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H팡세

정결

천국 도서관장 2009. 12. 11. 15:29

히브리서 1장 3절에 나온 “정결”의 의미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αμαρτια(하마르티아)를 정결καθαρισμόν(카타리스몬)하게 하는(ποιησαμενος, 포이에사메노스)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3)


“①를 ②정결(속죄)③하게 하는라는 말씀을

원어로 해석하면 죄들정결(속죄)을 이루셨다’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 한글개역개정성경에서는 “라고 했으나 원어 성경에는 ‘죄들αμαρτια이라는 복수 소유격’으로 쓰고 있다(원어의 표기는 폰트가 지원되지 않아 강세, 기식은 생략했음).


* 한글 성경에서는 “정결하게”라고 번역하여, 동사형으로 쓰고 있으나, 원어 성경에서 “정결καθαρισμόν”은 명사형으로 ‘단수 목적격’으로 되어 있다(한글 성경은 “정결”을 “정결하게”라는 동사형으로 쓰고 있어, 자칫하면 “정결”이 명사 단수형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놓칠 수 있다. 하지만 이 의미의 중요성을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한다).


* “-하게 하는 ποιησαμενος”은 직설법 과거(aorist) 분사를 사용하여 ‘예수님께서 죄들을 정결케 한 사건’‘끝났음’을 말해주고 있다.  

[참고-한글성경과는 달리 NIV에서는 비교적 원어에 가깝게 해석해 놓았다(he had provided purification for sins)]

이 구절의 주어는 예수님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풀어서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의미가 된다.

예수님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몸소 인성을 취하셔서 우리의 모든 죄들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서 우리의 죄들αμαρτια정결καθαρισμόν하게 하셨다(ποιησαμενος).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이루신 죄들에서의 정결(속죄)이 구약시대의 제사 때처럼, 반복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친히 세상 모든 죄들을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셔서 한(단)번에 끝내셨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단번에 이루어주신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를 통해 죄 사함의 은혜를 받고, 칭의의 은혜를 받아 중생(성화)하게 되면 죄책뿐만 아니라 죄의 세력에서부터 놓임 받게 된다. 즉 칭의와 성화는 구분되지만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죄들을 (한 번에) 정결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께서도 구약시대의 제물처럼 불완전하시어서 우리의 죄들을 단번에 정결케 하시지 못했다면, 우리는 의롭게 되지도 못하고 성화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논리로 보면, 우리가 죄를 지을 때 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셔야 한다.

이것은 말도 안 된다. 예수님의 속죄는 한 번만으로도 충분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의롭게 되어 성화되면 예수님처럼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칭의와 성화의 은혜에 대해 무지하다. 자신은 의롭게 되었지만, 성화는 일평생의 과정이라며,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이는 근본적 성화발전적 성화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이다). 그리고는 다시 회개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의롭게 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때문이다. 따라서 의롭게 되었는데 죄를 짓게 된다면, 예수님께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이여야 된다는 말밖에 안된다.


그렇다면(칭의는 1회적이나 성화는 일평생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히브리서 1장 3절 말씀에서, “정결καθαρισμόν”이라는 단수형이 아니라정결들καθαρισμόυς(카타리스무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분명히 단수형인 “정결καθαρισμόν”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관한 말씀은 히브리서에 계속해서 나온다(히 7:27; 9:12; 9:26; 9:28; 10:2)


이와 관련해서 조지 윗필드 목사님과 존 웨슬리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두 목사님은 한결같이 칭의와 성화를 구분은 하지만 분리시키지 말 것을 강조하셨다. 칭의와 성화에 대해 이해한다면, 히브리서 1장 3절"정결"의 의미가 더 은혜롭게 다가올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나는 미력이나마 치명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는데 힘을 보태고자 한다. 이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연합시켜놓은 것을 분리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성화되지 않고, 자신의 본성이 변화되어 거룩하게 되지 않고, 그러고도 그리스도에 의해 의롭게 되었으며 자신들의 죄가 사함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완벽한 순종이 자신들에게 전가되었다고 헛된 망상을 한다는 것이다.


...중략...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며, 자신의 완전한 순종을 덮씌우며, 우리의 부패한 본성을 성화하고 정화하며 깨끗이 하고 전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경은 또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된다.”고 하였다. 


조지 윗필드의 설교 ‘중생론’중에서



누구 때문에whose sake, 누구의 공적으로, 목사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라고 기대합니까?라는 의미라면 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모든 믿는 사람은 그의 공적으로만 구원받게 됩니다. 즉, 그의 공적으로 의롭게 되고(죄책에서 구원받고), 성화되어(죄의 속성으로부터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중략...


성도의 의란,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한다”라는 말씀에 나온 거룩함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거룩함에 참예하는 어떤 영혼에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개별적인 거룩 또한, 모든 자녀들에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의와 성도의 의 사이에는 다른 면이 필연적으로 있다는 것을 분명히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자는 우리에게 하늘나라로 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반드시 부여합니다. 후자는 우리가 그것을 이룰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합니다. 그리스도의 의가 없다면 우리는 천국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거룩이 없이는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적합할 수 없습니다. 전자에 의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 하나님의 자녀, 천국의 후사가 됩니다. 후자에 의해, 우리는 영광 안에서 성도의 유산 상속자로 합류하게 됩니다.


11. 이로부터 인자는 이 중요한 진리를 그의 자녀에게 전달합니다.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모든 사람은 어둠으로 던져집니다.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게 됩니다. 영혼의 적은 이런 진리를 모호하게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으며, 그 결과 사람들은 평생 동안 계속해서 미망에 빠져 죽음을 구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방식으로 사단은 우리가 거룩하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위장합니다. 이 기독교 세상에서조차, 얼마나 많은 것들이 감추어져 왔습니까! 몇몇 방식은 전혀 거룩과 관계없거나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무익하고 하찮은 것들입니다. 다른 것들은 거룩의 일부분으로 간주되지만,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사단의 궤계에 무지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것들 중 몇몇의 것들을 열거하는 것이 유용할 것입니다.


존 웨슬리의 설교 ‘혼인예복에 관하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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