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해석학

각 성서비평의 평가정리

천국 도서관장 2010. 4. 16. 12:44

이 글은 ‘성서비평’에 대한 전체적인 조감도라고 할 수 있다.


①본문비평-②자료비평-③양식비평-④전승비평-⑤편집비평-⑥경전비평-⑦사회학적 비평-⑧구조주의 비평-⑨문학적 비평


성경을 비평하게 된 이유는 성경을 더 잘 이해하고기 위한 시도에서 출발한다. 더불어 성경이 신화나 허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학문적 도구에 천착하게 된 결과 ‘논리성’에 의해 성경이 비평되고 말았다. 그렇게해서 성경에서는 신비와 계시는 사라지고, 역사성, 이야기의 편린, 사회적 구조 등만이 앙상하게 남겨지고 말았다.

하지만, 현대에는 고고학적 발견과 함께 구조주의, 문학적 비평을 동원한 결과 중근동의 역사문서와 함께 이스라엘의 직관적이고 종합적인 사고구조에 따른 문학적인 기법인 동심원 구조, 클로즈업 구조, 교차대조구조 등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성경 본문의 문예구조는 단순히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과관계에 의해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계시를 입체적으로 제시하는 도구였던 것이다.

 

기승전결이나 인과적 스토리 구조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합리적 문예구조였다. 문예부흥시기에 성경의 해석이 교회의 해석에서 인문학적 해석으로 넘어가면서 성경은 오로지 인과적 구조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현대 신비평, 구조주의 비평, 탈구조주의비평의 기법이 도입됨에 따라 단순한 시간적 순서에 따른 문예구조가 아니라, 시공간이 입체적으로 엮어져나가며, 때로는 초월한 문예적 구조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알고보니 이미 서구 이외, 동아아시나, 남미 등에서 사용했던 문예구조였다. 그리고 고대 이스라엘 문에 구조도 이와 같았던 것이다. 이것을 연구하면 편집비평의 허구성이 들어난다.


①본문비평-②자료비평-③양식비평-④전승비평-⑤편집비평

은 성경을 그 역사성을 탐구하는 것은 유효하나 조각조각 분석하다보니 전체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 비평이다.

그런 면에서 ⑥경전비평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성경을 볼 수 있는 비평이다.

여기에 ⑧구조주의 비평⑨문학적 비평은 경전비평에서 밝힌 경전에 대한 분문의 구체적인 구조를 밝히 보여준다.


이로 보건대 성경비평은 전체적으로 보면, 거시적 비평(①--⑤)과 미시적 비평(⑧-)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성경비평은 두 가지 관점을 모두 차용해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역사학이나 문학의 학문성에 매몰되어 성경의 영감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각 성서비평의 평가정리


전 철


1

성서비평은 성서의 의미와 가치를 올바로 이해하려는 학문적인 시도이다. 이러한 출발점에 서서, 우리는 본문비평에서부터 경전비평까지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우선 성서비평의 역사는 장구한 흐름 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각기 성서비평학의 역사적 발단과 전개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 한계도 각 비평학이 태동된 역사적 지점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시야에 드러나게 된다.

본문비평부터 문학비평의 역사적 과정은 "어떻게 하면 본문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려는가?" 하는 물음에서 진지하게 출발한 몸부림이라고 할 때 그 역사적 과정과 변천의 의의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존 비평학의 한계는 더욱 더 고양된 비평학으로 상승되어 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문비평부터 문학비평까지, 각각의 비평에 대한 성격과 의미와 한계를 이해하도록 하자.


2

<본문비평>은 가장 순결한 본문의 형태를 회복하는 작업이다. 우리가 지금 만나는 본문은 모두 가 사본이다. 이러한 사본을 넘어서서 본문의 원문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일환으로 하는 작업을 본문비평이다. 본문을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서 가능한 사본들을 많이 비교하여 본 문의 최종적인 형태를 복원해 낸다. 그렇다면 본문비평은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가? 본문비평은 본문의 가장 원형적인 형태를 발굴하는 비평이기 때문에 모든 비평의 가장 중요한 전제와 바탕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본문비평의 의미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자료비평>이다. 자료비평은 자료의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지형을 밝혀냄으로서, 본문'만'을 회복하려 하였던 본문비평의 한계를 넘어선다. <자료비평>은 자료의 배경을 탐구하는 작업 이다. 성서의 본문은 그 본문의 기록자, 기록연대, 기록상황, 기록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탐구하여 성서가 어떻게 씨줄날줄로 결합되어 우리들에게 드러나는지를 밝혀내는 방법이 자료비평이다. 자료비평의 의의는, 그 문서의 신학적 문학적 특징을 밝혀냄으로서 자료와 본문의 의도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되겠다.


<양식비평>은 본문의 삶의 자리를 밝히려는 작업이다. 우선 양식비평은 자료비평의 자료의 배경에 대한 모호한 자세를 양식을 통하여 보완한다. 양식비평은, 본문의 하부구조에는 구조적 전역사나, 양식들, 그리고 삶의 자리가 베어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러한 양식을 발견하고 드러내는데 관심을 기울인다.

양식비평은 특별히 본문의 양식을 밝혀냄으로서, 본문의 독특한 사상이나 교훈을 올바로 드러내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특히 시편이나 지혜서 연구 에 매우 유용한 빛을 던져주었다. 하지만 양식비평의 한계 또한 만만치 않다. 성서의 모든 본문을 양식으로 구분할 수 없는 점이 양식비평의 가장 큰 한계가 된다. 또한 양식에 대한 명칭의 통일성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한계가 된다.


<전승비평>은 본문 전승 과정의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이다. 전승비평은 전승 과정의 깊은 의미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굴하여 양식비평을 넘어선다. 전승비평은 독특한 전승을 형성한 단체, 지역, 요소, 동기를 통하여 여러 전통의 전승과정의 추정과 그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이다.


<편집비평>은 본문 전승 과정에 삽입된 편집자의 의도를 꿰뚫어보는 작업이다. 편집비평은 전승비평에서 비교적 간과하였던 편집자의 신학적 의도와, 최종형태에 더 깊은 관심을 보여주면서 전승비평을 극복한다. 또한 편집비평은 본문의 기자들을 고유한 신학자의 자리에 상승시킴으로서 본문의 신학적 의미를 깊이있게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여러 통시적 방법 가운데 가장 유효하고 적절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편집비평의 한계는 본문의 의미를 신학적인 서클 안에서 만 시도하였다는 점이 되겠다.


<경전비평>은, 성서는 그 자체 안에 경전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밝히는 작업이다. 경전비평은 기존 성서비평의 해체적(destructive) 독해를, 경전의 권위를 매개로 하여, 구성적(constructive) 독해 로 새롭게 전환한다. 기존의 성서비평의 날카로운 메스는 성서를 산산조각 내어버린다. 이때 성서의 경전성과 신앙의 독자성은 산산이 와해되어 버린다. 여기에서 본질적인 질문이 등장한다. 도대체 성서비평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이러한 진지한 물음과 경전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의 질문이 경전비평을 등장하게 한 동인이 되었다.

신앙공동체가 경전 안에서, 경전을 통해서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가에 대한 과정을 밝혀내는 작업을 이 비평에서는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시도의 배경에는 성서본문의 경전형태에 최종적 권위를 둔다는 점이 되겠다. 경전비평은 기존의 비평의 한계인 신앙공동체의 필요성과 권위에 대한 확고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사회학적 비평>은 본문이 등장한 정치 경제적 지층을 탐구함으로서 본문의 의미를 더욱 더 명확하게 확보해 내려는 작업이다. 기존 성서비평들의 한계지점인, 본문과 그 당시의 정치 경제적 함수관계를 사회학적 비평은 새롭게 복원해 낸다. 사회학적 비평은 본문이 처한 현실사회와 정치 경제적 관계들의 의미를 파악함으로서, 구체적이고도 명백한 사회 안에서의 신학적 의미를 발견하는 비평이다. 어떠한 본문이든 그 본문은 본문이 배경으로 하는 사회적 맥락 앞에서 순결할 수 없다는 점을 사회학적 비평은 제1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학적 비평의 한계도 있다.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역사적 - 계급적 이해관계만을 통하여 제시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사회학적 비평에 대한 만능주의와 신뢰주의는 자칫 위험스러운 결론으로 이어 질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겠다.


다음으로 <구조주의적 비평>이다. 구조주의적 비평은 철저하게 공시적인 비평이다. 구조주의적 비평에 있어서 통시적 접근이나 성서본문과 해석의 역사성과 같은 점은 오히려 성서주석의 오독을 일으킬 뿐이다. 구조주의적 비평은 구조주의라는 인류의 새로운 이념적 사조에 부흥하여 일어 난 듯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비평학으로서의 자기목소리가 확보된 비평이라기 보다는 시대적 사조와 여타 학문의 소용돌이에 함몰된 비평학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여하간 구조주의적 비평은 성서에 등장한 설화나 본문의 내면적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비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역사성 보다는 본문을 해독하는 독자의 자리에 권위가 부여됨으로서, 더욱더 친밀한 관계로 독자와 본문을 매개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물론 구조주의적 비평의 한계도 있다. 가장 큰 한계는, 아무래도 통시적 비평의 긍정성과 유용함을 모조리 박제화시킨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문학비평(신문학비평)>이다. 문학비평은 본문을 완결되고 독자적인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상정한다. 또한 문학작품 안에 무한하게 담겨있는 이미지, 사상, 주제, 문학적 아우라, 교훈, 신학적 의도 등이 종합되어 있기에 이러한 본문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끌어낼 수 있는 방법론은 바로 문학비평에서만 가능하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이들은 이러한 전체적인 의미를 끄집어내려는 의도 하에 수사학이나 비유법, 문체 등등 일반 문학비평의 성과를 최대한 수용하여 성서본문의 진면모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주석해낸다.

문학비평의 한계라고 할 때 그것은, 자칫 잘못하면 주관주의적 해석 일변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 되겠다. 이러한 주관주의적 해석을 넘어설 수 있는 토대가 온전히 마련되었을 때에만 문학비평의 의의와 가치는 더욱 더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가져본다.


3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각기 독특한 지평을 형성하며 역사 안에서 전진한 비평방법을 임의적으로 다른 비평방법을 통하여 비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모든 비평은 서로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각 비평이 정확히 어떤 본문을 주석하는데 도움을 주는가 하는 점을 염두해 두면서 비평의 성과와 의의를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각각의 비평은 절대적인 승자일 수 없듯이 그 모든 비평 또한 절대적인 패자가 될 수 없다. 이제 우리의 시선은 어느 비평이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물음보다는 성서본문의 의미를 오늘의 현실에 살려내기 위하여 어느 비평을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우리의 관심의 촉수를 기울이 때라고 여겨본다. 하나님은 비평 자체에 거하시기 보다는 비평을 통하여 우리에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구조주의적 비평에 더욱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본문의 의미의 중요성과 더불어 '오늘의 의미'의 중요성은 어느 주석이나 어느 설교에서든지 강조되고 있기 때 문이다. 당연히 오늘의 의미는, 나의 의미이고, 내 안의 내재적 구조가 획득한 의미이기 때문에, 구조주의는 나름대로의 성과와 역할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모든 비평방법에 대한 깊은 이해, 특히 구조주의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하여 현실을 통하여 드러나는 본문의 의미를 깊고 넓게 끄집어 올릴 수 있기를 기원하며 펜을 놓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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