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설교 말씀을 듣고 ‘천사의 위로(마사지)’에 대해서 묵상하다가, 예전에 쓴 글이 생각났다. 에바브로디도에 관한 내용인데, 읽어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아래에 인용한다).
그는 바울이 낙망했을 때 큰 힘이 되었던 사람이었다. 바울처럼 복음의 최전선에서 사역을 하다보면 사단의 영에 의해 살 소망까지 빼앗길 수도 있다. 그때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헬퍼가 필요하다. 에바브로디도는 그런 면에서 사역자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인 것 같다.
한편 바나바와 같이 권위하는 사람은 평신도들에게 필요한 인물인 것 같다. 요즘과 같이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바나바와 같은 분들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헬퍼 에바브로디도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빌 2:25).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 4:18).
빌립보서를 기록하기 전에,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러자 그를 따르던 많은 제자들이 바울을 떠나버렸다.
물론, 하나님께서 힘을 주셨지만, 그에게 낙망스러운 마음도 있었던 같다.
실제로, 그는 죽음조차 사모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는 삼층천까지 갔다 온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의 상황에서 벗어나 내세로 가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광야에 있는 것처럼, 심신이 지쳐있을 때
그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왔다.
에바브로디도가 왔다.
그는 빌립보교회에서 파송한 일꾼이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세운 유럽 최초의 교회였다.
또한 빌립보교회는 늘 신실한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에게 무척 소중했다.
그 교회에서, 사람이 왔다.
그에 의하면, 빌립보 교인들은 여전히 신실하며
영어의 몸이 된 그를 위하여 기도하며, 모금도 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복음 전도자로서 큰 기쁨의 만족을 느끼고
더 열심히 복음을 전파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에바브로디도는 그만 죽을 병에 걸리고 말았다.
아마, 빌립보에서 로마 감옥에 오기까지 너무 힘이 들었던 것 같다.
게다가 타지에서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을 수종들다가 과로가 겹쳤을 수도 있다.
이 소식이 빌립보교회에까지 들어가게 되자,
교인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셨다.
다시 회복한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인들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빨리 그들에게 돌아가 안심시켜 주고자 했다.
이때 바울은 그에게 편지(빌립보서)를 써서 같이 보냈다.
그가 빌립보교회로 다시 돌아간 것은 그의 회복을 알리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바울에 대한 소식을 교회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다시 빌립보의 소식과 모금을 해서 바울에게 오려고 그랬던 것 같다.
이후의 소식을 알 수 없으나,
그 후 바울은 더 힘을 내어,
이방인을 위한 사역자로서, 그의 임무를 완수한다.
그런데, 만약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충성스러운 헬퍼가 없었다면
바울의 사역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와 같이 위대한 사역을 완수할 수 있었을까?
물론,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라도 역사해 주셨을 것이지만,
바울의 사역은 그처럼 큰 열매를 맺을 수 있었을까?
성경에서 에바브로디도라는 이름을 선명히 조명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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