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피니

찰스 피니 자서전 요약

천국 도서관장 2009. 6. 8. 12:19

 

찰스 피니(불의 전도자)의 자서전



1. 찰스 피니(1792~1875)의 교회사적 위치

그는 2차 대각성 운동(The Second Great Awakening)의 주역 중의 한 사람이다. 2차 대각성 운동은 뉴잉글랜드에서 시작되었다. 1차 대각성 운동이 교리적 차이와 분파 정책으로 큰 상처를 입고 결말이 난 후, 약 2세대가 지나자 다시 부흥의 영이 신대륙을 휩쓸기 시작했다. 이런 혼란기에 피니는 1821년에 강력한 회심을 체험한 후, 뉴욕과 필라델피아, 보스턴은 물론 영국까지 회심을 불을 전파하는 데 앞장을 섰다. 그의 전도 사역으로 약 50만 명이 회심하여 예수님께 돌아 왔다고 한다. 오늘날 미국의 교회는 1, 2차 대각성 운동의 지도자인 조나단 에드워즈와 찰스 피니에 의해 세워졌다고 해도 무방하다.

 

2. 회심하기 전 찰스 피니

찰스 피니는 1792년 8월 29일 코네티컷의 워렌에서 농부의 7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무런 종교적 혜택도 입지 못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1818년 아담스에서 있는 W씨의 법률사무소에 들어가서 법률견습생으로서 법조계의 발을 들여 놓았다. 피니는 혼자 숲 속을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뛰어난 신체조건(189cm)을 갖고 있어 모든 운동에 능했고 음악에 재능이 있었다. 성격은 날카로웠고, 다소 남을 경멸하는 듯한 인상을 가졌다고 한다.


3. 찰스 피니의 회심

피니는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중 ‘블랙스톤의 법률 해석’이라는 책을 공부하면서, 모든 민법과 도덕법의 원천이 모세의 율법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게 된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성경을 구입해서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편 피니는 칼빈주이자인 조지 게일이 시무하는 장로교회에 출석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피니는 두 가지 면에서 실망을 하게 된다.

첫째, 게일 목사님은 온화한 사람이었으나, 자신이 하는 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둘째, 이 교회에는 기도회가 있었는데, 여기에 참석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이 기도하고 있었다. 즉, 응답은 아예 바라지 않고 기도하고 있었다. 피니가 보기에는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모임이었다. 그러나 피니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 역시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없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었다.


종교에는 무한한 중요성이 있는 것으로 보였고 만약 영혼이 불멸이라면 내가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복음과 기독교의 진실성이나 허구성에 관한한 나의 마음은 여전히 확정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그 문제에 관해 불확실한 상태에서는 마음 놓고 쉴 수가 없었다.”(8면).


자신의 영적상태를 인식한 피니는 성경 연구를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 조금씩 깨닫게 된다. 게일 목사님이나, 장로님들 그리고 기도회는 성경의 내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둘 중의 하나가 문제인 것이다. 성경에 오류가 있거나,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불일치-그렇게 많이 기도해도 사람들이 응답(성령의 부으심으로 인한 거듭남)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는 나에게 큰 걸림돌이었다. 나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 사람들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가? 혹 내가 이 문제에 관한 성경의 약속과 가르침을 오해했는가? 혹은 성경이 진실이 아니라고 결론지어야 하는가? 하는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여기, 내게 납득되지 않는 어떤 것이 있었다. 한때 그것은 나를 회의주의로 몰아갈 뻔했다. 성경의 가르침은 내 눈 앞에 나타나는 현실과 도무지 일치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9면).


그러나 피니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기도회 중에 사람들이 응답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믿음이 없어서 그랬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피니가 보기에는 성경의 오류가 있다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내 자신이나 목사님이나 교인들의 마음에 어떤 혼란이 있든 그것과 무관하게 성경은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완전히 굳어지게 되었다.”(10면).


1821년 가을 어느 일요일 아침에, 그는 구원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다. 그때부터 더욱 맹렬히 성경을 묵상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강한 자존심은 다른 사람이 그가 구원문제로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는 것을 알기를 원치 않았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걸쳐 그는 죄 문제에 대한 강한 각성을 하게 된다. 화요일 저녁 죄 문제로 인해 거의 죽음에 직면한다. 그러나 수요일 아침 주님께 강한 도전의 음성을 듣게 된다. “너 자신의 의를 이루려고 노력하고 있느냐?”(14면)라는 음성을 듣자마자,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절감하고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바치기로 한다. 이때 다시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너는 그것을 오늘 지금 이 시간에 받아들이겠는가?”(14면)


이에 피니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는 북쪽의 숲 속으로 기도하기 위해서 올라갔다. 그러나 사람들이 볼까봐 숨어 다녔다. 이에 기도가 방해되자 그는 응답받기 전까지 산에서 내려오지 않기로 마음  먹고 더 깊숙이 숲 속으로 들어갔다. 거기에서 기도하다가, 그는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고, 다시 움츠러들었다. 바로 그때 그의 회심을 방해하는 것이 자기의 자존심임을 깨닫고 그것을 즉각 포기하였다. 그 후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지켜주시는 것을 깨닫고 그 약속을 모두 받아들이자, 놀라울 정도로 죄짐이 사라진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란 피니는 자신이 성령을 슬프게 했기 때문에, 주님이 주시는 회심의 마음이 사라져 죄짐이 가벼워 졌다고 착각을 해 낙심했다. 그러나 마음이 너무나 평안해서, 어찌된 연유인지 자신의 회심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 후 사무실 돌아와 첼로로 찬송가를 연주하며 경건의 시간을 보냈다. 저녁 때 쯤에 피니는 혼자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때 그는 예기치 않은 성령의 세려를 받게 된다.


“내가 불가의 의자에 앉으려는 순간 나는 강한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그것은 전혀 예측치 않았던 것이었고 그런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으며, 누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어 본적도 없었을 때에 성령은 나의 몸과 영혼을 꿰뚫고 지나시는 것처럼 나에게 임하셨다. 그것은 마치 전류와도 같이 내게 흘러오고 또 흘러온 것이었다. 정말이지 그것은 사랑의 파도와 같았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말로도 그것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숨결 같았다. 그것은 거대한 날개처럼 나를 부채질하였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기억할 수 있다.”(21면).


회심 직후 그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칭의(稱義)를 경험 하게 된다.


“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알 수 있는 한 나는 죄를 짓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내가 항상 범죄하고 있다는 느낌 대신에 내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차 넘쳐 흘렀다.” (25면)



4. 회심 한 후의 찰스 피니

회심한 후 피니는 곧바로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거듭남을 간증했다. 그때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강한 도전을 받고 회심하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1장 8절(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이 피니에게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성령의 권능을 받은 그는 먼저 이웃 청년을 회심시켰다. 이 청년은 피니에게 직접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피니가 B장로와 말하는 것을 듣고 회심하게 되었다. 그 후 만나는 사람마다 피니에게 영향을 받아 회심의 역사가 일어났다. 또는 대적의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피니는 마을에 성령의 불을 퍼뜨렸고 게일 목사님이 시무하던 교회에서 간증을 하게 되었다. 이때 게일 목사님의 반응이 흥미를 일으킨다.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게일 목사가 일어나 자백했다. 그는 자기가 교회에 걸림돌이 되어 왔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전에 교인들이 나(피니)를 위해 기도하자고 말했을 때 그들을 실망시켰다고 자백했다. 또한 내가 회심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기는 그것을 안 믿는다고 즉각 대답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에게는 신앙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사실들을 아주 겸허한 태도로 고백했다.”(31면)


게일 목사님은 이 글에서 끝까지 회심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다.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회심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누룩 때문일 것이다. 자라온 환경, 가치관, 교육관에서 발생한 누룩 때문일 것이다. 게일 목사님은 프린스턴 신학대학교을 나왔는데, 당시 프린스턴은 형식주의와 인복주의적인 신앙이 싹트고 있었다. 그럼에도 게일 목사님은  피니에게 신학을 하도록 권면하고 교육시킨다.


회심 후 피니의 신앙은 급격하게 성장한다. 먼저, 소명에 대해 조금씩 깨닫게 된다. 마을뿐만 아니라 마을 밖까지 피니의 사역은 전 계층의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갔다. 전도자의 소명 때문이었을까? 피니는 복음 전파되어가는 것에 굉장한 기쁨을 느끼고, 음식이나 수면의 필요조차 잊고 지낼 때가 다반사였다. 둘째로 주님과의 교제가 깊어지는 것이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나의 동기와 느낌으로 주의를 돌릴 때는 나의 감정도 침체하는 것이었다... 성령님으로 하여금 그 분의 뜻대로 행하시게 해드리고 내 자신을 드려 그 분이 나를 인도하고 가르치게 해드릴 때는 항상 큰 유익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40면)


셋째, 기도의 영을 받게 된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어떤 영혼에 대해서 갑작스럽게 기도의 중압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 줄 몰랐지만, 기도를 통해 짐이 해결되고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판단으로 어떤 영혼을 위해서 기도할 때, 그것을 막으시기도 했다. 역시 당시는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후에 주님께서 기도의 영을 막으셨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렇게 개인 영성이 자란 피니는 시간이 지나자 본격적으로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된다.



5. 전도자로서의 찰스 피니

전도자란 설교권을 가진 순회전도자를 뜻한다. 일종의 부흥사로 보면 될 것이다. 피니는 게일에게 신학을 교육받고, 1824년 3월에 시험에 통과하여, 전도자의 자격을 얻게 된다.

피니가 처음 복음을 전파한 곳은 에반스 밀스였다. 이 지역은 피니의 설교를 좋아만 했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려들지 않았다. 그래서 피니는 통렬하게 그들을 비판하며 그들이 죄인이며, 하나님을 거부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다음시간 설교 때, 이에 대해서 해결받을 사람만 오라고 했다. 이 때 피니는 숲 속에서 그들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며 말씀을 준비했다. 필자는 피니의 설교를 처음 읽고 “유도탄 설교”라고 혼잣말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는데, 세대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피니의 설교를 들으면 자신들 개인의 문제를 직시하고 영혼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피니의 설교는 성령님께서 주관하시기에 사람들에게 유도탄처럼 날아간 것일 것이다.


“나는 그 때까지도 설교할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이런 일은 그 당시 내게는 다반사였다. 성령이 내 위에 계셨고, 내가 행동을 취해야 할 시간이 되면 무엇을 설교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시리라는 자신감을 느꼈다.”(60면)


“한 시간 이상 아마도 한 시간 반 동안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통해 그들에게 쏟아 부어졌다. 그것은 반석을 치는 불과 망치였으며 영과 혼을 찔러 쪼개는 칼이었다. 나는 전 회중 위에 죄에 대한 확신이 전체적으로 퍼지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이 머리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61면)


피니의 사역의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중요한 요소는 기도였다. 여기 에반스 밀스에서 그는 다니엘 내쉬라는 목사님을 두 번째 만나는데, 그는 피니의 기도의 동역자였다. 50만명을 회심시킨 피니의 뒤에는 그 사역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기도 한 내쉬 목사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쉬 목사님이외에도 피니가 인도하는 집회에는 꼭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피니의 낯선 설교 방식은 많은 목회자들로부터 질책을 받게 된다.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피니는 너무 일상적인 어휘와, 예를 사용하며, 같은 주제를 반복해서 설교함으로써, 설교의 품위를 떨어뜨린 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피니는 항상 복음의 진리와 적용을 최선의 길이라 생각하고 성령의 조명을 받아서 준비한 다음 그 주제를 가지고 많은 시간을 기도한 다음 회중들에게 쏟아 놓는 방침을 고수하며, 비판자들을 물리쳤다.


피니의 설교는 이렇게 성령의 조명 하에 즉각적으로 결정되어 준비되었느데,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에반스 밀스의 북쪽에 있는 앤트워프 지역에서 어떤 장로가 와서 설교해 달라고 해서 갔다. 그런데 그 지역은 영적 수준은 말할 것도 없고 도덕적 윤리적 수준이 정말 형편 없었다. 이에 크게 고통 받던 중, 피니는 자신도 모르게 창세기 19장 14절을 설교하게 되었다. 이는 소돔의 멸망을 경고하며, 의인 롯에게 가족을 데리고 떠나라는 내용이었다. 피니는 이 주제를 가지고 소돔이 얼마나 타락했으며, 그곳에 의인은 롯밖에 없었고, 구출된 사람은 롯의 가족뿐이었다고 했다. 그러니 심판받기 전에 회중들은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설교를 듣고 모두 화를 내고 몹시 분개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마을 이름이 소돔이었고, 그에게 설교를 부탁한 장로님이 롯이었다.


다음 사역지 브라운 빌에서는 특별히 기도의 영이 강하게 임하였다. 새로운 회심자들은 기도의 영을 강하게 받아 철야기도를 했으며, 중보자들은 영혼의 무거운 짐을 지고 기도했다. 뿐만 아니라 유티카 지방에도 기도의 영은 현저했다. 그들은 두 세 사람만 모이면 어디서고 기도했다. 한편 회심을 못하고 고민하던 세련된 질레트 부인은 그 원인이 자신이 한 악세사리였다는 것을 발견했다. 피니는 이때 사소해 보이는 것도 회심의 큰 방해가 된 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유티가 부흥 중에 피니는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체험하는 데, 그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떨림으로 임했다고 한다.


기도의 영이 강하게 임하면 사역은 아주 강력한 모습을 띄게 되는 데 트로이라는 지방에서 그랬다. 물리적으로 보더라도, 아주 강건한 남자라도 주의 말씀에 꺼구러뜨려 완전히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참 감격스러운 장면은 필라델피아 지방에서 일어났다. 그 지방은 외딴 곳으로 나무를 벌목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불어난 강물에 뗏목을 타고 오다가 피니의 설교를 우연히 듣고 회심하였다. 그리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한번도 교회에 다녀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회심으로 인도하여 전 마을이 회심했다. 이곳은 목사도 없이 회심이 저절로 일어났다. 성령의 불이 아니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현대 교인들은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 뉴욕주의 오네이다의 팰프스 씨를 알면 그렇지 못할 것이다. 팰프스 씨는 큰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사람이었다. 피니는 그 집에 머물던 중 한 밤중에 물건을 가지러 가다가 팰프스 씨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 것을 알고 방해한 것을 사과 하니 이렇게 말했다.


“저는 낮에는 해야 할 산더미 같은 일 때문에 개인 예배를 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애들을 재운 뒤에 밤중에 일어나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죠.”(166면).


피니의 믿음은 인격의 3요소인 지, 정, 의(知, 情, 意)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나는 하나님의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거듭 강조하였는데 이 믿음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며 마음의 동의요 신뢰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계신된 대로 하나님을 지식의 기초 위에서 자발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174면)


피니는 1832년에 건강상의 이유로 복음 전도자에서 목회자, 신학교수로서 사역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방법론에서도 이제 지면을 사용하여 부흥론에 관해서 출판하기도 한다. 필자는 그의 <진정한 부흥>이라는 책을 부흥론의 교과서라고 보고 있다. 비록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가 비전통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한 부흥론자라 비난하지만 말이다. 필자가 보기에 존스 목사님은 칼빈주의자로서, 칼빈주의의 부흥론만 옹호하는 한계를 보이기 때문에 알미니안 주의 요소가 있는 피니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칼빈주의뿐만 아니라 알미니안까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보며 복음주의자들의 연합을 주장하였다(<청교도 신앙>, 생명의 말씀사, p.110).


한 가지 꼭 다루어야 하는 것은 피니의 성화론이다. 그의 성화론은 회심 후 사라지지 않은 평안을 소유하며, 정죄 받지 않으며, 정죄감이나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는 성화론을 주장했다. 이로 인해 그는 반율법적 완전주의자라는 이름으로 공격을 받았다. 이에 대해 더 연구해 봐야 하겠지만, 인간의 의지로 완전해 질 수 있다는 의미로 성화론이 오도되어 공격받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 후 피니는 첫 번째 아내와 사별하는데. 이때 큰 실의에 빠지게 되나, 회복된 후에 한 단계 진전된 신앙인으로 성장하여 미국에 이어 영국을 변화시킨다.


6. 결론

피니는 현대 부흥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가 말하는 부흥이란, 개인적 측면으로는 성령의 거듭남이며, 교회적 측면으로는 성령의 임재이다. 그렇다면 그를 통해 일어난 부흥은 어디로 갔는가? 부흥론을 연구하면 알겠지만 부흥 다음에는 역부흥이 온다. 이 말세의 역부흥 시대에 한국 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 교회는 피니가 말한 부흥의 성벽을 재건하여야 한다. 그리고 부흥 후에 오는 역부흥을 막고 부흥을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그 가능성을 쿠르트 코흐박사의 <God among the Zulus>에서 찾았다. 줄루족에 임한 부흥은 확인한 바로는 약 10여년이 지속되었는데, 그것은 역사상 유래가 찾아보기 어려운 부흥기간이다. 이 성과를 발전시킨다면 주님의 나라가 지속적으로 확장될 것을 강하게 믿는다. 그러나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부흥의 전적인 주권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명심하고 휴머니즘의 덫을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