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계속해서 사마리아의 수가 성 여인에 대해 묵상하고 있다. 학부 때부터 이 여인의 사건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학부 때는 주로 다음과 같은 접근법으로 수가 성 여인에 대해 묵상했었다. ‘이방인의 사역’, ‘세속문화를 통해 복음을 제시하는 과정’,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할 때 ‘오해(misunderstanding)라는 장벽을 어떻게 넘으셨는가?’
하지만, 지금은 이런 접근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있다. 수가 성 여인은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게 되었다’(롬 10:10)는 것이 묵상의 큰 줄기였다. 수가 성 여인은 머리로 믿어 의롭게 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자 수가 성 여인 앞에 니고데모가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니고데모! 그리고 수가 성 여인! 이 극명한 대조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더 나아가 아테나와 고린도 교회가 떠올랐다.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대한 지식(고전 2:2) 외에는 구원받을 만한 지식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식은 머리의 지식이 아니라 마음의 지식이었다.
어제는 아내와 수가 성 여인에 대해 말씀을 보면서 교제를 나누며 많은 은혜를 받았다.
니고데모와 수가 성 여인
요한복음 3장
1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유대에서 첫 번째 유월절을 보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 표적을 보여주시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핵심 조직신학 1권>, ‘예수그리스도론’ pp.39-40참고).
-이 표적을 보고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관원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는 예수님을 랍비(선생님)로 알고 나왔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을 랍비로 알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 복음을 증거하신다.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니고데모는 복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머리로 받아들인다. 그는 바리새인이었고 유대인의 관원이었지만, 지극히 이성적인 차원에서만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계속해서 보고있다.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예수님은 3절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풀어서 설명해주신다. 특히 죄에 대해서 복음을 증거하신다. 하지만 복음을 들을 때, 계속해서 자아(바리새인,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 밤의 사람)가 살아있으면 절대 말씀을 듣지 못한다. ‘기이히 여기지 말아야’ 복음에 순종할 수 있다(머리로는 기이히 여길 수밖에 없다).
-누가 기이히 여기지 않을 수 있는가? 마음이 겸비된 자가 순종한다. 바리새인으로,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으로 밤에 예수님을 만나러 오는 사람은 이미 복음에 순종하기 힘들다. 기도하기 전에 복음에 순종할 준비된 자, 자아가 겸비된 자가 복음에 순종할 수 있다.
9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니고데모는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해서 기이히 여긴다. 인간의 편에서 기이한 것이다. 하나님의 편에서는 기이하지 않은 것이다. 자아의 노력으로는 기이함을 극복할 수 없다.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책망하신다. 이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책망을 받고도 예수님을 떠나는 자는 택자가 아니다. 아무 관심이 없다면 책망하지 않는다. 이때 바리새인을,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임을 버려야 한다.
11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12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지금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가장 알맞은 방식으로 복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의’에 대해서 책망해 주신다. 그 의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것을 말씀해 주셨다.
-그는 구약에 통달한 이스라엘 선생이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이라는 구절은 민수기 21장에 나온 내용이다.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은 랍비가 아니라 인자, 즉 메시야라는 것을 니고데모에게 아주 자세하게 말씀해 주고 계시고 있다.
-마음이 겸비된 자는 이때부터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한다. 하지만 니고데모의 마음은 여전히 닫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계속해서 사변적인 믿음이 아니라 구원얻는 믿음을 가지라고 권면해주신다.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심판에 대하여 책망(설명)해주신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는 것이 심판의 이유라는 것을 설명해주신다. 그리고 믿지 않는 근본 이유에 대해서 지적해주신다.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것이 믿음 없음의 근본적인 이유이다.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근본적인 죄에 지적해 주신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반응이 없다.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해서 날이 새기 전에 돌아가 버렸을 것이다.
요한복음 4장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 시쯤 되었더라
-예수님은 유다를 떠나 사마리아 수가 성으로 향하셨다. 사마리아. 저주 받은 땅이다.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후, 앗수르의 혼혈 정책에 따라 북이스라엘에 이방민족을 이주시키고 혼혈민족으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사마리아는 유대인에게는 큰 수치가 되는 땅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땅으로 가셨다. 그리고 한낮에(보편적으로 낮 12시라고 보고있다) 한 여자에게 물을 청하셨다. 더위로 인해 아무도 물을 길러 나오지 않는 시간에 한 여인이 예수님께 왔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예정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은혜인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은 그래서 고식적인 구원의 형태론을 주장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강조하셨다. 물론 구원의 일반적인 과정이 있다는 것도 말씀하셨다.
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가장 저주 받은 땅, 그리고 그 저주받은 땅에서도 가장 미천한 여인이 예수님께 왔다. 뒤에 나오지만 그녀의 과거는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다. 도무지 희망이라는 없는 여인. 그녀는 창녀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그런데 그녀에게 유대인의 남자가 와서 말을 걸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물까지 달라고 했다. 유대인은 이방인의 집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여인에게는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인간의 편에서는 불가능한 일은 예수님은 하신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생수를 주겠다고 한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복음이 제시되었다. 누가 생수를 얻을 수 있는가?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아는 사람이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인간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여(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복음을 믿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평소부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야곱의 우물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야곱의 우물이 그녀에게는 가장 큰 신앙의 대상이었다. 야곱의 우물(율법)에 비추어 볼 때 그녀는 자신의 죄악을 낱낱이 보았던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그녀는 너무나 큰 죄인이었다. 그래서 야곱이 그녀에게는 가장 큰 신앙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우물가에서 물을 기를 때마다 자신의 죄를 회개했을 것이다.
-니고데모는 어떤가? 그는 율법의 선생이었다. 산헤드린 공의회의 회원이었다면, 그는 율법의 판관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율법은 그를 겸비하게 하는 대신에 교만하게 했다. 아무리 그가 겸비하게 되었다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을 랍비로밖에 볼 수 없었다.
-율법이 겸비의 자리로 이끌어가는 사람은 복이 있다. 율법이 교만의 자리로 이끌어가는 사람은 복이 없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은 그녀의 겸비함을 아셨다. 그래서 위로의 샘물을 그녀에게 주시겠다고 한다.
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여인은 ‘주여Lord’라고 외친다. 소경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예수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왕이 되신다. 왕은 그의 백성을 다스린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은 죄의 노예된 비참한 백성을 그의 왕권으로 구원하신다.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적해 주신다. 그녀에게는 많은 남편이 있다. 얼마나 고단한 인생인가? 기댈 곳이 하나도 없다. 혼자 있을 때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웠을까.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고단한 인생을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 복음을 듣고도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 자아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한탄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죄를 깨달았다. 예수님께 더 이상 남편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고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자신을 가장 비참하게 만들었던 세상과 남편에게 노예처럼 기대고 있었던 지난날의 잘못을 깨닫는다. 그녀는 그것을 순식간에 깨달았다(톨스토이도 세속적인 인생의 실상과 그것에 기대어 사는 노예와 같은 삶의 비참함을 깨닫고 그 유명한 <참회록>을 지었다).
-바로 그때 이 복된 여인은 이제 선지자이신 예수님을 보게 되었다. 선지자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셨다. 그러자 여인은 왕(Lord)이자 선지자이신 예수님께 묻는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님 이 죄인은 어찌해야 합니까? 여기 그리심 산(율법)에서 예배해야 합니까? 아니면 예루살렘(좀 더 나은 율법)에서 예배해야 합니까?’
-그럼에도 여인은 아직까지 예수님을 이 세상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을 더 나은 율법을 주시는 분으로 여기고 있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예수님은 여인의 질문에 자상하게 대답해 주신다.얼마나 인격적인가)
-이제 예수님은 제사장으로서 복음을 증거하신다. 여인에게 또 다른 차원의 예배를 말씀해 주신다. 율법의 차원이 아닌, 야곱의 우물과 그리심 산과 예루살렘의 차원의 아닌 예배가 있음을 증거해 주신다. 그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실제로 인간(택자)을 위해 자신을 제물로 삼아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셨다.
-수가 성 여인은 자기의 신앙의 대상(야곱의 우물)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 있다. 그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었다.
-니고데모는 ‘뱀이 들림같이’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도, 즉 그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율법의 말씀을 듣고도 메시야 되신 예수님께로 이끌림 받지 못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생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했다.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그녀는 구원받았다. ‘선지자로 알고 있던 이 분이 메시야가 아닐까? 그 누가 이런 말씀(이 모든 것)을 해주실 수 있는가?’ 예수님만이 이렇게 말씀해 주실 수 있다. 내가 그로라!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지 못하고 그 밤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수가 성 여인은 한낮에 예수님과 단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자기의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증거하기 위해 뛰어갔다.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사마리아 동네의 여인들이 구원받았다. 우물가의 여인과 같은 겸비된 영혼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들처럼 표적을 보지 않고도, 진리의 말씀에 의해 예수님이 ‘구주’이심을 알고 변화되었다.
-누가 참으로 복을 받은 자인가?
-유대의 바리새인이자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이었던 니고데모와 사마리아의 미천한 사람 중 가장 미천한 수가 성의 여인에 대한 기록이 왜 요한복음 3장과 요한복음 4장에 배치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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