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좋은 문장이 있어 인용한다.
옛 성현들은 마음가짐을 바로 잡은 다음에야 사대부로서 가정, 나라와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였다.
心術
爲學之方, 具載方冊, 然其要只在平正心術而已, 心術旣正然後, 思親思君, 理官珥民, 白事可做, 不然則雖能讀聖賢之書, 能工華藻之文, 終亦不免爲小人之儒矣, 可不勉哉.
심술
학문하는 방법은 책 속에 자세히 실려 있다. 하지만 그 요점은 다만 심술을 바로잡는 데 있을 뿐이다. 심술이 바른 뒤에야 어버이를 섬기고 임금을 섬기고, 벼슬길에 임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온갖 일을 해낼 수 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비록 능히 성현의 글을 읽고, 화려한 문장을 잘 짓는다고 해도 마침내 또한 소인됨을 면할 수가 없다. 힘쓰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권근「제주향교기 提州鄕校記」
<죽비소리-나를 깨우는 우리 문장 120>, 정민, 마음산책, p.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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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 열심히 마음을 닦으면 될까?
요즘 앤서니 라빈스의 <무한능력>이라는 자기개발서를 읽고 있다.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내재된 무한능력을 누구나 마음의 수련만 하면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책에는 NLP이론(Neuro-Linguistic Programming, 세뇌기법으로 악용될 수 있는 위험한 면이 신경정신 프로그래밍이론이다)과 앤서니 라빈스가 개발한 마음의 수련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 실제로 이 책을 따라하여 인생이 바뀐 사람이 많다. 교육방송의 성공학 프로그램에 나오는 성공학 강사들은 라빈스의 이론을 자주 인용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성공의 지향점은 역시 ‘자아’에 머무른다. 자아의 행복 이상의 관점을 갖지 못한다. 혼신의 힘을 다한다고 해도 기와장을 연마한다고 하여 거울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성령의 조명을 받아 심령 속에 성령이 임재해 주셔야 새사람이 될 수 있다. 마음의 비석에 성령의 법이 새겨져야 그 법에 따라 가정과 나라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 글을 곰곰이 묵상하다가, 찰스 피니 목사님의 ‘신적 조명의 필요성’이라는 설교가 떠올랐다. 신적 조명을 받지 않고서는 성화되어 새사람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인용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신적 조명이 없이도 성경을 이해하여 죄를 깨닫고 스스로를 정죄할 수는 있으나 성화를 이루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체 계시가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계시는 대단히 유익한 것입니다. 성경은 대단히 분명한 말씀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명백한 교훈을 주셨음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은 자기의 교훈을 설명하기 위해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주님은 단순한 언어를 사용하셨으며, 마치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가르치듯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신적 조명이 없이 인간의 이성의 힘만으로는 결코 복음을 깨달아 유익을 얻지 못합니다. 어려운 점은 그 주제 안에 있습니다. 성경은 가능한 명백한 복음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그것은 종교적 개념들을 나타낼 수 있는 언어적 상징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개념들은 상징적 표현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히 종교적인 개념들을 사실적으로 마음에 소유하기는 어렵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무지와 죄, 그리고 그 주제의 본질에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복음에 대한 유익한 지식을 얻으려면 거룩한 신적조명이 필요합니다.
Ⅲ. 하나님의 성령만이 우리에게 신적 조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에 의하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라는 추상적인 명제를 과학적인 문제처럼 증명하여 편견이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는 주님이라는 진리에 동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성령만이 우리의 마음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소유하고 그 사실을 믿으며 그것을 자기 마음의 성화를 위해 유익하게 사용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