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H팡세

겨울시

천국 도서관장 2010. 6. 11. 10:25

6월이 이렇게 더웠던가?

더위를 피해보려  예전에 써놓았던 겨울시를 3편을 꺼낸다.

 

 

첫눈 1악장 2악장

 

첫눈이 올 때는
미완성교향곡을 듣는다.
이 짧은 2악장의 교향곡에 맞추어
첫눈은 갑자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방황하는 게르만인처럼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대기가 불안정하다.
바람이 불다가
검은 구름을 뚫고 햇빛이 비치다가
갑자기 마지막 잎새들이 휘 날려가다가
그것에 섞이어 검은 구름 사이에
순백의 그 차가운 자태를 들어낸다.

흔들리는 1악장이 끝나면,
흔들리지 않는 2악장이 몰려온다.
파엘베르의 캐논과 같은
반복의 선율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그너의 절규도 이미 훌쩍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창백한 슈베르트가 죽음에 대한
동경의 눈빛으로 2악장을 끌어가면,
첫눈은 한층 평온한 맹렬한 속도로 밀려온다.

첫눈이 지나가면,
햇빛이 강렬하게 한 번 빛을 발한다.
그리고 3,4악장은 첫눈을 보낸 하늘처럼
충만한 무음(mute)으로 가득 채워진다.

 


아다지오

어느 노르웨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아다지오가 눈 감은 내 맘에
낙엽처럼 쌓여온다.
따뜻하다.
초겨울이 다가오면 
그는 옷깃을 풀고 맨몸이 된다. 
노르웨이 숲은 그렇게해서 헐벗었다.

느리게 낙엽은 세상을 덮어준다.
그러나 누군가는 밟고 간다.
그래도 추웠던 사람은 낙엽을 보면 비켜선다.


아다지오에 낙엽이

소록소록한다.

 

 

마지막 광합성

 

찬 북풍이 불어온다.
나뭇잎 떨리는 소리가
사무실 창을 흔들어 놓아
내 마음도 중심에서 산란한다.

저 나뭇잎은 원죄처럼
새 봄에 태어났다.
그 푸른 독초는 한 여름의 태양신을
흠모하여 점점 자라갔다.

||:가을의 풍요로운 죄의 열매들은
점점 사람들을 이 세상의 태양들로
재생산하고 재생산해 냈다.:||

어느새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그 마지막 잎새의 비명이 여기저기 들려온다.
나뭇잎 다 떨어진 나무는 아마도 무죄일까.
마지막 광합성이 끝났다고 안심하고 있는 것일까?

안으로 스며든 죄의 뿌리는
이제 이 땅을 태양신 대신에
갈망하며 점점 검게 자라간다.

마지막 광합성의 절규는
죄의 교체기를 맞이하는 환희가 아니던가.
그렇게 자란 강철보다 활기찬 나무들.

뽑으러 가지만 어느새 내 키보다 더 자란 나무들.
혹독한 추위도 견디는 안으로 안으로 참으며 견디는 나무들.
이 세상의 견고한 대지와 태양의 신들.

 

일찍 온 석양의 시간

4시에 말씀을 펴다.
중심으로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고 있는
나보다 더 끓어 오르는 중심의 분노,

그 태초의 빛이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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