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중고 책방에 가서 책 네 권을 구입했다.
<플라톤 철학과 그 영향>
<정신의 발견(서구적 사유의 그리스적 기원)>
<철학노트>
<국어 의미론>
이 책들의 공통점은 ‘이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다.
이성을 헬라어로는 ‘누스’라고 하는데, 플라톤에 의해서 절대적 의미가 되었다.
물론, 그들의 이성은 인간이 성취가능한 곳에 있다.
<플라톤 철학과 그 영향>에서 그리스 철학의 성립의 기원을 찾아간다. 거기에는 플라톤이 있고, 그의 제자들이 눈에 띤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의 토대는 ‘이성적 사고’에 있고, 그것을 플라톤을 놓아주었다. 그 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실세계에 이용할 수 있는 사유의 방식을 개발한다.
<정신의 발견>에서는 플라톤 이전에 존재했던, 그리스인 특유의 ‘이성적 사고’가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통해서 그리스인의 사유의 구조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구조를 띠고 있음을 논증한다. 특이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것은 여러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헬라어를 사용하여 그들의 언어에 깃들어 있는 사유의 구조의 논리성을 들추어내는 데에 있다. 헬라어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것은 이 언어가 매우 정교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철학하기에 가장 알맞은 언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리스인의 철학적 사유구조가 철학이 발달하기 이전에 이미 그 언어에 투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신약성경이 헬라어를 쓰여져 있는 것도, 인간에 대한 배려였다는 생각이 든다. 의미가 변질되지 않고 가장 안정적으로 원래의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언어는 헬라어이다. 실제로 헬라어를 분해하면 신약성경에 나온 의미가 얼마나 정교하게 서술되어 있는지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철학 노트>는 결국 철학은 시간(역사, 현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철학의 역사를 통해 서술한다. 지은이는 한국 사람으로서 신부였다. 벨기에로 신학을 전공하기 위해 유학을 갔지만, 유럽의 신학이 일종의 장식품으로 전락한 것과 그것에 대체물로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철학을 선택한 것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또한 현대의 철학은 절대적 이성(누스)이 아니라 상대적인 이성의 세계로 넘어가 있음을 알고 이 책의 저자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 결과 그는 자신도 신학을 포기하고 철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물론 그는 고전 철학이 아니라, 시간이 복합된 철학을 하게 된다. 그 텍스트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라인을 따라가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었다. 그리고 언어철학을 통해서 이 세상과의 언어적 소통을 통한 철학을 지향한다. 즉, 상아탑의 철학이 아니라 현실반영의 철학을 한다. 그러나 언어철학의 허무함에 쓸쓸해 하다가 다시 자유주의 신학자 하비 콕스의 ‘영성에의 철학’으로 자신의 사유의 세계를 넓혀간다. 그러나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영성’이란 신적 조명의 영성이 아니라, 내적인 해탈에서 얻어지는 일종의 자아해방의 경험이다.
<국어 의미론>은 참 재미있는 책이다. 언어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의미론을 알아야 한다. 언어는 고정된 의미를 갖고 있는가? 아니면 늘 변하는가? 언어학자는 어떻게 해서든 언어의 의미를 고정시켜 법칙을 끌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언어는 현실생활에서 계속해서 의미를 변화시켜간다. 언어학자들이 기를 쓰고 언어의 의미를 고정시키려고 하는 노력으로 만들어내는 이론의 논리적인 근거를 따라가면 게임하는 것처럼 재미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 비해 이룬 성과는 정말 미비하다. 그리고 요즘 언어학은 인공지능 로봇(컴퓨터)에게 언어능력을 전수하려고 노력중이다. 미국에서는 언어학은 어문학계가 아니라 이공계 대학에서 주관한다.
이상의 책들을 일별하니, 인간의 이성의 놀라움과 초라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성은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늘 시간(역사)이라는 힘에 의해 이성의 성과는 묻혀버리고 만다.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 <철학노트>의 저자는 신학을 포기하고 철학을 택했다. 현시대의 신학은 이렇게 철학보다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바른 신앙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 위에 신학이 심겨져 있을 때 참 열매를 맺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거룩한 구원>에는 나오는 신앙위인들의 바른 신앙은 그래서 바른 신학으로 열매 맺어 지금 우리에까지 전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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