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7일 금요일
날이 밝자마자 출발하여, 하들리에 닿았다. 이곳에서 몇 년 전에 위대한 일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최근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의 죽어 있음과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탄식하고 있었다.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혼에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언급하자마자 그것은 마치 부싯돌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기억하고 비통하게 흐느껴 울었다.
조금 몸을 추스른 후에 우리는 도선장을 건너 약 5년 전에 500명이나 되는 영혼들이 구원받는 노샘프턴으로 갔다. 그들 목사의 이름은 에드워즈로 그 위대한 스토다드의 후임자이자 손자였다.
스토다드에 대한 기억은 내 영혼에 언제나 귀하게 남을 것이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돕는 안내’와 ‘그리스도의 의로움 안에서 나타나는 안전함’이라는 제목의 그의 책을 모두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에드워즈 목사님은 견고하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지금 육체적으로는 약한 상태에 있었다. 나는 뉴잉글랜드에서 그와 필적할 만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의 강단에 올라갔을 때, 성도의 위로와 특권, 그리고 믿는 자들 위에 부으시는 성령의 풍성하심 외에 그 어떤 다른 것은 거의 말할 수 없도록 나의 마음이 끌어당겨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그들에게 이전의 경험에 대해, 그리고 그 당시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이고 생동감 있었는지를 상기시키자, 사역자와 사람들 모두 크게 흐느껴 울었다.
저녁에 에드워즈 목사님의 집으로 온 여러 사람들에게 권면의 말을 해 주었다. 몸은 약했고 식욕은 거의 떨어졌으나, 나의 주님께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양식을 주셨다.
주님, 이 양식을 언제나 저에게 주옵소서! 아멘, 아멘
10월 18일 토요일
에드워즈 목사님의 요청으로 그의 어린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아이들은 크게 감동 받았다. 노샘프턴에서 5마일 떨어져 있는 해드필드에서 설교를 했으나 나 자신이 그다지 강건하지 않음을 느꼈다.
오후 4시에 에드워즈 목사님의 회중에게 설교를 했다. 나는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시작했으나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셨다. 회중 가운데 메마른 눈은 거의 볼 수 없었다. 나는 천상적인 영광을 감격스럽게 바라보며 어느 정도의 애절함을 가지고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주님의 임재하심으로 새로워짐의 때가 임하고 있는 것 같았다.
10월 19일 주일
나는 에드워즈 목사님의 집에 있는 것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부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의 아이들은 비단이나 새틴을 입지 않았으나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인의 검소함의 본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의 자녀처럼 검소했다.
에드워즈 부인은 온유함과 고요한 영혼으로 장식을 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일을 확고한 마음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너무나 훌륭한 내조자처럼 보여서 아내될 이를 위해 아브라함의 딸을 보내 달라고 몇 달 동안 하나님께 울려드렸던 나의 기도를 새로이 불러일으키게 했다.
주님, 제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당신께서 저의 상황을 아십니다. 제가 단지 당신 안에서, 그리고 당신을 위해 결혼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당신은 아십니다. 당신께서 이삭을 위해 리브가를 선택하셨사오니, 저에게 맡겨진 이 큰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저를 위해서도 내조자를 선택해 주십시오.
오늘 아침에 설교를 했는데 훌륭한 에드워즈 목사님은 나의 설교를 듣는 동안 내내 흐느껴 울었다. 사람들도 그와 동일하게 감동을 받았고, 오후에는 그 능력이 이보다 더 크게 증대했다. 우리 주님께서 좋은 술을 끝까지 보존하셨던 것 같다. 내가 도착한 이래 4개의 모임이 너무도 은혜롭게 함께 진행되었다.
오, 노샘프턴 사람들이 그들의 첫사랑을 회복했고 주님께서 그들의 영혼에 그분의 역사를 부활시켰으며, 그들이 처음 사역을 하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으로 제 영혼을 새롭게 하소서!
10월 21일 화요일
내가 묵었던 곳에서 약 8마일 거리에 있는 서필드를 향해 출발했다. 그곳에 도착하여 11시에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설교를 했다. “복음 사역자가 회심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일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한 사역자를 만났다. 나는 설교하면서 거듭남의 교리와 또한 사역자가 그리스도를 바르게 설교할 수 있기 전에 회심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강조했다.
말씀은 큰 능력으로 임했고 회중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많은 사역자들이 참석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봐 주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내가 분명하게 다루어 주어서 나에게 고마워했으나 그들 중의 한 사람은 언짢아했다. 내가 뉴잉글랜드에 더 오래 머문다면 그와 같은 종류의 사람들의 기분을 더 많이 상하게 만들 것이다. 회심하지 않은 사역자들은 기독교 교회의 독이다.
나는 저 위대하고 훌륭한 스토다드를 존경하며 기리지만,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을 사역에 받아들여도 좋다고 입증하는 데 애를 쓴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도 스토다드의 중도언약을 폐지하고 그들의 선조들처럼 청교도적으로 교인의 자격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노스햄턴 교회에서 쫓겨났다-cyhpc). 그가 그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교리를 옹호하기 위해 어떤 견고한 논증도 갖다 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탁월한 사람들도 단지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실수를 허용하시는 것이다. 최근에 ‘회심하지 않은 사역의 위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길버트 테넌트의 설교는 이 문제에 관해 반박할 수 없는 결정적인 답변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점심식사 후 윈저로 말을 타고 가는데, 한 노인이 나에게 다가와 “아침에 목사님께서 설교한 것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느꼈기 때문이죠. 나는 20년 동안 종의 영 아래 있었습니다. 그리고 23년 동안 양자의 영을 받았지요”라고 말했다. 회심한 사역자가 있는 윈저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크게 부흥했던 것 같다.
설교가 끝나자마자 1마일 반을 달려서 노샘프턴의 에드워즈 목사님의 아버지인 연로하신 에드워드 씨께 속해 있는 운집한 회중에게 설교를 했다. 예배 후에 우리는 연로하신 에드워드 씨의 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의 아내도 그만큼 연로하신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스가랴와 엘리사벳의 집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와 그의 아들(여기까지 나와 함께 온)과 아쉽게 작별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송축한다. 우리는 영원 속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주님, 이러한 생각으로 언제나 저 자신을 위로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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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조지 윗필의 일기>( 지평서원)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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