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윗필드

여리고의 두 사람

천국 도서관장 2009. 12. 28. 01:36

여리고의 두 사람


 

나는 얼마 전부터 두 사람을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조지 윗필드의 ‘소경 바디매오’ ‘삭개오의 회심’이라는 설교를 읽은 후부터였다(두 설교는 아래 항목에 게재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여리고 출신인 것을 알고 놀랐다. ‘이 유명한 회심자 두 명 모두가 여리고 사람이었다니, 왜 이제야 알았을까? 성경은 참으로 놀라움으로 가득 하구나.’


그래서 며칠간 계속해서 그들이 구원하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해 보았다. 그리고 주일 대예배  시간에 ‘역사의 해석’에 관한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의 관점에서 다시 묵상해보니, 더욱 더 은혜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저주받은 땅 여리고로 향하셨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정복한 후 이 성을 재건하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후 여리고는 재건되지 않은 채 저주받은 땅으로 남게 되었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수 6:26). 실제로 아합왕의 명령을 받고 히엘이 여리고성을 재건하려다 저주를 받고 두 아들을 잃었다(왕상 16:34).


그런데 예수님은 이 저주받은 땅에서 두 명을 구원하신다(확인해봐야겠지만, 예수님께서 같은 지역에서 두 명을 연속해서 구원하신 사건을 기록한 사건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두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소경 바디매오와, 세리장 삭개오다. 이 두 사람은 저주받은 땅에서 가장 저주받은 자로 살고 있었다. 한 명은 소경이자 거지였으며, 다른 한 명은 로마의 앞잡이, 세금포탈자의 책임자인 삭개오였다.


왜 예수님은 이 둘을 구원하셨을까? 그것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때문이었다. 그 땅은 저주받았지만, 그 땅에서는 두 명의 귀한 영혼이 구원받기로 예정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작정해 놓으신다. 여리고가 저주받은 것도 작정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삭개오와 바디매오가 구원받는 것은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 대한 예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몸소 인자로 오셔서, 섭리적으로 두 영혼을 구원하셨다.


하나님의 작정, 예정, 섭리에 대한 교리는 <기독교강요> 1권과 3권에 자세히 나온다. ‘작정’은 만사(萬事), 만물(萬物)을 총괄하여 적용되는 하나님의 뜻을 의미하고, ‘예정’은 그 포괄적인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서 특히 ‘인간의 구원’에 관계된 하나님의 작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작정’은 포괄적이고 보편적이지만 ‘예정’은 국부적이고 특수적이다.


하나님의 '작정'이 만유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하나님의 '섭리'는 만유에 대한 하나님의 이 계획이 목적하는 바를 성취해 가시는 하나님의 '오묘한 활동', 즉 하나님의 사역을 가리킨다.

 

바디매오와 삭개오의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기적이었다. 예정은 일반인들에게는 없는 역사이다. 그들과 하등  관계없는 역사이다. 따라서 그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일반인들은 삭개오와 바디매오의 구원받은 것에 대한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나, 택자는 하나님의 예정이 창세전에 계시 되어 있기에, 저주 받은 땅에서조차 섭리적으로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과 무한하신 사랑과 그 성품에 무릎을 꿇게 된다.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4, 5).

 


소경 바디매오와 삭개오 대한 말씀을 거칠지만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소경 바디매오


46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저주받은 받은 땅 여리고에 오셨던 예수님이 이제 그 지방을 떠나려고 하신다.

-지금 구원받기 위해 나온 자리가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가 오셨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자손 예수’가 오셨음을 알았다(즉, 바디매오는 나사렛의 예수가 아니라 다윗의 자손 예수, 즉 메시야로 예수님을 보았다. 소경인데도 말이다).

-그는 소리를 질렀다.

-메시야이신 예수님 죄에 사로 잡혀 소경된 자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들은 천한 나사렛 지방의 어떤 사람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는 그분이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야시라는 것을 알았다.

-소경이지만, 벌써 성령의 은혜로 예수님이 메시야 되심을 알고 있었다.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예수님께 나아가 구원을 간구했다.

-자식이 부모님을 찾아가듯이, 성령의 손길에 이끌려 바디매오는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예수님을 찾아갔다.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많은 사람은 제자와 예수님을 따르는 허다한 무리다.

-그들은 시끄럽고 짜증스러웠다.

-여리고에서 나가시어 다른 지방으로 가야 되는데, 방해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디메오에게 이미 예수님은 메시야셨다. 그리고 그는 메시야를 믿고 있었다.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불쌍히 여겨달라고 더욱 소리를 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메시야가 아니라면 소리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소경을 부르시는 것을 보고 비로소 자기들이 잘못한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소경을 안심시키고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한다.


50 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그는 그의 전 재산 겉옷을 내어 버렸다.

-소경이지만 뛰어 일어났다.

-눈이 안 보이지만 예수님께 나왔다(갈 5:6).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그가 무엇을 바라는지 알았지만, 그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셨다.

-예수님은 소경에게 온전히 메시야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고 계신 것이다.

-그는 메시야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보기를 원한다고 정확하게 말했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예수님은 그에게 믿음으로 구원받았음을 선포해주신다.

-그리고 가라고 하신다.

-하지만 그는 가지 않는다. 눈을 뜨기 전에도 소경된 상태에서 메시야를 찾고 찾은 바디매오다. 눈을 뜬 지금, 메시야를 좇으면 좇았지 떠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구원론이 전부가 아니다. 더 흥미진진한 새생활론이 기다리고 있다.


(막 10:46-52).


세리장 삭개오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여리고는 저주 받은 땅이지만 예수님은 그곳을 찾아가신다.

-기회가 올 때가 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세리장으로서 그는 부자였다.

-부자가 구원받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요세푸스의 글을 보면, 당시 세리가 얼마나 일반 백성으로부터 원성을 샀는지 알 수 있다

-세리들은 로마에서 할당한 세금을 거두어들일 때 할당된 세금보다 임의로 몇 배에서 몇 십 배나 되는 돈을 거두어 들여 로마 당국에 바치고 나머지 차액은 자기들이 착복했다.

-삭개오는 세리도 아니고 세리장이었다. 당연히 부자일 수밖에 없다.

-저주받은 여리고 출신, 세리의 장, 그리고 치부로 쌓은 돈으로 부자가 된 사람-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그 사람만큼 구원받기 어려운 사람이 또 있을까?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그는 궁금했다. 예수(예수란 이름의 의미는 구원자란 뜻이다.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란 의미)란 분이 정말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까?

-그러나 구원의 자리로 나갔으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다.

-여리고 출신+세리장+부자+키가 작음+사람이 많아 구원자를 볼 수 없음-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그의 상황은 정말 절망적이다.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그는 사람들 사이로 달려갔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에 올라갔다

-그는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을 예상하고 거기에서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

-그는 정말 궁금했다. ‘나의 죄도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실까?’

-한편 그는 확신이 있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시다.

-그래서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고 최선을 다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예수님이 멈추셨다.

-시간이 정지된다.

-고개를 드시고 위를 지그시 보신다.

-예수님은 진심으로 찾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신다.

-“삭개오야 / 속히 / 내려오라”-‘아니, 어떻게 내 이름을 아셨을까?’ ‘이 분은 메시야임에 틀림없구나!’

- 모든 사람이 경멸하여 부르는 그 이름-삭개오! 로마의 앞잡이, 백성의 고혈을 쥐어짜는 자! 죄인중의 죄인인 삭개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부르시지 않는구나!’

-게다가 저주받은 여리고 중에서 죄인 중의 죄인, 로마 식민지 앞잡이인 세리들 중의 우두머리 세리장인 나의 집에 머무시겠다고 하시다니!

-그는 미적미적 대지 않고 속히 내려왔다.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순식간에 내려오는 삭개오!

-외양간에서 뛰쳐나온 송아지처럼 즐거워하는 삭개오!

-그는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그의 집(마음)에 모시어 들인다.

-‘이제 죽어도 소원이 없겠구나’라고 감사가 넘치는 삭개오!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그러나,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 구원받는 순간에도 다른 사람은 여전히 그를 죄인으로 본다.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삭개오, 그는 그 즉시 지난 날의 모든 것을 회개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죄인 취급하는 것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즉시 자발적으로 회개하고 배상하겠다고 한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예수님(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신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렇다. 인자의 오심은 한 가지 목적 때문이다. 창세 전에 예정된 잃어버린 자를 찾아서 오신 것이다.

(눅 19:1-10).