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H팡세

self-control

천국 도서관장 2011. 4. 1. 11:57

근신謹身(self-control, 자기를 경계하다)

 

 

요즘『프레임』(최인철, 21세기북스)이라는 책을 보고 있다.

 

프레임(frame)이란, 심리학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을 의미한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관조하는 사고방식, 세상에 대한 비유,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인간의 시각은 제한적이어서 자기만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프레임에 들어오는 대로 세상을 보고 판단한다. 비유하자면, 프레임이란 색안경이다. 어떤 색안경을 썼느냐에 따라 세상의 색이 다르게 보인다. 물론 세상은 자기 색을 나타내고 있지만 색안경을 쓰면 안경의 색에 의해 세상의 색이 가려진다.

 

저자의 말대로 이렇게 우리가 색안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면 좋은 색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안경을 써야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능한 한 올바로 판단할 수 있는 색안경을 우리가 쓸 수 있도록 여러 방법을 알려준다.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색안경으로 쓰게 되면 세상이 온통 파괴적이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색안경을 쓴 사람은 세상을 파괴적이고 이기적으로 살게 된다. 그러나 생산적이고 행복이 가득한 색안경을 쓰게 되면 생산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반론이 나올 것이다. 파괴적이고 이기적인 안경을 써도 이타적이고 생산적으로 세상을 살 수 있지 않느냐고,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꼭 나쁘게만 사는 것은 아니라고. 또한 생산적이고 행복한 색안경을 끼었다고 해도 이기적이고 파괴적으로 살 수 있다고.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매우 극히 예외적이다. 저자는 심리학자로서, 프레임에 관한 전세계적으로 공인받은 다양한 실험결과를 발표한다. 즉 어떤 색안경을 끼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본바탕이 어떻든지 간에 색안경에 보이는 대로 결국 마음까지 물들어 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나는 ‘근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근신謹身-자기를 경계하라.

말세에는 자기를 경계해야 한다. 지금 나는 어떤 색의 안경을 끼고 있는가? 내 마음의 프레임은 무엇인가? 세상은 나의 안경을 세속적 가치의 색으로 칠하려고 한다. 조금만 방심하면 그새 안경의 색이 탁해지고 흐려진다. 즉 근신하지 않으면 정신이 온통 세속적으로 물들어 버리게 된다. 세속적인 정신이 되면, 모든 것을 세속의 색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질문 하나를 하더라도, 매우 조심해서 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외향적인가?’라고 질문을 하면, 내향적인 사람도 외향적이라고 답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반대로 ‘나는 내향적인가?’라고 질문을 하면 외향적인 사람도 내향적이라고 답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왜냐하면 ‘외향적인가’의 질문 안에 ‘외향’이라는 프레임이 칠해져 있기 때문에 내향적인 사람도 자신을 외향적으로 보는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향적인가’라는 질문 안에 ‘내향’이라는 프레임이 칠해져 있기 때문에 외향적인 사람도 자신을 내향적이라고 보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사람은 현재에 주어진 상황이나 환경의 변화보다는 거기에 안주하려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심리학자들은 해석한다.

 

이러한 주장은 다 맞지는 않겠지만 나에게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인간은 변화의 프레임에 상당히 저항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The end of all things is near. Therefore be clear minded and self-controlled so that you can pray.(1 Peter 4:7).

 

베드로 사도는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먼저 말한 후, 기도하기 위해서는(so that you can pray) 정신을 차리고 근신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종말 - 기도 - 근신 - 정신 차림’을 하나의 공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현재는 누가 보아도 종말의 종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기도하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을 차려야 하고, 근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를 할 수조차 없다.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정신을 차리지 않고 근신하지 않으면 기도해봤자 헛수고다.

 

말세에는 사단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한다. 근신하지 하지 못하게 한다. 정신을 못 차라면 근신하지 못한다. 또는 근신하지 않으면 정신을 못 차린다. 사단의 세속적 가치관의 주입은 방사능의 투과력보다 엄청나서 조그만 노출 되도 바로 사단의 하수인이 되버린다.

 

정신을 차리는 것과 근신하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정신 차림(clear-mind)과 근신(self-control)은 같이 움직인다. 마음이 깨끗하면 근신하기가 쉽다. 근신하고 있으면 마음이 깨끗해진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도 복음을 듣고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되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세속적으로 휘둘릴 수 있는 영과 혼과 육이 함부로 발동되지 못하도록 근신하게 된다. 이 근신하게 하는 주체도 성령님이시기에 그 음성에 순종하면 근신(self-control)할 수 있는 것이다. 성령받기 전에는 아무 것도 못하다고 하는 사람은 마귀의 궤계에 속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되면 엄청나게 근신하게 된다. 자기의 마음과 몸이 경거망동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경계하게 된다. 왜냐하면 말세는 사랑이 식어지고 허다한 죄가 관영하기 때문에, 자기를 경계하지 않으면 곧 세속적 프레임(죄) 속에 갇혀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게 된다. 이렇게 근신하게 되면 정신이 정말로 맑아진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정신이 맑아지고 자기를 경계하게 되면 비로소 기도할 수 있게 된다.

기도의 성패는 이렇게 맑은 정신과 근신이 전제되어 있다. 그래서 어느 무명의 그리스도인도 기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공적인 기도나 개인 기도에 나타나는 기도의 정신이나 어조를 따라 대응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정신을 따라 평가하신다.”

<무릎으로 사는 그리스도인>, 생명의 말씀사, p.170.

 

 

나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정신”이란, 성령의 감동에 의한 맑은 정신과 근신하는 마음일 것이다. 실제로 맑은 정신과 근신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곧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형제와 원수를 사랑하게 되고 세상의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람이 된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결국 종말에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에 힘써야 한다. 그래야 서로 사랑할 수 있고 허다한 죄를 덮을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이 식어지고 허다한 죄가 관영하는 마지막 시대에 부름 받았다. 세상의 프레임에는 사랑이 없다. 허다한 죄로 가득 찼다. 따라서 이 시대에 하나님의 시각으로는 아직 심판 때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기를 그래서 허다한 죄를 덮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의 프레임은 이렇게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대척점에 사단의 프레임이 존재한다. 미움과 죄가 가득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말의 인간의 프레임은 미움과 죄로 더덕더덕 덧칠해져 있다.

 

내 눈에서 이런 미움과 죄의 비늘이 떨어지고 사랑이 충만한 시각을 확보하려면, 기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근신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종말의 시계가 멈추기 직전이기 때문이다. 근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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