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준 목사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에서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의 ‘경향성’과 <참된 미덕의 본질>에 관한 주석이 탁월하여 인용한다.
경향성에 관한 주석(p. 20)
1)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존재와 경향성의 문제는 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가 되어 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희랍어 ‘헥시스(έζις, 문자적으로 ’실천에 의하여 이루어진 어떤 상태 혹은 항구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로 토마스 아퀴나스는 라틴어 ‘하비투스(habitus, 문자적으로 ’본성‘, 성격, 경향성’)’ 설명하였다.
그러나 로크와 흄으로 대표되는 영국 경험주의를 거치면서 인식론과 존재론에 있어서 경향성이 존재의 특성이라고 생각하던 관점은 경향성이 곧 존재의 본질이라고 보기에 이르렀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영적이며 지각하는 존재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 자체가 자신의 신성의 영광의 충만을 밖으로 드러내시는 경향성의 발로라는 설명을 가능하게 해 준다. 에드워즈는 영적이며 지각하는 존재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문집 241에서 다음과 같이 섰다. ‘(영혼의) 본질은 힘들과 경향성들로 구성되어 있다.’ 에드워즈는 경향성과 법칙들이 존재의 지속적인 원리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실재하는 것들에 단지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존재를 구성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여 사물들이 경향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 자체가 ‘경향성이며 법칙들이라는 것이다. 곧 경향성과 법칙들은 존재들의 본질이다.
<참되 미덕의 본질>에 관한 주석 p24.
4)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인간의 아름다움 혹은 탁월함은 곧 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덕이라는 것은 책망받거나 혹은 칭찬받을 도덕적인 본성에 관한 것으로서 마음의 특질들과 움직임의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에드워즈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이나 다른 피조물들에 대하여 갖는 인간의 애정도 이러한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일 때 선한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이 이러한 창조의 목적을 이탈하여 본성적으로 혹은 다른 방법에 의하여 개별적인 사람이나 사회적 구성체에 대하여 연합이나 애정을 갖게 될 때 그러한 마음의 경향성과 결정은 총제적으로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대한 애정에 복속된 것이 아니다. 그러한 마음의 결정, 경향성, 그리고 정서는 참덕 덕의 본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