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Miscellanies b에 나오는 신학묵상글이다. 에드워즈 목사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것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중보사역과 만족에 대하여
질문 : 그리스도는 어떻게 신성한 공의를 만족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죄를 만족하셨을까? 죄인들은 단지 하나님에 의해 처벌되어야 하지 않는가? 어떻게 죄를 짓지 않은 존재 안에서 그 죄가 처벌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가 죄를 범했다고 생각하도록 기만당하지 않으실텐데, 어떻게 그리스도에게 죄가 전가되어질 수 있을까?
답 :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고통당할 때, 그가 죄를 지어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아신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무한하게 사랑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무한하게 사랑하시어, 만약 그가 그들을 위해 수행하시고 그들 편에 서시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또한 죄인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비록 그들이 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무한한 사랑은 죄에 대한 그의 무한한 증오를 상쇄한다.
질문 :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만약 그가 그들의 입장에 서서 죄인들을 받아들인다면, 그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죄들을 받아 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죄인들을 옹호하며, 그들의 죄를 옹호할 수 있는가?
답 : 그는 그들의 죄를 옹호하지 않지만, 기꺼이 그들의 죄를 스스로 취해서, 그에게 책임을 돌리고, 그 자신이 그 형벌에 대한 책임을 진다.
질문 : 그러면 어떻게 죄의 대가가 그로 인해 완벽하게 값아지는가?
답 : 그는 그들을 매우 사랑했기에, 하나님은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로 여겨주셨다. 그는 죄인과 하나가 되셨다. 그 결과 그들은 그의 지체로, 그의 몸으로, 그의 신부로 불리게 되었다. 만약 신랑이 신부의 빚을 값아 주면, 그 신부는 자유롭게 된다. 만약 그 머리가 고통을 겪으면 그 지체들과 몸은 자유롭게 될 것이다. 만약 고통 받는 그가 그들과 하나라면, 그들이 어떤 다른 것으로 고통을 당하는지는 문제가 안 된다. 만약 손이 도둑질하면, 그 손이 벌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이 처벌받는다. 확실히 그리스도는 인간을 그렇게 사랑하기에 그리스도가 형벌을 받든지 인간이 받든지 하나가 된다. 예수님은 그들이 받아야 할 처벌을 기꺼이 받을 만큼 그들을 사랑하여, 기꺼이 그들 대신 비참과 고통을 기꺼이 받으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그들을 하나로 여길 만큼 그들을 사랑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