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H팡세

무엇을 할 때 기쁜가?

천국 도서관장 2009. 12. 24. 10:14

요즘에는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에 대한 책을 집중적으로 읽다보니, 생각하는 것도 에드워즈 목사님 식으로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에드워즈 목사님의 ‘인간의 마음’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서, 인간의 ‘마음은 그릇’과 같다는 인상이 깊이 새겨졌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오늘은 그 느낌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다. 


에드워즈 목사님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은 그 자체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들어온 대상에 따라 지식을 판단하고, 그것을 감정화시켜 호불호를 결정한 후, 의지로 발현 시킨다. 즉, 마음은 그 자체로 지정의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온 지정의의 성향을 발현시키는 대행자(agent)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에드워즈에게서 인간 행위가 자유롭다는 것의 유일한 의미는 의지의 독립적 자기 결정에 있지 않고, 오히려 외적 간섭을 받지 않고 내적으로 자신의 성향대로 할 수 있는 도덕적 행위자의 능력에 있다. 에드워즈는 이렇게 서술한다. ”마음에 어떤 자유가 있다고 한다면 마음은 그 자유를 자신의 지배적인 성향을 따라 행사한다....“

<삼위일체, 은혜 그리고 믿음>, 제2장 은혜의 본질, 이상현, 대한기독교서회, p. 85. 


에드워즈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 그 자체가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에 자유가 들어오면, 그 자유가 마음의 지배적인 성향이 되어 그 마음을 움직이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되어, 양자가 되었다면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자유는 세상적인 자유가 아니라 참자유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어느 것에도 속박당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과 연합되어 있을 때에라야 만이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에 무엇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기쁨의 대상도 결정된다. 명심해야 할 것은, 마음 자체가 기뻐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어떤 기쁨이 대상이 들어가느냐에 따라 마음의 기쁨이 발현되는 것이다.


물질적 가치가 기쁨의 대상이라면, 마음은 물질적 가치의 기쁨을 행사한다(즉 마음은 물질을 얻을 때 기뻐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기쁨의 대상이라면,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기쁨을 행사한다(즉 마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가장 기뻐한다).


수요예배 설교말씀을 듣고 사도 바울과 사도 요한의 기쁨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의 기쁨은 성도의 영적인 상태에 대한 기쁨이었다. 바울뿐만 아니라 요한의 기쁨의 대상도 성도가 순전히 믿고, 진리 안에서의 행하는 것이었다.


이로 보건데 사도 바울이나 사도 요한의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을 움직여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판단하고, 거기에서 기쁨을 느꼈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나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는 소명을 깨닫고, 기쁨으로 말씀을 증거하며, 성도의 영적인 안위가 가장 큰 기쁨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기쁨은 어디 있는가?” 자문해 보았다. 더 쉽게 무엇을 할 때 가장 기쁜가 자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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