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들의 외침

성령의 부어주심-어거스틴

천국 도서관장 2009. 9. 15. 12:42

예전에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어거스틴에 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그에 관한 자료가 있어 어제 설교에서 목사님이 언급하셨던 내용을 인용해 본다. <고백록> 외에 어거스틴에 관한 1차 자료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를 듣은 것이 생각나 우연히 책장을 보니, 단행본 형태로 묶인 그의 논문집을 발견했다. 몇 년 전에 세일 가격으로 구입해 놓고 읽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 보기로 했다. 잠깐 내용을 훑어보았는데도 그의 영감이 매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영적인 깊이는 약 1200년 후에 나타난 칼빈을 능가하는 것 같다.



5. 최고의 또 필수적인 은혜는 성령을 주시는 것이며, 이 성령이 선에 대한 기쁨과 사랑의 불을 영혼 속에 일으키심


그러나 이와 반대로, 사람의 의지가 바른 행동을 하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데 대해서 우리 자신이 하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즉 사람은 창조되었을 때에 선택의 자유를 천품으로 받았을 뿐 아니라, 또 바르게 사는 방법을 가르침받았으며 또한 성령을 받아서, 변함없는 최고의 선이신 하나님을 사람의 영혼이 기뻐하며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아직 눈으로 보지 못하면서 믿음으로 걸어가는(고후 5:7) 이 세상에서 지금 이 은사(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은사가 하나님의 거저 주신 풍성한 은혜에 대한 일종의 담보가 되어, 사람의 감정에 불을 붙여 창조주에게 밀착시키며, 지성에 빛을 비추어 저 참 빛의 조명을 받게 하심으로써, 사람이 그 존재의 근원으로부터 진정한 행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 없습니다.

또 바른 행동과 진정한 목표가 분명히 나타나가 시작하더라도, 만일 그 일을 기뻐하며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직 거기에는 실천이나 헌신이나 선한 생활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지는 것입니다(롬5:5). 우리 자신 속에서 솟아나는 자유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에 의해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28. 무슨 까닭에 성령을 하나님의 손가락이라고 하는가?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이것은 우리가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 그 하나님의 영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우리는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즐겁게 됩니다. 곧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죄를 짓는 것이 즐겁습니다. 곧 노예 상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종살이의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곧 영으로 안식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이신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 넣는 성령을 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손가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눅 11:20). 율법의 돌판들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셨으며, 하나님의 손가락은 우리를 성별하는 성령이며,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삶으로써 사랑으로 선행을 하려 한다는 것은, 여기에 놀라운 유사점과 차이점이 있지 않습니까?


모세를 통해서 유월절에 어린 양을 잡으라고 명령하신 것은 장차 있을 주님의 수난을 의미하는 비유였고, 하나님의 손가락이 돌판에 슨 율법을 모세가 받은 것은 그 유월절로부터 계산해서 50일 후였습니다(출 31:18;신 16:9 이하).


그와 같이 "도수장으로 뜰려가는 어린 양 같은"(사 53:7) 분이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신 때로부터 50일이 자나서, 모여 있던 충성된 자들이 하나님의 손가락인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행 2:1-4).



<아우구스티누스의 은혜론과 신앙론>, '1. 영과 의문에 대하여'. 김종흡 역, 생명의 말씀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