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비평학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송제근 교수님의 <모세 오경에 관한 연구>와 <시내산 언약과 모압언약>을 읽은 뒤부터, 항상 비평학에 대해 궁금했었다. 그리고, 역사비평, 자료비평, 양식비평 등의 저등, 고등 비평이 성경고고학에 의해 그 기세가 위축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사비평과 신비평의 부상으로 또 한 차례 타격을 받았음도 알게 되었다. 전자는 르네상스와 근대 합리주의, 이신론에 의해 합리성에 의한 잣대로 성경을 비평하였기에 결국 성경의 영감을 완전히 놓쳤던 것이다.
수사비평과 신비평은 성경이 역사적 맥락에 단선론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의미의 중첩과 문학적 수사와 기교, 정치, 경제, 사회 구조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입체적으로 보게 해주었다. 성경은 단순히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이 인간의 말 또는 언어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아름다운 문예적 도구로 작품화시킨 말씀이라는 것을 신비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구 성경비평인 저등, 고등비평은 르네상스의 원천인 그리스-로마의 직관적, 분석적 사고의 산물인데 반하여, 신비평은 히브리적인 비유적, 총체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 특별히 포스트 구조주의 비평은 총체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자크 데리다 경우 '차연'이라는 개념을 주창했다. 차연이란 '1. 다름, 2. 지연, 3. 확산'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어떤 사건에 대해 서술할 때 익숙한 것을 다르게 표현하여,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럼으로서 시간이 정지되고 사건의 의미가 늘어나게 된다. 즉, 사건과 시간과의 비례관계가 깨지게 된다. 그 결과 사건의 의미는 확산되어 다양하게 해석된다. 여기에서, 수사비평, 신비평, 포스트 구조주의 비평은 성경의 텍스트 구조를 기존의 고등 비평의 시간적 흐름에 따라가는 사건의 스토리라인을 철저히 파괴한다.
그렇지만, 히브리적 사고는, 다름, 지연, 확산의 차원에서 끝내는 것이 아니다. 확산을 한데 아우른다. 즉, 총제적으로 흐트러진 그림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 구조주의와 함께 발달한 독자반응비평은 확산을 확산인채로 방치해버리고 만다. 이것을 수용미학이라고도 하며 히브리적 문예관과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리하면, 성경은 스토리라인으로 따라가면서 시간과 사건이 비례관계로 이루어진 부분도 있다. 이런 부분은 고등, 저등 비평이 제한적으로 다룰 수 있다. 하지만, 성경은 스토리라인이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병행처리 된다. 또는 시간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어느 때는 느리게 진행하다가 갑자기 빨라 지기도 한다. 그리고 사건들이 어떤 유기적 관게 없이 나열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전체는 하나님의 언약, 사랑, 영광으로 한데 모여 갑자기 멋진 그림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현상은 벨하우젠이 말했듯이 여러 문서(JEDP)들이 섞여서 그런것이 아니라 히브리적 사고와 언어를 하나님께서 이용하셨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신비평, 포스트구조주의 등에서 히브리적 사고관과 문예적 작품들의 특성이 아주 많이 보인다는 점이다. 히브리적 문예 작품의 비유적 총제성은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판소리 문학이나, 박지원의 단편 한문 풍자소설, 채만식의 단편, 장편 소설에서도 볼 수 있다. 필자의 석사논문 제목이 <채만식문학의 전통성 연구>였다. 여기에서 필자는 데리다의 '차연'개념을 바탕으로 채만식의 단편, 장편소설을 박지원의 한문 단편과 판소리 서사구조와 비교하여 연구했던 적이 있기에. 히브리적 문예작품의 비유적, 총체적인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정리-
수사비평, 신비평 , 포스트 구조주의, 독자반응비평, 수용미학 역시 인간의 합리적인 구조주의의 산물이다. 게다가 신비평은 텍스트와 독자 중심적인 비평으로 흘러가버릴 수 있어 주관주의의 나락으로 빠질 수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텍스트를 확산된 채 아우르지 않고 방치해둔다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텍스트의 원 의미는 독자의 몫이 되지만,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증발된다. 그러나 성경은 주제를 확산된시킨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통일시키고 비약시킨다. 즉, 인간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급상승시킨다.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이다. 따라서 성경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통일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성경은 무엇보다도 성경의 영감을 주主main로 하여, 역사적, 양식적, 자료적 비평, 성경고고학, 수사비평, 신비평을 아우르며 연구해 나가야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인간적인 역사, 고고학, 문예의 도구를 이용하여 말씀을 기록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데 있어 언어, 역사라는 장벽을 어쨌든 안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송제근 교수님의 <시내산 언약과 모압 언약>에서 출애굽기 19장을 히브리 문학의 기법인 동심원 구조와 평행구조를 통해 핍진하게 살펴보았을 때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에드워즈 목사님의 <신앙감정론>의 거듭난 자의 표징 중 열 번째는 아름다운 균형과 대칭이다. 출애굽기의 구조는 바로 아름다운 균형과 대칭이다. 구약성경 전체가 다 그렇게 되어 있다. 이로 보건대 성경은 참으로 아름답고 대칭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아름답고 질서정연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래글은 아르케 아케데미에서 인용했다. 아마 안유섭 목사님이 쓰신 것 같다. 성경비평에 관해서 나는 송제근 교수님, 김지찬 교수님, 안유섭 목사님의 글들을 주로 인용할 것이다.
구약 성경 비평 및 해석
아르케 아카데미
1. 서 론
2. 구약성서 해석사를 통하여 본 현대 성서비평학의 자기반성
1) 자료비평학과 양식비평학
2) 수사비평학과 경전비평학
3) 신(新)문학비평학과 사회과학적 비평학
3. 구약성서 해석학의 오늘의 과제와 그 전망
1) 역사비평학의 한계성과 그 학문적 도그마
2) 케리그마 발굴의 패러다임(paradigm), "구원사 구조"
4. 마치는 말
1. 서 론
우리는 분명 오랜 성서해석사를 거쳐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본격적인 학문적 구약 성서해석 작업은 18세기부터 시작되었고, 흔히, 비평학 이전의 시대(pre- critical period)라고 칭하는 18세기 이전의 시기는 전적으로 학문적 성서해석의 무풍지대였다고만 생각해왔다. 그러나 구약 성서해석학의 기본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18세기로부터 20세기에 이르는 역사 비평학 전성기의 제(諸)비평학적 성서해석이 과연 그 해석학적 기본과제를 성실하고도 만족스러울 만큼 성취하였고 또 18세기 이전의 성서해석을 충분히 보완할 그 대안을 현대 성서비평학이 능히 제시할 수 있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서는 결코 우리가 자신있게 대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전비평학자 샌더즈(J. A. Sanders)는 말하기를 성서해석학의 두 가지 기본과제란, "성서본문의 의미를 성서 자체 의 배경 안에서 찾아내는 타당한 방식을 결정하는 일과 그리고 그 다음 그 의미를 현대 적 배경 안에서 표현하는 타당한 방식을 결정하는 일"이라고 주장한 바와 같이, 아마도, 성서해석학은 성서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와 현대의 문화적 사고 사이에 개재되어 있는 간격을 어떻게 메우느냐 하는 문제에 관심하는 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로, 성서적 과거와 인간의 현재 사이의 간격은, 신앙공동체뿐만 아니라 이 세속세상을 위하여서도 동일하게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적 계획이라는 맥락"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또 메우어지는 것임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성서해석학의 과제는 성서의 원초적 의미(What it meant)를 추적하는 역사비평학적 방법, 이른바, 문학사, 양식사, 전승사를 추구하는 비평학적 과제와 오늘날의 문화적 의미체계에 끼치는 의미(What it means)를 추구하는 신학적 주석의 과제, 이 두 과제 사이를 어떻게 메우어야 하느냐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하겠다. 즉 성서의 이해와 해석은 본문에 대한 비평학적 분석력과 동시에 그 성서의 말씀이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체험되는 신앙을 모두 필요조건으로 요구한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중적 성격의 구약 성서문학이 지닌 특수 현실에 대한 이해 없이는 결코 우리는 올바른 성서해석학의 과제를 성취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구약성서 해석사를 통하여 본 현대 성서비평학의 자기반성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우리의 "구약성서"는 그 뿌리를 고대 중동사회의 넓고도 방대한 정치 종교사 속에 두고 있는 하나의 매우 복잡한 종교문학으로 볼 수 있다는 그런 학문적 인식에 도달하는 데에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비록 거기에는, 철학적 이원론에 근거한 주관적이고도 문자주의적인 편협한 성서해석을 통하여 구약성서의 "경전성"을 탄핵하였던 기독교 교회사 최초의 이단자요 성서비평학자인 마르시온(Marcion)도 있었고, 중세기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마르시온의 비과학적이고 주관적인 성서해석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오경 안에서부터 많은 "후대 삽입구들"을 찾아낸 최초의 과학적 성서비평학자인 "에즈라"(Ibn Ezra ; 1092-1167)와 같은 유대인 학자도 있었으며, 그리고 중세 교권주의에 도전하여 "라틴어" 성서보다는 히브리어 성서 원문의 언어학적 연구를 중요하게 취급함으로서 성서 각책의 저자와 연대에 관한 전통적 견해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했던 인문주의 시대와 종교개혁 시대의 성서연구가들(Luther, Calvin, Karlstadt 등)도 또한 거기에 있었다. 더욱이 거기에는 초자연적 계시보다는 인간의 자연적 이성이 성서해석에 더욱 필요하다는 것과 그리고 성서연구에서도 다른 일반 문학연구에 적용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요구했던 17세기의 대표적 성서비평가들인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스피노자(B. Spinoza) 그리고 리샤르 시몽(Richard Simon)과 같은 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서비평학은 매우 "규격화된" 탈무드적 미드라쉬적 접근방법(유대교)과 그리고 교회지상주의적인 교리적 접근방법(기독교) 때문에 상당한 기간 동안 방해를 받았으나, 18세기 계몽주의의 물결은 이러한 교권주의적 장벽을 헐므로, 성서비평학은 마침내 교리적 요구에 구애받지 아니하고 자유스럽게 역사과학적 연구를 전개할 수 있는, 이른바, 가블러(J. P. Gabler)의 대전환에 의한 "본격적인 성서비평학"의 시대를 열기 시작하였다.
구약성서에 대한 이러한 비평학적 연구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시기는 18-19세기에서 꽃을 피웠던 역사비평학(historical criticism) 또는 자료비평학(source-criticism)의 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비평학을 발전적으로 극복한 20세기의 양식비평학(from-criticism)은 전승사적 비평학(traditio-historical criticism)과 함께 일종의 비평학의 제국주의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 제국주의 아성은 그 극복의 일환으로 등장한 수사비평학(rhetorical criticism)과 경전비평학(canonical criticism) 그리고 신(新)문학비평학(new literary criticism)과 사회과학적 연구(social scientific criticism) 등등의 영역으로부터 새로운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1) 자료비평학과 양식비평학
시몽(R. Simon)의 영감에 힘입은 비터(H. B. Witter)와 아스뜨뤼크(J. Astruc)는 비록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최초의 자료분석적 비평학을 탄생시켰다. 그들은 우선 오경(五經)이 모세에 의하여 쓰여졌다고 하는 전통적 견해를 부정하고 창세기 안에는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신명(神名)을 각각 다르게 사용하는 "두 가지의 문서자료"가 거기에 결합되어 있음을 발견해 냄으로써, 소위, 오경연구의 "자료가설시대"를 열었다.
오경을 모세나 또는 어떤 단일 저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익명의 문서자료들의 결합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이러한 자료비평적 연구의 절정은, 논의의 여지없이, 벨하우젠(J. Wellhausen, 1844-1918)을 축으로 한 성서비평학, 즉 헤겔-다윈의 인과론적이고도 진화론적인 역사철학의 원리를 따른 것으로서 옳게(?) 또는 잘못(?) 평가된, 이른바, "역사주의적 자료(문서) 비평학"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벨하우젠 학파의 이러한 "역사주의적" 자료비평학은 오경을 구성하고 있는 문서자료들을 분류해 내고 그 문서자료들을 진화론적 역사주의 해석원리에 따라 분석 검토한 후 그 문서자료들에 대한 종전의 연대판단(P E J D)을 수정하고 각 문서자료가 가진 사상, 제도 등의 그 발달 정도에 대한 주관적 판단에 기초하여 오경문서의 연대를 최종 확정짓는 대업(J E D P)을 이룩하였다. 이러한 자료분석은 후대에 와서는 더욱 세분화되어 스멘트(Smend ; J), 아이스펠트(Eissfeldt ; L), 모르겐스테른(Morgenstern ; K), 파이퍼(Pfeiffer ; S), 포러(Fohrer ; N) 등에 의하여는 제 3 의 고대자료가 가정되기도 하였고 폰 라트(von Rad), 벤취(Baentsch) 등에 의하여는 오경 최후대 자료(P)까지도 세분화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문서(문학) 비평학적 접근은 창세기를 포함하는 오경(토라)뿐만 아니라 예언서(네비임)와 기타 성문서(聖文書 ; 케투임)에까지 파급되었다. 그러나 진화론적 역사주의의 해석원리가 지닌 한계는 곧 드러나게 되었다. 예컨대, 진화론적 역사주의의 해석원리에 따라 시편시들의 대부분(70%)을 포로 후기의 산물로 돌렸던 종교사학파의 견해(cf. C. A. Briggs)가 1929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라스 샤므라(Ras Shamra) 문서의 발견과 함께 결정적으로 와해되었다는 사실은 그 좋은 예라고 하겠다. 즉, 우가릿(Ugarit) 원경에 나타난 고대 가나안(기원전 14-15세기경) 종교시의 어휘, 시형식, 사상 등이 구약의 히브리시와 공통된 것이 많다는 것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예언문학에 대한 문서비평학적 접근에 있어서도 그 한계점은 여전히 나타났다. 즉 상반된 사상이나 상반된 주제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 이 역사주의적 해석원리는 예외 없이 그 구원예언을 "후대의 첨가"로 처리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을 말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구약예언이 지니고 있는 "심판과 구원의 교체적 성격"을 무시한 데서 온 과오로 보인다. 왜냐하면, 아무리 후대의 문서라고 할지라도 고대의 전승을 함유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켈(H. Gunkel ; 1862-1932)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양식비평학"(form- criticism)은 문서자료 그 자체보다 그것의 "전단계(前段階)"에 더 관심하였다. 즉 각 문서자료는 어떤 구전(口傳)의 단계를 거쳐왔으며 그리고 그 문학자료도 또한 어떤 전승의 과정을 거쳐왔는가 하는 데 관심하였다. 이러한 관심을 통하여 새롭게 인식된 것은 이것이었다. 즉 구약의 문학자료들은 일정하게 고정되어 있는, 인습적이고도 전형적인 문학유형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러한 문학양식들은 자신을 배태, 양육시킨 환경인, 그들 고유의 "삶의 자리"(Sitz-im-Leben)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문학양식들은 또한 그 양식의 발전, 변형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궁켈은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창세기와 시편을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는데, 그의 방법론을 응용한 창세기 연구에서는 창세기가 역사문헌이 아니고 여러 가지 민담(sagas)의 수집물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리고 이 민담자료들은 주로 민속전승들(folk traditions)로서, 숙련된 민간설화자들(narrators)이 정교하게 다듬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궁켈의 주요 공헌은 구약문학 양식들이 생성, 발전해 간 그 "삶의 자리"를 규명하고 그 문학양식의 역사를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는 데 있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구약성서문학은 그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단순한 문학활동의 산물, 즉 저자나 편집자의 문학작품이 아니라 "오랜 전승과정의 결실"(the fruit of long process of transmission)로서 이해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방법론의 총 결산은 그의 "시편개론서"에 잘 정리되어 있다. 즉 그는 시편 안에서부터 제도화된 관습이 산출해낸 인습적이고도 전형적인 문학유형들(찬양시, 대관식시, 민족탄원시, 제왕시, 개인 탄원시, 개인 감사시, 등등)을 분류해내는 작업을 하였고 그 문학유형들과 그것들의 삶의 자리 사이의 연결관계를 철저히 규명해내었던 것이다.
이러한 궁켈의 시편연구방법은 제의사적(cult-historical) 방법을 통하여 모빙켈(S. Mowinckel, 1884-1965)에게서 색다르게 계승 되었는데, 그러나 궁켈의 관심은 주로 문학자료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그것을 생성한 제도에 대한 관심에로 나아간 반면에, 모빙켈은 주로, 시(詩)의 삶의 자리로서의 "제의(cult)"에 더 관심하였다. 궁켈 이후 베스터만(C. Westermann)에 이르기까지의 시편연구는 "현대 시편연구의 앙상블"이라고 불리우는 두 시편연구자, 궁켈과 모빙켈, 이 두 학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발전해 왔다고 하겠다.
또한, 이러한 양식비평학적 구약 경전문학 연구는 창세기의 설화문학과 시편의 시문학뿐만 아니라, 법률자료와 예언문학 분야에도 크게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구약율법자료를 결의론적 법(casuistic law)과 단언적 법(apodictic law)으로 양식상의 구분을 하고 특히 단언적 법이 구약의 고유성을 반영한다고 주장하였던 알트(A. Alt)의 연구나, 구약의 계약조문양식과 고대 중동(헷 제국)의 종주 조약문 양식 사이의 평행점을 지적한 멘덴홀(G. E. Mendenhall)의 연구, 그리고 예언문학의 경우, 예언자들의 신탁양식(神託樣式 : oracular / messenger formula)에 관한 린트블롬(J. Lindblom), 쾰러(L. Koehler), 베그릿히(J. Begrich), 베스터만(C. Westermann) 등등의 양식비평적 연구 등등은 특기할 만하다.
이러한 양식비평학은 문학사의 역사적인 면을 좀더 조직적으로 취급하기 위하여 알트(A. Alt), 노트(M. Noth), 폰 라트(von Rad) 등을 그 대표로 하는 "전승사적"(traditio- historical), "편집사적"(redactio-historical) 비평학에로 발전하여 나아갔다. 이 전승사적 연구는 주로 "주제"(motif)에 관한 양식비평적 연구에서부터 발달한 것으로서 여러 개의 주제들의 덩어리(clusters of motifs)로 구성된 "전승"(tradition)이 문서의 최종형태에 이르기까지의 그 전승과정 전체를 추적하는 연구이다. 이러한 전승사적 연구는 특히 오경 또는 육경의 형성역사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고 하겠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선조들을 통하여 이룩해 보이신 "모범적인 구원사 케리그마"를 해석하여 주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궁켈의 양식비평학은 구약문학의 배후 역사와 그 삶의 환경을 밝힘에 있어서 이룩하였던, 그 뛰어난 해석학적 공헌에도 불구하고, 문학양식의 인습적이고도 전형적인 요소를 과대평가하여 그 문학양식의 "공통된" 표현에만 관심함으로 그것의 "개체성"이 지닌 의미를 간과하였다는 점과 문학양식의 단위(unit)들을 성서 모든 구절에 적용할 수 없다고 하는 점, 그리고 문학단위의 형식과 내용이 언제나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 등의 어려움 때문에 해석학적 과제를 바르게 이행할 수 없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리고 전승사적 연구 역시 전승과 주제(motif) 사이, 그리고 전승과 해석 사이의 혼동의 가능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승에서 유래하지 "않는" 관념과 표현이 오히려 구약에는(특히 예언서와 시가서에는) 매우 많다는 점 등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 무엇보다도 양식비평학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약점은 역사비평학에서 받는 "회의주의"를 점점 더 심화시켜 갔다는 점이고 그 때문에 구약경전문학 단위들의 삶의 자리를 "추상화"하거나 "일반화"하는 경향을 나타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특히 예언자들과 시인들은 결코 자신들의 말을 "추상적으로"(in abstracto) 말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언제나 "구체적으로" (concretely) 말하였기 때문에, 예언문학이나 시문학의 문학단위들에 대한 전기적(傳記的), 심리학적 접근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여, 그 문학단위들이 갖고 있는 케리그마를 충분하게 전달하지 못하였다고 하겠다.
양식비평학의 약점 중 더욱 심각한 점은 성서문학의 문학단위들을 너무 작은 단위로 산산조각 쪼개어 내어 "세분화"(atomize)함으로써, 따라서, 통일성과 연속성을 갖춘 문학단위의 구조를 해체(deconstruction) 또는 파괴(destruction)하는 데 주력함에 따라, 양식비평학이 비록 일반적인 삶의 자리는 밝혀냈는지는 몰라도, 그 문학단위들의 "텍스트의 자리"(Sitz-im-Text)를 밝히는 일은 등한시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그 결과, 성서문학의 각 문학단위들이 갖고 있는 그 전하고자 하는 의미 또는 "케리그마"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전혀 놓쳐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양식비평학의 이러한 "파괴성"은 해석학적 차원에서 볼 때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는데, 이의 극복을 위하여 나타난 것이, 이른바, 수사비평학(Rhetorical criticism)과 경전비평학(Canonical criticism)이다.
2) 수사비평학과 경전비평학
수사비평학을 제창한 마일렌버그(James Muilenburg ; 1896-1974)에 의하면, 양식비평학의 약점을 보완하고 극복하여 히브리 경전문학의 본질을 필요충분하게 이해함으로써 경전문학에 나타난 야훼의 계시(啓示)의 의미를 "통전적"(統全的)으로 이해하기 위하여는, 우선, 수사적(修辭的) 구조에 관한 관찰을 통한 개체의 문학단위를 규정해내고 그러한 그 문학단위가 그와 같이 연결되고 구성되도록 하기 위하여 채용되고 있는 그 구조적 패턴이 어떤 것인지, 즉, 그 문학단위가 그러한 통일된 전체의 구성물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수사학적 전략으로 배열(strategic collocation)했던 그 여러 가지 수사학적, 신학적, 그리고 케리그마적 의도들(rhetorical and kerygmatic devices)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고 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사비평학의 그 첫번째 과제는 한 문학단위가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를 살펴서 문학단위의 그 한계와 범위를 규정하는 일이다. 시편 8편의 경우처럼, 인클루시오(inclusio)가 분명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그 문학단위 결정이 매우 용이한 경우라고 하겠다. 그 다음의 과제는 이 설정된 "문학단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개의 정점들과 마디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그 전하려는 바의 목표를 향하여 움직여 가는지를 살피는 일이다. 그 다음 끝으로는 이와 같은 움직임의 수사학적 기획(rhetorical devices)이 어떤 수사학적 형식에 의하여 배열되고 있고 그리고 그 전하려는 케리그마가 과연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러한 수사비평학적 노력에는 분명히 성서문학의 문학단위들을 무한정 세분화하는 양식비평학의 본문파괴적 방법론에 대한 비장한 "극복의지"가 개재되어 있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수사비평학은 예언문학과 시문학의 경우, 특히, 그 문학단위를 고안하고 구성하는 인자(因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즉, 평행법적 특성이나 주요 단어의 반복어법은 물론이고, 접속사 "와우"(waw), 그리고 여러 가지 불변화사(particle)들, 히브리어 "키"(k ), "힌내"(hinneh), "라켄"(lakhen), "람마"(lammah), "워앗타"(we'attah), 전접어(前接語 : enclitic) "맴"(mem), 호격기능을 하는 "라메드"(lamed) 등의 기능과 그 의도적 배열상황(strategic collocation)들을 세심히 관찰하면서 그 문학단위가 어떤 케리그마를 선포하려고 의도하는지를 알아내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양식비평학의 한계와 성서해석학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강력한 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고 하겠다.
성서해석학의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는 또 다른 강력한 한 시도가 바로 "경전비평학" (canonical criticism)이다. 그러나, 경전비평학은 이 학풍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학자들인 차일즈(B. S. Childs)와 샌더즈 중에서, 특히, 차일즈가 자신의 학문방법론에 "비평학"이라는 말을 붙이기를 꺼려할 정도로, 재래의 통시적(通時的 : diachronic) 연구방법이 강조한 본문의 역사성(what it meant) 규명지향성과 그리고 공동체의 신앙과는 유리되는 학문주의(scholasticism) 지향성을, 이른바, 성서신학의 한 위기라고 보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서 나타났는데, 그리하여, 그의 성서해석 방법론은, 소위 말하는, 공시적(共時的 : synchronic) 연구방법론이라는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이러한 공시적 연구방법은 성서본문이 본래 의미하였던 바(what it meant)를 구명하여 재(再)구성하는 재래의 통시적 접근의 성향에 머물지 않고 여기서 더 나아가 본문의 최종형태(final form)를 주로 강조하여 그것의 현재적 의미(what it means)를 규명하는 데 주력하는 방법이다. 이 경전비평학은 신(新)문학비평학(new literary criticism)과 함께, "본문이란 그것을 쓴 저자와 반드시 관련되지 않고서도 스스로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보는 매우 특이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차일즈는 히브리어 본문(마소라 본문)을 경전으로서 선호하고 그 경전의 최종적인 본문에 강조점을 둔다는 점에서, 이와는 달리, 희랍어 역본(셉튜아진타 : LXX)을 경전으로서 더 선호하고 그 경전의 형성과정에 강조점을 두는 샌더즈와는 약간의 입장차이를 갖고는 있으나, 그러나, 이들은 모두 신(新) 문학비평학과 함께, 성서문학의 최종형태 그 자체와 그리고 그것이 그것을 신앙적 규범서로 삼는 그 공동체와 갖는 현재적 관계를 특히 강조한다는 점에서 서로간에 공동의 입장을 갖고 있다. 특히, 차일즈(Childs)는 성서를 "경전의식(經典意識 : Kanonbewusstsein)의 운동 안에서 발생하는 경전의 역동적 개념"을 강조한다. 그러나, 차일즈는 미국내에서 일고 있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사이에 증대되는 반목적 균열로 인하여 생겨나는 성서신학과 성서해석학의 위기에 대처하여 "새로운 성서신학과 해석학의 필요성"을 제창하면서도, 그는 역사비평학적 방법의 여과를 철저히 거쳐서 성서의 신학적 해석에 대한 책임과 교회생활에 대한 책임성을 모두 강조하는 "신학적 해석학"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역사비평학 지향성에 대한 성서해석학적 불만과 저항은 이 정도로서 끝나지는 아니하였다. 말하자면, 역사과학적 비평학은, 그것이 성서문학을 관찰할 때, 구약성서의 종교와 역사의 재구성에만 자신을 종속시키는 제약성을 갖고 있어서, 구약성서 문학의 그 "고유한 문학현실"과 그리고 그 구약문학이 처하였던 고대 이스라엘의 "사회적 환경"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로운 질문들에 대해서는 그것이 결코 만족스러운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불만이 극렬하게 대두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역사와 종교중심적 연구로부터 탈피하려는 경향과 함께 출현한 것이 신(新)문학적, 사회과학적 성서연구라고 하겠다.
3) 신(新)문학비평학과 사회과학적 비평학
양식비평학적, 전승비평학적 연구를 뿌리로 한 재래의 모든 비평학적 연구들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등장한 신(新)문학비평학(new literary criticism)은 성서문학이라고 할 때의 그 문학이 지니고 있는 그 고유한 독자적인 성격, 즉 필자들과 그들의 일상세계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종교적 이해를 얻기 위한 단순한 한 수단만이 아닌, 즉, "문학"으로서의 그 고유성, 이른바, 하나의 "예술작품 또는 언어학적 의미체계"(a work of art or a system of linguistic meaning)로서의 그 [독자성]에 대한 절실한 파악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하여, 신(新)문학비평가들은 성서문학의 그 연대기적 발전순서에 따라 통시적방법에 따라 성서문학을 고찰하기보다는 오히려 성서문학을 하나의 "완성된 문학작품"으로서 보고 그 문학작품의 독특성, 이른바, 그 문학작품의 장르, 수사학적 구조, 은유(metaphor), 그리고 아이러니 등등의 문학의 특수한 관례들을 분석한다. 이러한 점에서, 신(新)문학비평학은 양식비평학의 극복으로 나타난 "수사비평학"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동시에 신(新)문학비평학은 히브리 성서의 "최종형태" 또는 "경전형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성서문학이라는 편집물 "전체"를 있는 그대로 읽으려고 한다는 점에서 "편집 비평학"(redaction criticism) 및 경전비평학과도 유사한 점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신(新)문학비평학은 성서를 순수문학으로만 보는 것과는 또 다른 한 운동, 이른바, 어떤 특수한 본문들의 심층구조(deep structure)를 살펴보는 구조주의적 비평학(structural criticism)도 또한 비판적 고려 속에 넣고 있다. 구조주의적 비평학은 선과 악, 자연과 문화, 남자와 여자, 삶과 죽음 등등과 같은 대립구조 속에 인간의 경험들을 조직화해 넣는 방법을 통하여 그 특수 본문의 심층구조를 살펴보는 경향이 있다. 이 구조주의적 비평학은, 주로, 발생가능성을 갖고 있는 "언어"(language)와 주어진 본문 속에 이미 특별하게 발생한 "말씀"(word) 사이를 구분하는 성향의 "언어학적 구조주의"(F. de Saussure)와 그리고 신화를 만들고 친족분류를 체계화하는 그런 인간정신의 분석능력을 강조하는 "인류학적 구조주의"(C. Levi-Strauss)를 통하여 성서연구와 접맥이 되었다. 따라서, 이 방법은 역사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풍겨왔다. 그러나, 실제의 본문분석 과정은 그러한 차원과도 종합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해 준다.
그러나, 히브리 성서가, 어디까지나, 인간의 여러 공적(公的)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복잡한 사회구조 안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구약성서를 보기 시작한 것은, 소위, 사회과학적 성서연구이다. 그리하여, 이 연구는 사회경제적 자료, 정치사적 자료, 종교사적 자료들을 두루 가지고 있는 성서문학 안에서, 과연, 어떤 사회구조와 어떤 사회적 과정들이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피는 데 관심하였다. 이러한 연구가 처음으로 관심하기 시작한 것은 이스라엘의 기원(origin)에 관한 것이었는데, 사회과학적 연구는 여기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틴 밖에서 안으로 침입 또는 점차적 이주를 해온 유목민 또는 반(半) 유목민이 아니라 팔레스틴에 살고 있었던 농민, 목축 유목민, 사회적 국외자들인 "아피루"(하비루)들이 도시국가들의 지배에 항거한 혁명연합체였다는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학적 관심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종교라는 분야로 확대되었는데, 예언문학과 묵시문학의 사회적 성격에 대한 규명, 예컨대, 예언자의 "카리스마적" 기능의 사회적 성격 규명이라든가, 신구약 중간기의 묵시문학 운동가들이 취한 상징주의 이론체계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관찰 등등이, 바로 이러한 연구의 한 확대발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과학적 성서연구는 근본적으로 성서본문을 그 본래의 사회적 배경 속에 두고서 해석하려는 연구로서, 히브리 성서가 기록되고 전수된 그 이스라엘과 유대의 사회구조에 주로 관심한다. 따라서, 이 연구는 성서에 대한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관심 일변도의 역사비평학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서 성서문헌들의 그 고유한 문학적 구조에 관심해온 신(新)문학비평학적 성서해석의 지평과 공통의 기반을 갖고 있다고도 하겠다.
이상의 제비평학을 통하여 살펴본 바에 의하면, 히브리 성서는, 실로, 종교적 개념들로 가득 차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관련 역사들도 노출시켜 주고 있으며 또 그것이 기록되고 전수된 그 사회의 사회구조와 사회적 성장과정들도 전제하고 있는, 그리고 그것은 그 자체가 전적으로 하나의 예술적인 문학작품인 문서수집서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의 구약성서는 그 고유의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 삶의 환경을 통하여 그 고유한 케리그마를 전달하기 위하여 형성된 것이라고 하겠다. 실로, 성서해석학의 본질적 과제는 이상에서 제기된 제비평학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 무엇보다 성서가 그 고유의 경전문학 속에 담고 있는 그 케리그마를 찾아내고 그리고 그 케리그마에 모든 독자들이 참여하여 응답하도록 하는 그 일이라고 하겠다.
3. 구약성서 해석학의 오늘의 과제와 그 전망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지금까지의 제 구약성서 비평학은 각각 그 한계성에 직면함과 더불어 그 본래의 구약성서 해석학적 과제, 이른바 "복음선포의 행위와 복음선포의 내용인 케리그마"를 바르게 발굴해 내고 해석해 주는 과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장애요인"으로서 등장하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자기반성을 하게 한다고 하겠다. 그 첫째 이유로는 구약성서에 대한 제비평학이 예외없이 각각 그 한계성과 그 단점을 결정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요, 그 둘째 이유로는 서구 역사 비평학이 가진 학문적 도그마가, 도리어, 구약성서의 현실에 부합하는 해석학적 발전을 더 이상 하지를 못하게 하고 심지어는 그것을 비학문적인 것으로 탄핵하는 학문주의적 제국주의 논리의 포로로 떨어지게 되어 버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 역사비평학의 한계성과 그 학문적 도그마
18세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발아하여 19세기에서 그 찬란을 꽃을 피우고 마침내 현금에까지에 이른, 성서해석의 도구로서의 제(諸) 역사비평학은, 언제나, 그 방법론상의 결정적인 단점과 모순을 드러내었었다. 벨하우젠학파의 역사주의적 문서비평학은 분명 헤겔-다윈식의 주관주의적이고도 낙관적인 역사주의 위에 그 운명을 걸었었다. 그러나, 구약성서는 본질상 결코 단순한 종교사 연구의 사료집은 아니었으며, 그러므로, 구약성서에 담겨 있는 사상, 제도, 관습, 신계시 이해 등이 역사와 더불어 진화 발전한 그 종교적 현실에 대한 증언이 곧 케리그마는 물론 아니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왜냐하면, 구약성서는 본질적으로 처음부터 스스로 경전이 되려고 노력하였고 케리그마의 책으로써 그 기능을 하려고 하였던 책이기 때문이었다. 단지, "종교문학"이라는 옷을 입고 있고 그것이 성장한 역사환경과 밀접히 결부되어 있었을 뿐, 언제나, 구약성서는 야훼 하나님의 구원사를 증언하는 케리그마의 책으로서만 남아 있으려고 하였다. 구원을 유도하기 위하여 전해진 복음의 선포 그리고 그 복음의 내용을 모두 지칭하는 "케리그마"라는 말을 구약성서는 요나서 3 : 2에서 니느웨의 회개를 촉구하는 요나의 전도 "메시지"를 가리킬 때 사용하였는데 이 때 사용한 히브리어 "케리아"(Qeri'ah)를 희랍어역 구약성서 셉투아진타는 "케리그마"라고 옮겨 썼고 히스기야왕이 왕명을 반포할 때의 그 반포문, 히브리어 "콜"(Qol)을 셉투아진타는 또한 "케리그마"라고 옮겨 썼다. 그리고, 마태복음 12 : 41, 누가복음 11 : 32도 니느웨의 회개를 촉구한 요나의 전도를 "케리그마"라고 옮겨 쓴 바가 있다. 마가복음 끝 부분은 이러한 케리그마의 내용을 "영원한 구원의 거룩하고도 불멸적인 케리그마"라는 의미의 개념으로 정리한 바 있는데, 그러므로 케리그마는 "영원한 구원을 취급하는 메시지"(message which treats of eternal salvation)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의 케리그마는 예수의 대속적인 십자가 죽음과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 사건과 그 메시지를 가리켰으며(고전 1 : 21 ; 2 : 4 ; 15 : 14 ; 롬 16 : 25 등) 그리고 소위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케리그마"라는 것도 또한 예수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속량제물로서 자신을 증언하는 "예수의 자기증언"이나 사도들의 복음을 통하여 증언되는 "예수의 자기증언"을 가리켰다. 즉 케리그마는 우리의 구원을 촉구하는 메시지이다.
구약성서는, 그런 점에서, 본질적으로 야훼의 구원사역을 증언하는 형식의 문학으로서만 전승되었고 그 이외의 다른 형식의 문학으로서는 결코 전승된 바가 없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약적 현실"을 진지하게 의식하지 않은 채, 즉 성서본문을 위하여 봉사하려는 입장을 취하지 않고 전적으로 성서본문이나 그 문맥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려고 하는 모든 성서해석 방법은 배척되어야 할 것이다. 실로, 구약성서는 야훼의 구원사역을 증언하는 책일 뿐이다. 이것이 구약성서의 현실이다. 따라서 서구의 구약학자들이 도달한 바, 이스라엘의 원(原)신앙고백(Urbekenntnis)은 전적으로 출애굽 구원사건에 대한 이스라엘적 신앙고백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결론은 논의의 여지없이 타당한 결론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구약해석자는 구약성서 본문의 이러한 특수한 성격에 복종하여야 하며, 따라서 해석자가 본문 위에 군임하여 성서비평적 방법으로든 비평학 이전적 방법으로든 성서본문을 자기의 입장으로 끌어들이려고 해서는 안된다.
구약성서해석자는, 그러므로, "모든" 유용한 방법을 케리그마 발굴의 도구로 다 써서, 성서본문을 우선, 그 역사적 상황 안에서 이해한 다음, 그것을 기초로 하여 그 이해의 현재적 의미를 찾으려고 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비평학적 방법이든 비평학 이전의 방법이든, 모든 자의적 해석은 전적으로 배척되어야 한다. 즉 에이세게지스가 아니라 엑세게지스여야 한다.
역사비평학이 범한 오류는 바로 이것이었다. 즉 자신의 방법론이란 구약성서가 야훼의 케리그마를 증언하는 책인 한, 그 자체는 어디까지나 케리그마를 찾아내고 밝혀주는 과제에 충실해야 하고 따라서 그의 방법론이 지닌 이러한 한계와 목적을 분명하게 의식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비평학은 그 본래적인 해석학적 과제를 망각하고 비평학적 분석이론에만 심취하여 마침내 일종의 학문주의에 안주하고 말았다는 그 "학문주의적 도그마"가 바로 그 결정적 오류의 근본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비평학적 방법론도 반드시 그 한계점을 드러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서비평학과 양식비평학에 기초를 둔 현대 역사비평학은, 그리하여, 성서언어의 문자적 의미, 그 형성의 역사, 그 시대적 배경 그리고 그 수집과 편집의 동기(what it meant)를 밝히는 일에는 열중하였으나, 그 선포하려는 케리그마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찾아내어 주는 "텍스트에의 봉사"는 오히려 비학문적인 것으로 비하시켰던 것이다. 신학과 신앙 사이의 원천적 괴리는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구약성서는 어디까지나 인류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희망을 계시하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신 "야훼"의 영원한 구원사역을 증언하는 메시지로 구성된 케리그마의 책이기 때문에, 참된 구약해석학자는 이러한 구약적 현실을 바르게 증언할 수 있는 "구약해석학을 위한 전이해"(前理解 : prior understanding, or pre-understanding)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2) 케리그마 발굴의 패러다임(paradigm), "구원사 구조"
구약성서 해석자는, 구약성서가 본질상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신 야훼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증언하는 케리그마의 책인 이래, 분명한 구약해석학적 전이해(前理解 : prior understanding)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전이해를 전제하는 것은 구약해석학이 개인주의의 과오를 떠나 총체적이고도 건전한 성서해석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다. 구약의 말씀은 그것이 역사문학의 옷을 입었든, 예언문학의 옷을 입었든, 시문학과 지혜문학의 옷을 입었든간에, 그것은, 분명, 역사적 종교적 발전의 제약을 받은 책임과 동시에,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사람 모두에게 하나님의 구원활동에 관한 신앙고백적 증언의 책이라는 이중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성서는 인간의 문학이라는 그릇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순수과학적인 역사비평학적 방법이 결코 구약성서에 대한 최종적인 해석을 대행해 주지는 못한다. 즉, 성서해석은 역사비평에서 시작하여 역사비평으로 끝나서는 안될 것이며 반드시 역사비평에서 시작하여 케리그마의 계시(啓示)로 끝마쳐져야 한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의 역사를 신의 구원계시와는 상관없이 고대적 종교신앙에 따라서만 이해하려는 가블러(Gabler)의 견해나, 하나님의 역사적 구원간섭을 신화로 간주하려는 불트만의 실존주의적 성서이해는 구약성서를 구원사적 케리그마의 책으로 읽어야 하는 해석학적 전제로부터는 분명,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겠다.
실로, 구약성서에 대한 해석학적 과제에는 성서로부터 해석자인 "나"에게로 "들려오는"(엑세게제), 이른바, 케리그마의 소리를 "듣는" 선험적 지식으로서의 "신앙"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겸손하게 "듣는 신앙"이 전제되어야 한다(롬 1 : 16 ; 10 : 17). 이 신앙은 구약성서를 케리그마의 책으로서 읽게 해주는 동력이 되며, 이 동력을 통하여 해석자는 구약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체험되고 구약성서로 하여금 무미건조한 종교사 연구의 사료조각이 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구약성서에 대한 해석학적 과제에는 또한 구약성서가 객관적 사료의 수집물로서 그 객관적 사실성이 입증되기만을 바라는 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신앙고백의 여과를 철저히 걸러서 우리에게 전수된 신학적 각색을 받은 책이라는 신학적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구약성서의 역사는 그 객관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산산조각으로 분해될 수 있는 일반 사료집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역사사료는 야훼 하나님의 구속사를 일관되게 축복과 징계의 두 대극적 긴장관계를 역설적으로 조화시켜 가면서 연속성있게 증언한 역사신앙의 고백서이기 때문에 구약성서에 대한 역사신학적 전이해는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의 해석자는 구약본문의 이러한 특수한 구원사적 현실을 수용하여야 하며 결코 구약본문을 자기의 입장으로 끌어들이려고 하여서는 안된다. 역사비평학의 바른 도움은 바로 이런 잘못을 감시하는 파수꾼으로서 봉사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이 다양하고 복잡하며, 그리고 긴 전승역사를 담고 있는 구약성서를 그 케리그마를 규명할 목적으로 접근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떤 포괄적 윤곽 안에서 구약성서를 보아야 할 것인가? 물론 그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인근 국가들이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한 민족종교의 문서와는 다르다. 구약성서의 세계주의는 그 "특유의 구원사적 구조" 안에서 민족주의의 울타리를 헐어버리고 있다(암 9 : 7-10 ; 사 19 : 23-25). 여기에, 구약성서해석학이 감히 구약성서로부터 케리그마를 발굴해낼 수 있는 한 패러다임(paradigm)이 발견되는 것이다.
구약성서 안에 증언된 이러한 "구원사적 구조"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까지 그 역사적 연속성을 구축하고 있으며 구약과 신약 사이의 역사적 단절이나 케리그마적 단절을 막아준다. 신구약의 유비는 또한 이러한 구원사적 관계를 통하여 유지되고 정당화된다. 역사비평학은 이러한 성서의 역사적 유비의 단절을 막아주고 구약과 신약을 "한 분" 하나님의 구원사를 증언하는 케리그마의 책으로서 읽도록 도와줄 때 비로소 그 본래적 사명을 다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마치는 말
구약성서가 증언하는 야훼의 구원사역은 야훼께서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셨기 때문에 시작되었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계 만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계획되었다(창 12 : 3). 그러나,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장 모범적인 구원사의 구조를 수립하였다. 성서해석의 과제는, 실로,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이 구원사 구조의 패러다임을 통하여 야훼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오늘 우리의 현재 속에 제(諸) 성서비평학의 안내를 도움받으며, 끊임없이 re-telling 하는 일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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