고, 그 신자에게는 3천석 추수하는 토지를 하였다. 그리고 황제는 그 새를 안고서 그림 잘 그리는 미술가를 불러다가 그림을 그리게 한즉, 그 그림은 황제가 앉은 보좌에 붙여 놓았는데, 그것이 세계적 명화라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고, 사실이야기이다. 간구의 힘은 이렇게 신기한 것이다.
이 강도는 그 쓴잔을 마시면서도 중심으로 간구할 떼에, 주께서는 쾌히 승낙하셨으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다. 이것은 과연 옛날 성도들이 한번도 받지 못한 은혜의 축복이다. 이는 모세도 받지 못한 은혜요, 다니엘도 받지 못한 은혜여며, 바울도, 베드로도 받지 못한 은혜이다.
주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시다가, 우편 강도가 회개를 하여 간구하는 것을 보시고, 매우 만족해 하시었다. 그래서 즐거우신 마음으로 강도를 향하여, 낙원에 같이 가자 하신 것이다. 강도는 세상 법률로는 죄인으로 처벌을 당하지마는 신앙의 법으로는 의인으로 죽었다. 조금 전까지는 강도였으나, 조금 후에는 주께서 인증하신 의인이다.
순간적 구원! 회개, 신앙, 간증, 소망, 간구의 힘이여! 순간적으로 구원하도다.
<길선주목사 설교>, 길선주, 혜문사, pp.9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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