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양무리 카페’에서 홀리죠이님과 폴님이 예수님의 속성에 대해 토론한 글이다. 폴님은 지방교회 출신인 것 같고, 홀리죠이님은 개혁주의 교회출신이다.
토론의 핵심은 예수님의 person개념이다. 지방교회에서는 예수님을 human person이자, divine person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개혁주의에서는 divine person, human nature라고 반박했다.
홀리조이님은 이를 위해, person의 개념을 근대철학의 ‘개인’으로가 아니라 ‘상호내적존재를 자의식할 수 있는 기본 단위’, 즉 관계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개별단위라는 개혁주의적인 설명을 강조하며 설명했다. 그리고 nature의 개념을 ‘실체(subatance)가 공통으로(in common) 가지고 있는 속성’이라고 규정하며, 예수님이 참하나님이자 참인간이라는 것을 규명해 냈다.
홀리조이님의 이 글은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평신도인 나에게 person, nature에 대해 개혁신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약간 수정하고 교정하여 올려놓는다.
-홀리 조이님이 폴님에게 person, nature에 대해서 설명하는 글-
세상에는 사물이나 존재를 헤아리는 기본 단위가 있습니다. 사과는 한 '개', 두 '개', 세 '개'......라고 헤아립니다. 동물들은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라고 합니다.
나무들을 헤아릴 때는, 한 '그루', 두 '그루', 세 '그루'라고 합니다.
사람을 헤아릴 때는 어떻게 합니까? 한 '명', 두 '명', 세 '명', 혹은, 한 '분', 두 '분', 세 '분', 혹은,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런 설명은 성경에 어떤 구절을 들먹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하실 것입니다. 성경에는 한글의 구조와 문법을 설명하는 구절이 한곳에도 없습니다).
이때에 '명', '분', '사람'에 해당되는 영어가 바로 'person'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인격'이라도 번역합니다. 오해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인"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 person이라는 영어표현은, '사람'의 숫자를 헤아리는 데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과 '하나님 안에서의 상호내재적 존재들'을 헤아릴 때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들도 한 '명'(person), 두 '명'(person)이라고 헤아릴 수가 있고, 한 하나님 안에서의 상호내재적 존재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헤아릴 때에도 pers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성부도 person이요, 성자도 person이요, 성령도 person입니다. 그래서 three persons but one God이라는 정통적인 삼위일체의 고백이 표현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person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사람'에게도 적용되고, 천사나, '한' 하나님의 상호내재적 존재'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요?
person의 개념이해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대두됩니다. 현대신학과 철학계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person이라는 개념을 주로 '의식'(consciousness)이나 '자의식'(self-consciousness)에 적용하거나 '이성'(reason),'영혼'(soul or spirit)에 적용시켜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반동으로 최근에는 '몸'(body)와 '영혼'(soul or spirit)을 동시에 포함하는 그 무엇으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오히려 '몸'(body)가 '인격'이라는 주장까지도 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는 person의 person이 됨, 곧 personhood의 문제를 주로 인간의 내적 구성요소들 중의 어떤 하나에 제한시켜 왔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person을 person되게 하는 것, 곧 personhood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왜 폴님은 한 '명'(person)의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홀리죠이는 어떻게 한 '명'(person)의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그 자의식 때문일까요? 내 안에 있는 '이성'때문일까요? 아니면 내 안에 있는 '영혼'때문에 나는 내가 되는 것일까요?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모두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그렇게 발생되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천사도 person이고, 하나님의 상호내재적 존재들도 person이고 사람도 person이라고 할 때의 이 person이 도대체 무엇인 것일까요?
이런 질문들을 음미하게 되면, 폴님이 예수님을 human person으로 이해하게 될 때에 생기는 심각한 문제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심을 인정하면서도 그 예수님의 예수님되심을 human person이라고 한다면, 한 면으로는 예수님의 참 하나님되심을 부인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이 두 개의 persons를 가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human person이면서 또한 divine person이라고 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한 분 하나님 안에서 세 persons가 아니라 네 개의 persons를 주장하게 되는 셈이어서 전통적인 고백을 깨뜨리게 됩니다.
지금 perso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용례를 통해서 그 개념을 조금 언급하였습니다. 하지만, person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천사들, 하나님의 상호내재적 존재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공히 사용되고 있는 person이라는 이 개념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저는 이렇게 제안해 봅니다.
person이라는 개념은 자의식적으로 상호관계를 의식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일컫는 기본 단위라고 말입니다. 이런 person의 정의는 동물을 배제합니다. 나무들은 배제합니다. 곤충들도 배제합니다. 이런 person이해는 고대교부들의 신학을 재조명하고 있는 John Zizioulas라는 사람에 의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Person as Communion>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person개념의 이해는 참으로 기본적인 것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있고, 소위 근대의 계몽주의철학이나 실존주의철학에 영향을 입은 person개념, 곧 개인(in-dividual)이라는 것으로서의 person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도대체 person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person은 기본단위로서의 개념과 관계로서의 개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저의 설명의 요지입니다. 사람과 천사들, 그리고 한 하나님의 삼위를 헤아리는 기본단위개념이고, 그 기본개념은 관계적인 것입니다. 실제와 관계를 통합시키고 있는 이해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에 대한 이해에 적용시켜 볼 때에, 먼저 이런 질문부터 해 보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도대체 한 분인가? 두 분인가? 아니면 여러 분인가? 그리고 나서 질문해야 할 것이, 어떤 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몇 분인가 하는 질문은 성경구절에 도대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기 것을 질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몇 명입니까? 다윗은 몇 명입니까? 예수님은 몇 명입니까? 실상 예수님의 공생애 당시에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들이 여러 명이 있었답니다. 너무나 흔한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질문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나사렛 예수'라는 그 존재가 바로 몇 명이었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원래는 하나님이었는데, 사람의 모양으로 현현했다가 다시 하나님으로 되돌아갔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참사람되심을 부정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순전히 사람일 뿐이고 단지 신적인 영이 그에게 충만히 임하여서 그런 초자연적인 능력을 구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참 하나님되심을 부인하였던 것입니다(이것을 양태론이라고 한다).
그래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기독교회는 회의를 통하여 무엇이 성경의 가르침에 일치하는가를 궁구하다가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이심으로 표현하는 것이 성경적인 가르침이라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몇 분일까요? 두 명입니까? 두 person입니까?
실상, 성경의 어떤 구절도 이런 의문을 암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부들의 회의에서도 이런 의문들이 구체적으로 제기되었던 적은 없습니다(혹시 제가 짧은 견문으로 그들의 모든 질문들을 살펴보지 않아서 잘못된 저의 견해라고 하면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한 분이지, 어떻게 두 분일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이 한 person이라는 것은 도대체 질문이 제기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먼저, 폴님께서는 예수님의 한 person이 되심을 이해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인정하실 것입니다. one Jesus라는 표현을 하신 것을 보니, 예수님이 두 person이 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예수님은 소위 '다중인격자'가 되고, 혹은 '정신분열자'가 되고, 정말로 이상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괴물'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몸은 인간이고 머리는 신인 별종의 존재요, 제 삼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person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기본적이고 명백한 견해입니다.
이제부터 저는 폴님의 예수님께서는 human person되신다는 주장의 허구대해서 지적하고 저의 견해로서의 person과 nature의 관계를 설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방교회의 공식적인 견해에 대해서 질문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한 person이 되신다면, 이 한 person되시는 예수님이 도대체 누구신가? 하는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는 사람이냐 아니면 하나님이냐 아니면 천사냐 하는 것에 대한 답변이 나와야 합니다. 곧 person으로 불리워질 수 있는 존재들 중에서 답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 그룹의 대상들이 예수님의 person되심에 대해서 가능한 답변이 됩니다. 곧, 하나님, 사람, 천사가 그것입니다.
이 질문이 이상할지 모릅니다. 이미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이라는 것을 공히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고백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토론을 폴님과 제가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곧 예수님의 person이 divine person이냐 아니면 human person이냐는 것에 대한 토론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divine person도 되고 human person도 된다는 식의 답변은 정말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대화가 됩니다. person은 한 개체를 헤아리는 기본단위의 개념이라는 그 전제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다'는 고백을 할 때에 이것은 분명히 예수님이 두 개의 persons를 가졌다는 의미가 아님을 전제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누구신가? 곧 human person이냐 divine person이냐는 질문을 하게 될 때, human person도 되고, divine person도 된다는 대답은 아예 person의 개념을 모른 채로 대답을 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저의 설명의 요지는, 예수님이 human person이냐 divine person이냐는 대답은 선택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는 식의 대답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person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 질문에 있어서 양자택일을 요구합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이해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것은 기본적인 논리의 문제입니다. 성경구절로 증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읽기 위해서 먼저 한글을 읽혀야 하고, 히브리어의 문법을 익혀야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히브리어 문법설명이 성경구절에 나와 있습니까? 폴님이 성경구절로 매 교리를 증명하기를 좋아하시는 줄 알고 그것은 좋은 습관인 줄 알지만, 반드시 옳다고만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human person이 아니고 divine person만 된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성경구절을 저에게 요구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예수님께서 divine person만" 된다는 식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입장을 폴님이 곡해하시려고 작정하신 듯이 그렇게 저의 견해를 폄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을 다루지 않고 곧 이어서 다루겠습니다.
지금은, 폴님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위의 저의 기본논리를 이해하셨다면(저의 기본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렇다면, 님께서는 히브리어문법도 모르는 사람에게 히브리어성경을 읽어보라는 식의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가장 기본적인 개념정의가 중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문법이라는 것도 일종의 개념정의와도 같습니다), 이 질문에 답변하셔서 폴님은 선택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person이 human person입니까? 아니면 divine person입니까?
폴님은 이미 예수님이 human person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대답은 위의 기본개념정의에 의해서 예수님이 divine person이심을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곧, 기본개념정의가 그것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동시에 divine person이면서도 human person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폴님은 그것을 주장합니다. 주장할 수 없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divine person이시다는 주장에 대해서 제가 마치 예수님의 '참 사람되심'을 부인하는 것처럼 폴님은 곡해하고 있습니다. human person이 아니면서 어떻게 예수님의 참사람되심을 주장할 수 있느냐고 적반하장식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human person이 아니시고 오직 divine person이시면서도 '참사람이심'을 제가 아래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지를 말입니다.
솔직히 한글로 신학적 주제를 논하는 것은 참으로 힘듭니다. 아직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person이라는 말을 '인격'이라고 번역하는 것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오해에 오해를 거듭하게 합니다. 또 하나 더, 한글로 무척이나 오해되고 있는 단어가 바로 nature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를 영한사전에서 찾아보면 여러 가지 의미들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자연"이라는 뜻이나 "본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더 많지요.
자연을 nature라고 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우리 한글(혹은 한자어)의 "자연"이라는 말고 nature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자연이라는 말은 "스스로 자", "그럴 연"이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그런 것"이 "자연"입니다. 하지만, 영어의 nature라는 말은 결코 "스스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nature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도 다종다양한 토론이 개진되고 있습니다만, 저는, 딱 한 가지, 곧 영어의 nature라는 말의 개념은, "자연"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만 지적해 놓겠습니다. 또한 "본성"이라고 번역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그것이 올바른 번역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본래 본" "성 성"이라고 하는 한자어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이 "본성"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자어를 다시 음미해보고 동양철학에서 기본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성"의 개념을 이해해야 합니다.
저희들의 토론에는 이런 복잡한 언어문제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앞서 설명해 드린 person이라는 개념과 함께 설명되고 있는 nature라는 이 개념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인간되심으로 취하셨다고 하는 human nature라는 말에서의 nature라는 말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설명해 드렸던 nature의 기본정의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저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A nature is a substance possessed in common, with all the essential qualities of such a substance. 이 정의를 폴님은 유심히 음미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정의를 제시했는데도 음미해 보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설명해 드리지요. 위의 정의에서 우선 주목해야 할 표현은, in common이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사과의 nature가 무엇입니까? 이것에 답하기 위해서는 '사과'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어떤 사물들이 '공통적으로'(in common)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들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과는 크고 어떤 사과는 적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과는 붉을 수 있고, 어떤 사과는 아직 샛파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사과"라고 부를 수 있는 공통점이 어디에 있을까요? 관심이 사과가 아니니까 바로 인간의 nature에 대해서 질문하겠습니다.
흑인도 백인도 황인도 모두 '인간'입니다. 그 인간들이 공통적으로(in common) 가지고 있는 어떤 특성을 말한다면 무엇이겠습니까? 아이큐 100이상이라는 특성이겠습니까? 키가 어느 정도는 커야한다는 것이겠습니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인간됨의 공통된 그 무엇을 질문할 때에 답변이 되어야 하는 것은 ‘person이다’라는 것은 제외됩니다. 만일 person이라고 이야기하게 된다면, 위의 설명에서 지적한 것처럼, 인간이 천사도 될 수 있고, 인간이 하나님도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여기서 주의하셔야 할 것은 제가 위에서 설명해 드린 person이라는 말과 personal이라는 말은, 개념적으로 그렇게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삼위일체나 예수님의 person에 대한 설명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은 이 person을 personal 곧, '인격적'인 무엇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설명해 드린 것처럼, person은 우선, 인간만 아니라, 영적 존재인 천사와 하나님, 곧 한 하나님의 상호내재적 존재들을 묘사하는 일종의 기본단위이고 그들을 헤아리는 기본개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nature에 대해서 질문할 때에, 'person'이라고 답변하는 것은 다시 한 번 기본개념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의 nature 곧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을 예로 들라치면 '인격person'이라는 것을 예로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personhood는 앞에서 이미 설명드린 것처럼, 인간의 개체성과 관련된 것입니다. nature는 인간의 공통된 그 어떤 것을 언급할 때이고, person이란 바로 인간 개개의 어떤 개별적인 존재됨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고, 그런 면에서 "정체성", "주체성", 존재됨 등등으로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앞의 토론들에서 이미 밝혔습니다.
인간의 nature를 묻는 질문에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됨의 요건이 되는 공통적 요소가 무엇이냐는 것에 대해서 답변을 해야 합니다. 몸을 가지고 있는 것, 자기의식을 할 수 있다는 것. 지성과 의지와 감정을 가졌다는 것, 영적인 것에 대해서 의식할 수 있다는 것(그것을 영이나 혼으로 표현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등... 인간의 nature는 모든 인간들이 인간으로서 공통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어떤 특질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예수님이 divine person이시면서 human person이 아니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사람이 되심'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위의 저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셨다면 어렵지 않게 저의 답변을 예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곧, human nature를 취하심으로 예수님은 '참사람'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간들이 공통으로(in common) 가지고 있는 모든 특성들을 소유하시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신다는 것이 유대인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떤 음식을 선호하셨기 때문에도 아닙니다. 인간의 공통적 특성들, 곧, 지정의를 소유하시고, 자의식을 가지시며, 또한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의식할 수 있는 영적 기능을 소유하고 계시고, 또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참사람'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모든 인간들의 공통적 속성들을 가지고 계시다고 하는 것을 이렇게 human nature를 가지셨다고 함으로 충분히 예수님의 '참사람'되심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human person을 가지셨다는 식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person이시지만, 결코 human person이 아니시고 divine person이시면서도 충분히 참으로 사람이셨습니다. 인간의 모든 공통된 속성, 곧 human nature를 모두 다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공통된 모든 속성들을 취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은 아닙니다. 한국인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취하시는 속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중보자가 되십니다. 그는 인간이되, 참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코 human person이 아니십니다. divine person입니다. 만일 그가 human person이고 divine person이라면 그는 두개의 persons를 가지고 있는 자가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몸은 짐승이고 머리는 사람인 괴물을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몸은 인간이되 그 머리는 하나님인 괴물이 되는 셈입니다. 몸은 인간이면서 그 영혼은 하나님이라는 식으로 설명해도 괴물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괴물스러운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는 하나의 person만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런데도 폴님께서는 예수님이 그렇게 두개의 persons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무척 궁금합니다. 그것이 폴님 개인의 주장입니까? 아니면 (지방)교회의 공식적인 견해입니까? 저는 저의 견해를 개혁신학의 공식적인 견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은 견해를 밝히고 있는 개혁신학자들을 두 명이나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제는 님께서는 밝혀주셔야 할 차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의 divine person이 되시면서도 참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성경구절들을 들어서 설명해주는 책자로는 앞에서 언급했던 레이몬드 박사의 <새조직신학>이라는 책자입니다. 성경구절을 많이 인용하는 것으로 치자면 그 책을 능가할 다른 조직신학 책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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