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의 '결심문을' 보면 비슷한 주제의 결심문 내용이 보인다.
17.내가 죽게 되었을 때, '그 일을 했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살자.
19.마지막 나팔 소리를 듣기 전, 최후의 한 시간도 남지 않았을 때라고 가정하고 그 때 하기가 꺼려지는 것은 절대로 하지말자.
50.내가 내세에 들어갔을 때, 그렇게 한 것이 최선이었고, 가장 지혜로운 것이었다고 판단하게 될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도록 하자.
51.죽을 때 내가 뒤를 돌아보면서 '이런 일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면에서 그렇게 하자.
52.나는 종종 노인들이 자기가 인생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어떻게 살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노인이 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그때 가서 '내가 이런 일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생각되는 바로 그런 일들을 하자.
이 5개의 결심문은 '미래에 가서 후회할 일은 지금부터 하지 말자' 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다시 생각해 보면, 미래에 후회할 일은 지금부터 하지 말자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시간 사용의 최첨단 기법의 내용과 유사하다. 스티븐 코비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보면, 타임스케줄 플랜을 짜는 법이 나온다. 그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가장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우선순위(priority)를 정해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시간을 사용하는 범주를 다음과 같이 4가지로 나누었다.
1. 급하고 중요하지 않는 일
2. 급하고 중요한 일
3. 급하지 않고 중요한 일
4. 급하지 않고 중요하지도 않는 일
코비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2. 급하고 중요한 일'부터 한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2 유형의 사람들이 가장 부지런하고, 시간사용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코비의 생각은 다르다. 2의 유형의 사람의 부지런함은 헛부지런함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서는 아무 가치 있는 일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는 김남준 목사님이 쓴 <게으름>에도 잘 나와 있다.
코비에 의해면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3. 급하지 않고 중요한 일'을 우선순위를 두고 먼저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만이 창조적인 일을 하며, 주도적인 삶을 살아서, 세계를 그의 영향력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급하지 않고 중요한 일'이 가장 본질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은 벼락치기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평소부터 당장 시험이 없기 때문에, 급하지 않은 공부지만, 결국 꾸준히 하면, 시험 당일에 가서는 서두르는 일 없이 침착하게 시험에 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놀다가, 시험이 코앞에 닥쳐서야 하는 사람은 시험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손쉬운 시험이라면 모르지만 사법고시나 수능같은 시험에서는 벼락치기 공부로는 합격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평소부터 급하지 않고, 중요한 일을 먼저 하는 사람은 삶의 여유를 가지고 남을 돌아보면 살 수 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성령의 음성을 잘 듣고, 말씀묵상 잘하고, 기도 잘 하면서 은사를 발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도우며 살 수 있다. 그 사람이 주도적으로 살기에 그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변화시켜나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결국 미래를 앞서서 사는 사람이다. 평소에 게으르게 살면(2번 유형의 사람을 포함하여), 나중에 그것을 메꾸기 위해 많은 시간을 다시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평소에 부지런히 산 사람은 미래에 따로 시간을 내어 메꾸어야 일이 없기 때문에 미래의 시간을 번 사람이다. 이 시간으로 그 사람은 타인을 이끌어 준다.
에드워즈의 결심문에는 그가 미래를 앞서서 살았던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명심해야 한다. 게으른 것은 악한 것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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