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들의 외침

<God Among the Zulus;줄루족에게 임한 부흥>

천국 도서관장 2009. 7. 6. 17:27

복음의 최전선에서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역사가 반복된다. 수년 전에 <God among the Zulus;줄루족에 임한 하나님>이라는 원서를 구했다. 쿠르트 코흐박사님이 엘로 형제에게서 들은 줄루족에 임한 부흥에 대해서 조사해서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복음의 최전선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평양대부흥운동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어 은혜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은혜가 되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빨리 이 책을 번역해서 출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에 줄루족에게 부흥이 어떻게 다가왔고 적용되었는지 단적으로 볼 수 있는 내용이 있어 인용해 본다.


축복하시는 주님


성경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죽기살기로 싸운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런 사람들 중 두 명을 언급하려고 한다. 역대상 4장 10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하나님께 축복을 구하는 이와 같은 씨름은 창세기 32장의 야곱이 브니엘에서 경험한 놀랄만한 사건에서 확실히 발견된다. "당신이 제게 축복을 주실 때까지는 여기에서 떠나가지 않겠습니다"라는 야곱의 부르짖음은 많은 믿는 사람에게 지금도 용기를 주고 있다.



1. 하나님의 축복 얻기를 간구함

엘로(Erlo)는 하나님의 축복을 허락해 달라고 맹렬하게 투쟁했다. 텐트 선교를 시작한 후에 엘로는 몇 달 동안 여행하면서 그가 전에 전도하고 상담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녔는데, 그들이 영적으로 매우 피폐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분열되어가고 있었으며 서로 증오하고 있었다. 엘로는 때때로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그들과 2주간을 보내기도 했다. 교회에 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집에서 열고 있는 성경모임에 데리고 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방문 직후에도 똑같은 잘못에 대해 지적받곤 했다. 그 걱정스러운 설교자(엘로)는 "그들이 항상 그렇게 무기력하고, 생기 없어야 합니까? 왜, 회복했다가 다시 주저 않습니까? 계속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왜 패배합니까?"라고 주님께 기도했다.


그런데 드디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로 인하여 새 시대가 도래했다. 1966년 가을동안 엘로는 마푸물로(Mapumulo)에 있었다. 전 년도에 아픈 경험을 한 후에 엘로는 몇몇 크리스천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그들의 영적인 삶이 성경과 일치되는지를 연구했다. 엘로는 그들과 함께 사도행전을 읽었다. 그들이 함께 공부한 장소는 회반죽이 치래져 있으며 소 배설물이 나뒹구는 오래된 마구간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었다.


그들이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절름발이의 치유에 대한 사건을 보다가 잠깐 휴식을 취했다. 엘로는 이 기사에 연관된 한 가지 사소한 사건을 말했다. 어느 유명한 학자가 큰 예배당에서 강의를 하자, 헌금이 매우 많이 들어왔다. 교회의 사무실에는 헌금으로 들어온 돈 뭉치들이 쌓여있었다. 그 학자는 돈 앞에 서서 비평조로 말했다. "베드로는 더 이상 '은과 금이 내게 없구나'라고 말할 수 없겠습니다." 그러자 그 교회의 목사님은. "저는 더 이상 일어나 걸으라고 말할 수 없겠군요!'"라고 대꾸했다.


성경공부 시간은 참석한 사람들의 자기점검 시간이 있었는데, 엘로도 이 시간동안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모임장소인 마구간을 개조한 방 창문으로는 그 지역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즐겨 운동하는 테니스 코트가 보였다. 엘로는 그 방에서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이 밖에서 분명히 들릴 것 같아, 창문을 닫았다. 그 때 주께서 그를 꾸짖으시길, "나는 밖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너는 밖에서 누가 들을까봐 걱정만 하는구나, 너는 사람들 때문에 염려하고 있다." 또 엘로는 박에 나갔다가 그 모임장소에 들어갈 때, 빨리 면도하고 옷을 갈아입고 들어가려고 했다가 하나님께 꾸중 들었다. "네 속에는 아직도 자만감이 가득 차서, 면도하지 않은 모습을 사람들이 볼까봐 두려워하는구나."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은 그의 자녀를 성결하도록 씻기시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기도시간은 더욱 회개와 자신의 더러움을 고백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들은 매우 열심히 기도해서, 그 모든 죄들을 용서함 받았다. 이 작은 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거의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실제로 크리스마스조차 기도하는 동안 잊어 버렸다. 회개와 기도의 영이 여기에 참석한 23명의 사람들에게 임했다.



2. 하늘문이 열림

성령의 부음이 있기 몇 주 전에 기도 모임에 참석하는 한 여인이 일어나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이런 무기력한 모임을 견딜 수 없어요. 지금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은 기꺼이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세 달 전에 회심한 이 여인은 주께서 성경에 나온 대로 다시 임하실 수 있는지 없는지를 눈물로 간청했다. 엘로는 완전히 이 기도에 포로가 되었다. 후에 그는 그의 동생에게 말했다. "내 마음은 예수님과 얘기했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처럼 터질 것 같았지. 그 기도시간에는 정말 성령님께서 함께 임하셔서 우리는 곧 초대교회의 교인들에게 일어났던 경험을 하게 하실 것이라고 믿었단다."


엘로의 느낌은 확실했다. 몇 주 후에 이 여인의 기도로 인해 그녀와 함께 기도한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험을 실제로 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 위에 임한 것이다. 그들은 아주 건조한 느낌과 함께 강한 소리를 들었다. 죄에 관한 깨달음이 그들 위에 임했고,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체험했다. 그들이 지금껏 느껴왔던 갈급함과 곤핍함은 성령의 능력에 의해 멀리 사라졌다. 엘로와 그의 팀의 사역에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성령의 부으심"이라는 표현의 사용은 즉각적으로 보수주의자나 전통주의자들에 의해, 예수님이 태어나신 직후에나 그런 역사가 있었지, 지금은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주장될 것이다. 그들은 성령은 말씀과 교회에 살아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신학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에 관해 몇 가지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다.


왜 그런 위대한 부흥이 일어날 때 우리는 예루살렘만 그것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예를 들어, 1971년 8월에 솔로몬제도에 있는 섬에서 3000명이 참여한 집회에 성령님께서 질풍처럼 임하셨다. 그들은 바닥에 앉아서 자신의 죄로 인해 몹시 비통해 했다. 소위 미국의 섭리신학의 대표적인 신학자들은 그것은 거짓된 보고라고 선언했다. 나에게는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실제로 겪은 영적인 경험들이 단지 열매 없는 신학에 얽매인 몇몇 사람들에게  평가절하되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예루살렘의 역사가 꼭 똑같이 반복되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성령님께서 죽은 무리라고 여겨졌던 명목상의 크리스천과 이방인에게 오셨다는 것이다. 그런 일에 대해 어떤 전통주의자도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왜 우리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주었던 교훈을 잊고 있는가? "주의 성령이 그가 가고자 하는 곳에 임하셨다." 우리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 "성령이 임하시고자 할 때 그에게 오신다." 나는 때때로 몇몇 신학자들이 그들의 무능을 신학적 지식 뒤에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전통주의자뿐만 아니라 몇몇 열심 있는 사람들도 마푸물라에서 있었던 성령의 부으심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은 "이 때 영적인 선물이 눈에 보이게 임했는가?"를 알고 싶어 한다. 이 의문에 관해 확실해 대답할 수 있다. 아직도 그런 역사가 많이 보고 되고 있기 때문이다.


1967년 초에 마푸룰라에서 발생한 이 위대한 경험이 다른 지역에서도 소규모로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확실히 성경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예루살렘에 성령의 부으심이 기록되어 있다. 이미 사도행전 4장에서도 "그들이 함께 기도할 때에, 함께 모여 있는 장소가 진동하였고,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였더라"라는 말씀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났던 일이 좀 더 소규모로 반복되어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사도행전의 역사가 반복되어지지 않는다면 사도행전 자체에서 그 내용이 벌써 수정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 받는 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그것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사도행전 8장 17절, 10장 44절, 19장 6절에서 그런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서 우리는 바울이 기도하던 중 성령 충만을 받고 에베소 교인들에게 "성령충만 받으라"라고 했던 내용을 볼 수 있다. 성령 받는 것에 관한 모든 신학적 문제는 이에 의해서 충분히 설명됐다.(이에 관해서 나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책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3. 성령의 부으심의 결과들

마푸물라의 큰 영적 경험으로 인한 축복의 큰 수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열매는 누가복음 9장 1, 2절에 묘사되어 있듯이 3중 권세와 권능으로 나타나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복음전파, 병 고침, 구원이다.


1)복음전파

복음의 경이로운 힘은 매우 광범위하게 알려지어 가까이에 있든, 멀리에 있든 그 소식이 흘러 들어가게 되어있다. 때때로 엘로가 그의 집을 나섰을 때 이미 200명의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그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 초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번 모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영적인 상담을 받기 위해 남아 있었고,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 앞에 그들의 삶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이 사역의 시작 때부터 엘로에게는 그들 도와주며,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상담을 거들어 주는 동역자가 있어 큰 힘이 되었다. 죄 고백과 주님께 삶을 내려놓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67년에 시작된 부흥은 지금까지 약해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나(쿠르트 코흐 박사)는 엘로와 그의 동역자들과 여행하면서 주님을 영접하고 그의 길로 나아오는 수 백 명의, 아니 수 천 명의 사람들을 직접 목격했다. 창고관리원인 그 팀의 한 멤버는 9일간의 전도 여행 동안 영적 상담을 받은 사람이 무려 3900명이 되었다고 했다. 숫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죄인 한 명이 회개할 때 주의 천사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시각으로 보라는 말이다. 그 숫자는 단지 주님께서 그 부흥에 얼마나 강하게 역사 하셨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트랜스케이(Transkei)에 있는 냐니스웨니(Nyaniswni)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한 번은 어떤 백인계 아프리카인이 멀리에서 나를 만나기 위해 왔다. 그는 나의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나와 얘기하고 싶어했다. 집회에 끝날 즈음에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영적인 상담을 하기 위해 왔을 때 그가, "단지 하나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부흥 때에만 볼 수 있습니다"라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한 예배시간에 그와 같은 일을 경험했다. 엘로에 의해 초대를 받고, 나는 크와 시자반투에(Kwa Sizabantu)서 1976년 3월 27일에 말씀을 전파했다. 나는 마법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왜냐하면 줄루족은 태어날 때부터 마법의 영향력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내가 설교를 마쳤을 때 엘로가 수 백 명의 영혼들에게 "그들이 마법으로 인해 지었던 죄를 고백하고, 의로운 삶에 헌신할 사람들은 남아서 상담을 받으라"고 전하였다. 그러자 4백에서 5백 여 명의 사람들이 남았다. 따라서 그것은 나의 설교의 능력이 아니라, 분명히 엘로와 그의 동료들이 과거 10년 동안 경험했던 부흥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엘로가 대규모의 선교팀과 함께 사역하는 것은 영적인 상담을 받기 위해 쇄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2)치유

응쿠투 마포스와네(Nqutu Maposwane)에 이웃에 사는 병든 두 여인이 있었다. 한 사람은 오랫동안 심각한 속병을 앓았다. 그녀는 누군가 집회장까지 차로 데려오고 데려가야 했다. 그녀는 복음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었다. 얼마 후에 마틴 스티전(Martin Stegen)은 그 아픈 여자를 투게라 페리(Tugela Ferry)에서 열리는 집회에 데리고 갔다. 엘로는 그녀를 위해서 기도했고, 그녀는 즉각적으로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그녀의 즉각적인 치유는 이웃에 사는 여자에게도 기도하도록 용기를 주었다. 그녀는 완전히 불구자여서 여섯 명의 아이들을 돌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 선교팀 중에 한 사람이라도 와서 그녀를 위해서 기도해 줄 수 없는지 요청했다. 그때 엘로는 크랜스콥(Kranskop) 지역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다. 마틴은 그 장애를 겪는 여자를 집회장소에 데려왔다. 그 환자는 화물자동차의 소가죽 위에 앉아서 왔다. 그녀는 머리 위에 스카프도 들 기력이 없었다. 바람이 불어 스카프가 날라 갔다. 함께 왔던 사람들은 돌아가서 스카프를 주어 와야 했다. 화물 자동차는 공중 집회가 막 시작하기 전에 도착했다. 그 환자는 군중들 사이에 알맞은 자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녀는 메시지를 들은 후에 영적인 상담을 하려고 남았다. 사역 팀에서 한 여인이 와서 그녀와 함께 대화한 후, 팀 전원이 와서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그 환자는 일어나 차 있는데 까지 걸어갔다. 밤중에 그녀를 태운 화물 자동차가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가족이 그녀를 데리러 나왔다. 치유 받은 그 여인은 아무 도움 없이 차에서 내려 와서 화물자동차의 불빛 앞으로 걸어갔다. 아무도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얼마 후에 누군가가, "보세요.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는군요!"라고 외쳤다. 추가적인 예들은 다음 장에서 더 나누겠다.


3)구원

부흥이 일어났을 때 엘로는 그전에는 악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과 상담해 본 적이 없었다. 마푸물로에서 성령의 부으심 있고 얼마 후에, 한 무당이 영적인 도움을 구하러 그에게로 왔다. 이 여인은 그녀가 세운 학교에서 어린 무녀들에게 무당이 되는 기술을 전수하고 있었다. 그녀는 또한 영매로서의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녀가 와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엘로는 도움을 받기 위해 그의 동료 5명을 불렀다. 그들은 둥글게 앉아서 기도하며 "내 주께서 살아계시는 데, 왜 두려워해야 합니까?"라는 찬양을 드렸다.

그 찬양을 하는 동안 그 무당은 일어나 둥글게 앉아 있는 사람들의 안쪽으로 갔다. 갑자기 그녀는 무릎 꿇고 손을 감쌌다. 그녀의 얼굴은 사나운 짐승의 모습이었다. 영적인 사람들이 '변형'이라고 부르는 얼굴의 변화가 있었다. 이와 같은 예는 나(쿠르트 코흐 박사)의 브루넨-벌래그 베이슬(Brunnen-Verlag Basle) 출판사에 출판된 <Occult ABC(한국어 역-사탄의 전술 전략> 544 페이지에 자세히 나온다. 남녀를 합쳐 여섯 명이었던 우리는 그녀의 얼굴에서 사탄의 표정을 보고 모두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도망가려고 일어났다. 그러나 엘로는 소리쳤다. "승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 도망가지 마십시오!"


이 지역 출신인 무당은 영어를 하지 못했다. 따라서 영어를 알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그 무당이 갑자기 유창한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여러 동물소리를 냈다. 처음에 그녀는 개가 짖는 것같은 소리를 냈고, 그 다음에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를 냈다. 엘로는 그런 세력이 예수의 이름으로 인하여 그녀로부터 떠날 것을 명령했다. "우리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권능도 우리를 쫒아 내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마귀는 비웃으며 선언했다.


엘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 이름으로 반복하여 명령했다. 계속하여 기도하자, 귀신들이 외쳤다. "우리는 하나님도 알고, 예수님도 아는데, 지금까지, 성령님을 만나본 적은 없다.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그가 오실 때 우리는 불타겠구나. 우리는 이 지역에서 떠나야겠구나."

그 순간 그 고통 받던 무당의 얼굴은 즉각적으로 변했다. 그녀는 기쁨으로 가득한 얼굴로 외쳤다. "오, 놀라워라! 완전한 자유를 얻었구나."

사단의 권세가 그녀에게 다시는 오지 않았다. 이 후에 어떻게 예수님께서 승리하셨는지를 듣고, 많은 무당들이 와서 자유를 얻었다.


"죄의 구원-치유-사단의 사로잡힘으로부터의 구원" 이것은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선포했던 3중의 메시지이자, 권능이었다. 신학자들은 종종 이것은 20세기에는 전혀 적용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부흥에서 우리는 이런 거룩한 3중의 권능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계속 그렇게 하라고 남겨 놓고 우리는 그들을 떠나자. 왜냐하면 우리는 살아계신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주 예수는 어제와 오늘도 영원히 동일하시다."(히 13: 8).


우리는 말라기 3장 10절의 말씀에서 주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로라,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니하나 보라." 줄루족에게 일어난 부흥은 실제로 이 말씀에서처럼 주님의 축복으로 충만하였다.


4)주의 복음으로의 충만

로마서 15장 29절에서 사도 바울은 주의 복음의 충만한 축복에 대해서 말한다.이미 보았듯이, 이 축복은 3중적으로 되어 있다. 이 3중의 축복의 흐름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실제적이고 능동적으로 다가 왔다. 다음의 경험은 위에서 말한 3중의 기름부음에 대해서 잘 설명해 준다.


14살의 이교도 응주다(Mjuda)라는 소녀는 2년 동안 병들어 누워있었다. 마법사, 예언가, 시오니스트(Zionist)와 의사들은 더 이상 그녀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법사는 그녀가 낫지 않는 것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제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약에 빨리 그녀가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세상을 떠난 그녀의 어머니의 영이 재물대신 그녀의 생명을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말하길, 이 병은 그녀의 생명을 해치려는 영들의 공격의 시작이라고 했다.


응주다는 죽은 어머니와 할머니와 같은 증상을 나타냈다. 그녀의 언니도 한동안 아팠었다. 마법사는 귀신들이 그녀의 언니가 마법사가 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교도인 줄루족에게는 때때로 그런 아픈 사람들이 귀신에게 삶을 맡겼을 때 재빨리 병에서 회복되는 일이 있었다. 응주다의 아픈 언니는 그러한 제안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그녀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그녀는 나이든 노인처럼 몸을 뒤틀고 웅크렸다. 그녀의 피부는 검게, 실제로는 검정색으로 변했다. 어떤 크리스천이 크와 시자반투(Kwa Sizabantu)에 임한 부흥에 관해서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 아픈 소녀는 크와 시자반투에 가서 강렬한 회심을 경험했다. 동시에 그녀는 치유받고 어둠의 공격들에서부터 구원받았다. 여기에서 다시 영적인 도움의 3중적인 현상인 죄의 구원-치유-귀신으로부터의 구원의 분명한 증거를 볼 수 있다.


그 치료받은 언니는 응주다에게 즉시 돌아와 유일한 구원자이신 예수님에 관해 말해주었다. 응주다는 시오니스트의 보호아래 있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말하지만 남아프리카의 시오니스트는 이스라엘의 시오니스트 운동과 전혀 관계가 없다. 남아프리카의 시오니스트들은 성경과 컬트와 섞여 있는 종파에 속한다. 예를 들어 시오니스트들은 점을 치면서 그것을 예언이라고 한다. 그들은 점을 성령의 선물이라고 믿는다. 진리의 기괴한 혼합이 아닐 수 없다.


응주다는 그녀의 언니와 함께 크와 시자반투에 왔다. 기도시간 동안 응주다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마귀가 그녀에게 떠나갈 것을 명령받자, "우리가 그녀와 함께 있기는 것을 허락하라. 우리는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그녀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라고 비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를 우리에게 넘기라"라는 사단의 말은 기도팀이 떠나면 응주다를 죽이겠다는 계획이었다. 선교팀은 격렬히 마귀에게 응주다에게서 떠날 것을 기도했다. 그러자 사단은 이렇게 말했다. “하루만 더 있게 하라. 지금 나가면 우리가 타죽을 것 같다. 여기는 너무 뜨겁다. 우리는 크와 시자반투가 너무 두렵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너무 뜨겁다.” 기도팀이 계속 기도하자, 마귀들은 "그러면 적어도 그녀의 집이라도 가면 안 되겠는가? 거기는 여기처럼 뜨겁지 않고 기분 좋을 정도로 시원한 곳이다"라고 외쳤다.


이런 진통 후에 엘로는 응주다가 여전히 고백하지 않고 숨겨둔 죄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두 가지를 빛에 드러냈다. 그리고 나서 그녀가 기도하자 주 예수님은 완전히 자유를 주시고 동시에 그녀를 치유해 주셨다.


응주다의 회심과 구원은 다음과 같은 사건을 일으켰다. 이교도인 그녀의 아버지는 딸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두 자매는 읽고 쓸 수 없었다. 이교도의 시각에서, 학업은 단지 아이들을 거만하게 만들어 더 이상 부모님을 존경하게 하지 않는다고 생각되었다. 그 아버지는 또한 기독교교육보다 이교도의 가르침이 더 낫다고 확신했다. 응주다는 정말로 그녀의 아버지의 그런 태도 때문에 고통받았다. 그녀가 크리스천이 되기 전에 응주다는 두 친구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쳐달라고 했지만 두 번 다 배우는데 실패했다. 어떤 것도 그녀의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그리스도에 의해 기적적으로 생명을 얻고부터는 읽고 쓰고, 돈을 셀 줄도 알게 되었다.


이 보고서는 응주다와 그녀의 언니가 3중의 기적이자 3중의 축복을 경험한 것을 보여 준다. 즉, 죄의 권세로부터의 구원, 병 치유, 사단의 지배에서의 구원의 과정을 볼 수 있다.


<God Among the Zulus>, Kurt E. Koch, pp.4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