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독교 강요>를 읽고 있다. 하나님의 ‘섭리론’과 ‘예정론’에 대한 교리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교리를 알면 알수록 더욱더 모르게 된다(칼뱅은 이를 유식한 무지라고 했다). 대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에 압도당하게 된다.
섭리론과 예정론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정말 어렵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로 인해 한쪽 편에 치우쳐서 싸우고 있다(실제로 기독교 토론 싸이트에 들어가면 양측이 살벌하게 싸운다). <기독교 강요>를 보면서, 동시에 폴 헬름의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있다. 이 책에는 섭리론에 있어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오류와 그로 인한 논쟁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 있어 나에게 매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 역시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두었던가! <거룩한 구원>에 이에 대해 명확히 나와 있던 것을 깜박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책을 펼치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6.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⑴ 성경에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배치되게 보이는 구절들, 즉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한 말씀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 나아오라는 강력한 권고의 말씀이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사 31:6). 또, 우리가 믿고 영접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구절이 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또, 강력히 회개를 촉구하는 구절이 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5).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신다는 구절이 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 그리고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들어간다는 말씀도 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 모두 인간의 자유 의지에 호소하는 듯한 말씀들이다. 즉 인간의 순종과 믿음과 결단을 강하게 요구하시는 말씀들이다.
⑵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예정, 선택)과 인간의 자유 의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이 문제만큼 교회사를 통하여 큰 논쟁거리가 된 문제도 많지 않다.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두 말씀 다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보다 높으며(사 55:8~9), 하나님의 길은 찾을 수 없는 길이다(롬 11:33~36). 그러므로 인간의 유한한 이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짜 맞추려다가 실족하지 말고(벧후 1:20~21 ; 3:16), 말씀하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도 성경에 분명히 나오므로 믿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명령도 분명히 나오므로 믿어야 한다. 그러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의 조화는 인간의 지혜로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하나님의 무궁한 지혜로 정하신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느 하나만 강조하거나 어느 하나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 가운데 기록된 모든 것을 다 지켜 행하라고 하셨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7).
<거룩한 구원> pp.256-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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