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벧후 1:4).
내가 성경을 펴서 이 말씀을 읽는 것이 오늘 아침 5시경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나오기 직전에 읽은 말씀은 마가복음 12장 34절이었다. "예수께서 그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
오후에 세인트 폴 교회에 오라는 청을 받았다. 거기서 부른 찬송가는 이런 것이었다.
"여호와여 내가 딜은 데서 주께 부르짖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나의 간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저녁에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은 채 올더스게이트 가에서 있는 어느 모임에 갔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9시 15분 전 쯤 되어서 그가 계속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역사를 하신다고 설명을 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오로지 그리스도망을 믿는다고 느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악의적으로 나를 이용했거나 박해한 사람들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나서 나는 생전 처음 내 마음 속에 느낀 것을 거기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터놓고 간증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원수 같은 마귀는 넌지시 이렇게 속삭였다. "이것은 믿음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기쁨은 어디 있냐?" 그때에 나는 배웠다. 평화와 죄에 대한 승리는 우리의 구원의 대장되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통 처음에 생기는 황홀한 기쁨 특히 깊이 애통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기쁨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때로는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주지 않으시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다.
집에 돌아온 후에 나는 여러 가지 시험으로 몹시 괴로웠다. 그러나 큰 소리로 외쳤더니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 시험은 자꾸 되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눈을 들어 주님을 향하자 주께서는 "주의 거룩한 곳으로부터 나에게 도움을 보내주셨다" 나는 여기서 이런 체험과 주로 전에 일관되었던 나의 신앙상태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싸웠다. 그렇다. 나는 율법 아래에 있을 뿐만 아니라 은혜 아래에 역시 있는 힘을 다하여 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에는 자주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때때로 승리하였다. 그러나 현재에는 늘 승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 이 글은 1738년 5월 24일 웨슬리의 일기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때 웨슬리는 35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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