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것을 깨달았다.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요 20:22)
-“받으라”는 헬라어로 “Λάβετε라베테”이며, 단순과거형 명령법으로 되어 있다.
헬라어 명령법은 현재형과 단순과거형이 있다. 현재형과 단순과거형은 시간상의 차이가 아니라, 동작의 종류의 차이에 있으며, 뜻은 모두 현재이나 형태만 다르다.
* 명령법 현재형은 계속되는 반복되는 동작, 명령을 말한다.
* 명령법 단순과거형은 1회적이고 일시적인 동작을 명령을 할 때 사용한다. 또한 당장에 어떤 일을 하라고 명령하거나, 시간에 관계없이 어느 순간에 분명히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 또는 긴박한 목소리로 권면을 할 때 사용한다.
“성령을 받으라”에서의 “받으라Λάβετε”라는 단순과거 명령형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단순과거 명령형 “받으라Λάβετε”라는 어휘에서 다음 세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① 성령을 받는 것은 1회적이고 일시적인 명령이다. 반복되는 명령이 아니다. 즉, 성령은 1번 받는 것이다.
② 당장에, 또는 어느 순간에 성령을 받아야 한다.
③ 예수님은 성령을 받으라고 긴박하게 권면을 하고 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한 즉시 성령을 받지 못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첫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분명히 성령세례를 1번 받았다(행 2:4). 성령 충만은 종종 받았다(사도행전에 자주 나온다).
‘단순과거 명령형’의 좋은 예는 사도행전 2절 38절에도 나온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회개하여Μετανοηστε(메타노에스테)” 단순과거 명령형 능동형
“세례를 받고βαπτισθητω(바프티스테토)” 단순과거 명령형 수동형
이 두 어휘는 명령법 단순과거형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회개’와 ‘죄 사함의 세례’는 1회적이며, 당장에(즉시에), 또는 어느 순간에 회개하고(능동형), 죄 사함의 세례(수동형)를 받아야 한다. 이것은 긴박한 사도 베드로의 권면이었다.
구원론에 입각해서 헬라어의 동사 단순과거 명령형인, 회개하는 것, 죄 사함의 세례를 받는 것, 성령을 받는 것은 1회적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회개하고, 죄 사함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기를 권면하시고 명령하고 계신다.
사단은 ‘회개’와 ‘죄 사함’과 ‘성령을 받는 것’에 대해, 매우 모호하게 만들어서,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해 놓았다. 그러나, 이 개념을 분명히 알고, 자신에게 적용해야 ‘거룩한 구원’을 체험할 수 있다.
찰스 피니 목사님도 구원을 받기 위해 각성되기 시작했을 때 구원에 관련된 핵심 용어상의 혼란이라는 문제에 부딪혔다.
게일 목사님은 자주 우리 사무실에 들러서 자기 설교가 나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지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와 자유롭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리고 때로는 통렬히 그의 설교를 비판했다. 나는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대로 그의 견해를 반박했다.
그와 더불어 대화를 나누고 그에게 질문을 하기도 하는 중에 내가 감지하게 된 사실은 그의 마음이 혼동되어 있으며, 그는 자기 자신이 구사하는 중요한 용어들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로서는, 자기가 습관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많은 용어들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는 회개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죄에 대한 슬픈 감정인가? 혹은 그것은 마음의 수동적 상태인가? 아니면 자발적 요소를 포함하는가? 만일 그것이 마음의 변화라면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중생이라는 말로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러한 말이 영적인 변화에 적용될 때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앙이라는 말로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지 지적상태인가? 단지 복음에 나타난 사실들이 진실이라는 확신이나 설복인가? 성경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어떤 문제에 있어서의 물리적인 변화나 하나님 편에서의 어떤 물리적 영향력을 포함하는가? 나는 그가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이나 이와 비슷한 용어를 사용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그 자신조차도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찰스 피니의 자서전>, 생명의 말씀사, p 7.
그러나 피니 목사님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프린스턴 대학 출신 게일 목사님과 주변의 성도들도 회개, 중생, 신앙의 의미에 대해 무지 몽매했다. 따라서 그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피니 목사님은 포기하지 않고 성경을 읽어 가면서 그 의미를 깨달았고,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셨다(눅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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