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H팡세

for the common good

천국 도서관장 2009. 10. 23. 17:4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for the common good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요즘, 바울의 선교여행에 대한 묵상을 마치고 바울의 서신서를 묵상하고 있다. 바울은 특히 은혜를 깊게 체험한 분이시기 때문에, 은혜에 대해서 항상 강조하신다. 그 은혜로 인하여 그는 살 소망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소명을 충성스럽게 수행할 수 있었다. 그에게 은혜가 없었다면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사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안에서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살기 때문이다. 그는 육신에 살지만, 그 육신은 영에 의해 지배를 받고 영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롬 8:5). 즉, 그는 육의 차원이 아니라 영의 차원에 있었고, 그 차원은 인간의 자아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이 은혜에 항상 지배받았기 때문에, 자신을 볼 때마다 죄인의 괴수(딤전 1:15)로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항상 황송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만을 사모하며 살았다.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그에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의 공로는 전혀 없었다. 은혜 이전의 삶은 전혀 무가치하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어, 그의 독생자를 보내주셨다. 그의 독생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람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러나 죄가 없으시기에 다시 부활하시고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셨다. 이 복음을 믿는 자는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살게 된다(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는 자신의 공로가 전혀 없기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의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godly) 삶을 살게 된다.


바울은 오직 이 십자가의 은혜의 복음만 전했다. 그러나 사단이 누구인가? 거짓의 아비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먼저 문제가 발생했다. 은혜가 아니라 행위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이런 도전을 받은 바울은 즉각 사단의 진을 말씀으로 파해나갔다. 아브라함의 예를 들며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되어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철저히 가르쳤다. 갈라디아서는 그의 안타까운 마음이 절절히 묻어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의 논리적인 규명과 함께 그의 안타까운 감정이 곳곳에 배어난다. 그 후 대략 1년 후 로마서에서는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주시는 것에 대해 감정적 호소를 배제하고 더욱더 논리적으로 규명해 나간다.


로마서를 쓸 때 그는 고린도 교회에 있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그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교회였다. 고린도교회 2차 선교 여행시 개척되었으며, 2차 선교의 중심지였다. 그는 여기에서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 교인을 가르치고 섬겼다. 그리고 잠시 안디옥 교회에 갔다가 3차 전도여행의 중심지인 에베소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다. 그때 고린도 교회에서 온 성도에게 교회의 좋지 못한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 충격이 컸다. 하지만 그 충격에 굴하지 않고 다시 말씀으로 사단의 진을 분쇄해 나갔다. 고린도 교회는 사실, 하나님의 많은 은사를 받았다. 그만큼 능력이 충만한 교회였다. 고린도전서 13장에 1-3절에 나온 말씀을 상고해 보면, 당시 고린도 교인들이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었는지 알 수 있다. 방언과 예언의 은사, 모든 지식을 아는 은사, 산을 옮길만한 믿음의 은사, 구제의 은사, 타인을 위해 화형까지 받을 수 있는 희생의 은사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은사가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 받은 듯이 자랑하고, 우열을 가르며 과시했다. 결국 그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로 인해 분열되고 말았다. 실제로 고린도 교회에는 바울파, 게바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가 있었다. 아마 자신들의 받은 은사를 더 과시하기 위해 파당을 이루었던 것 같다. 게다가 기존의 신자들은 새 신자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들이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었다며 우상숭배의 음식을 먹는 문제로 인해 새 신자들을 시험들게 했다. 


그렇다면 이 은사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다. 이 은사를 받은 고린도 교인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 은사를 받고 교만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은사를 잘못 받으면 교만이라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사실 사도 바울에게 가시가 있었다. 그것은 너무 자고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은혜가 족하다고 하셨다.


사도 바울은 은사를 주신 목적을 고린도 교인에게 상기시켰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for the common good.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은사를 주신 것이다. 공동체는 교회이다. 교회에는 교회 머리되시는 예수님이 계시고, 그리고 몸이 되는 교회의 지체들의 연합체이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신 것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였다. 몸과 머리가 따로 움직이고, 몸이 다시 따로 움직인다면 전혀 유익되지 않고 도리어 해가 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은사를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지를 고린도전서 13장을 통해 설명한다. 그 핵심은 은사의 실질적인 원천은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온전히 이타적인 사랑이다. 부분적인 사랑이 아니라 완전한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이 원천이 되면 그 사랑의 힘으로 은사가 온전히 은혜롭게 나타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은사가 도리어 유익이 아니라 해가 된다. 이런 은사는 차라리 없는이만 못하다. 사랑이 없는 은사는 교회를 무질서하게 만들어 자칫 열광주의를 낫게 할 수도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은 그래서 <사랑과 그 열매>를 통해서 이러한 사랑이 배제된 특이한 은사에 대해 극도로 경계했다. 그러나 1차 대각성 운동은 결국 열광주의자들에 의해 큰 타격을 받고 말았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세 번의 편지(고린도전서, 눈물의 편지, 고린도후서)를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고치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기쁜 마음으로 고린도 교회로 가서 고린도 교회를 튼튼히 하는 한편, 로마에 있는 성도를 위해 그리스도교의 대헌장이라고하는 로마서를 집필하게 된다.


어제는 아내와 함께 로마서 8장을 묵상했다. 아내와 성경을 묵상하면 내가 가르치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깨달음이 올 때가 종종 있다.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함께 성경을 더욱 묵상해야겠다.


어제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고린도전서13장 강해서인 <사랑과 그 열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라는 구절을 통해 견인의 은사를 설명해 주시는데, 그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한동안 정신이 멍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을 인용해 본다.


(1) 죄인의 회심을 반대하는 마귀의 속셈


“우리는 어찌하여 마귀가 죄인의 회심하는 것을 그렇게 반대하는지 그 이유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죄인들이 일단은 회심하기만 하면 마귀는 그런 사람에게는 손대지 못하게 됩니다. 마귀는 그런 사람들을 넘어뜨릴 수도 멸망케 할 수도 없습니다. 만일 은혜에서 떨어지는 일이 있다면, 의심할 것도 없이 마귀는 사람이 회심한 이후에도 은혜를 가지는 것을 반대할 것입니다. 그러한 일을 대적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들의 은혜를 소유한 사람이 되지 못하게 더욱 대적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일단 은혜를 소유하고 나면 은혜를 전복하거나 넘어뜨리기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은혜를 소유하기만 하면 우리는 은혜를 소유한 그것만으로도 그를 완전히 작별하고 마귀의 멸망하는 힘이 미치는 한계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됩니다.

<사랑과 그 열매>, 조나단 에드워즈, p.380.



바울 서신서를 공부하기 위해 바울에 관한 참고서적을 모아 보았다. 먼저 집에 보니 두 권의 바울 해설서와 한 권의 바울 서신서 해설서가 있었다. 그 내용이 대부분 좋았다. 그러나 이 책 외에 꼭 사고 싶었던 책이 있었는데, 오늘 드디어 돈을 모아 구입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빨리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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