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H팡세

소경이 되는 자유

천국 도서관장 2009. 7. 18. 14:04

소경이 되는 자유

나(샤르트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현재 이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깨닫는 것은 현재의 위치일 뿐이다.
그 이상을 볼 수 없다.
진리?

그런 것은 없다.
학문을 연구해서 진리를 체득했다면
세상은 이와 같은 모습일리가 없다.
철학자의 말대로라면
세상은
벌써 천국이 되어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내가 맞이한 21세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세상은 무질서 그 자체다.
여기에 질서를 불어 넣었던 그 모든 것은, 종교조차도 세상을 어지립혔다.

차라리 이 모든 것에 눈을 감아라.
세상은 거짓이다.

그러면 지금이 보일 것이다.
세상에 눈 감으면, 비로소 지금이 보인다.
지금 이 현재에 나라는 존재자체가 중요하다.

진리가 없다면,
나는 이제 내 스스로가 가야한다.
앞이 안 보이지만, 가야한다.

드디어 나는 자유를 얻었다.
세상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니.
'존재의 무'가 보였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자유인이다.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러나 왜 앞이 보이지 않는가?
현재 이상은 어디인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길이 있는가?
... ... ...


철학자들이 제시한 답은 거짓이었다.
그 답에 얽매인 것은 구속일 뿐이다.
그렇다. 세상엔 길-진리는 없다.

나여;
그리나 눈을 감았을 때
세상이 말하는 진리를 알게 되었지 않는가?
이 거짓 세상에서 유일하게 참되게
존재하는 것은 나이며,
내가 하는 모든 것은 이제 진리라는 것을 깨닫지 않았는가?
그 누가 나를 방해할 수 있단 말인가!
제갓것들은 거짓말쟁가 아니냔 말이냐.

아! 이 얼마나 자유로운가?
그러나,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가?

그런데
이 자유는 왜 이리 부담스러운가?
왜 이리 나를 불안하게 하는가?
앞이 안 보이는 자유!
소경의 자유!

누가 이 자유를 가져 가 주었으면 좋겠구나.
그러나 난, 깨닫는다.
누구도 내 자유를 대신 져 주지 않는 다는 것을.

에필로그
<존재와 무>를 노래한 샤르트르 이후, 세계는 해체되어 간다.

'CYH팡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계성과 도덕성  (0) 2009.07.24
KARISMA  (0) 2009.07.18
구원의 본질은 이해보다는 확신에 있다  (0) 2009.07.16
겟세마네 기도  (0) 2009.07.14
김익두 목사님 전기  (0) 2009.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